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복음산책) 두 번째 수난예고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9-25 조회수1,082 추천수12 반대(0) 신고
 

◎ 2004년 9월 25일 (토) -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오늘의 복음]  루가 9,43-45

<사람의 아들은 멀 지 않아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 제자들은 이 말씀에 대해 감히 물어 볼 생각도 못하였다.>


  43) 사람들이 모두 예수께서 하신 일들을 보고 놀라서 감탄하고 있을 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44) “너희는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명심해 두어라. 사람의 아들은 멀 지 않아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 말씀의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제자들은 알아들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또 감히 물어 볼 생각도 못하였던 것이다.◆


[복음산책]  두 번째 수난예고


  요한의 제자들은 물론이고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메시아의 도래를 준비하는 것으로 자주 기도와 단식을 하였다. 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이 먹고 마시며 다니는 것을 보고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기는커녕 비난과 질책을 일삼았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혼인잔치의 주인공인 신랑에 비유하시면서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때가 오면 모두가 단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루가 5,33-35) 예수께서는 하늘나라에 대한 가르침과 하늘의 능력을 통하여 메시아로서의 자신을 계시하셨다. 예수께서 계시는 동안 잔치의 여흥은 계속된다. 예수의 능력에 대한 사람들의 감탄과 놀라움으로 그 여흥은 고조된다.(43절) 그런데 그분께서 이제는 자주 그 여흥을 깨고 계신다. 잔치의 분위기가 점점 그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 위에 첫 번째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추종의 방법’을 알려 주시고, 자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신 후, 악령에 사로잡힌 아이를 고쳐주셨다.(루가 9,23-42) 예수께서 하신 일에 탄복하며, 이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기리는 주위의 사람들이 벌린 입을 채 다물기도 전에, 두 번째로 예수님의 수난이 예고된다. “너희는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명심해 두어라. 사람의 아들은 멀 지 않아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44절) 하지만 수난예고의 시점이 적절하지 않았던 것일까? 제자들이 그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한다.(45절) 제자들은 분명 수난예고의 말씀을 들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말이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루가는 보면서도 보지 못하고, 들으면서도 듣지 못하는 제자들의 처지를 나무라기보다는 ‘그 뜻이 감추어져 있는 신비’(45절)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수난의 신비가 하늘나라의 신비와 같은 맥락에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제자들의 책임도 없지는 않다. 그들은 예수께서 두 번씩이나 하시는 수난예고의 말씀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그 뜻을 이해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감히 물어볼 생각도 못했다.”(45절)는 말은 괜히 물었다가 똑같은 말씀을 다시 듣게 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사전에 실패라는 말은 없다.”라는 나폴레옹(1769-1821)의 말처럼 제자들이 보기에 예수님 앞에 수난이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울다가 웃을 수는 있어도 웃다가 울지 않겠다는 말과도 같다. 결국 제자들은 당시 이스라엘의 대부분 사람들과 같은 메시아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예수님의 반복적인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메시아상을 수정하지 않고 고수하려 하였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정치적이고 물질적이며 개인적인 야망까지도 포함한 그런 메시아상을 버리지 않고서는 결코 스승을 잘 따를 수 없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