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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나의 이해!
작성자임상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4-09-25 조회수1,093 추천수3 반대(0) 신고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나의 이해!

 

-[하느님의 섭리]- 이는 종교적 의미로 폭넓게 인용되고있는 단어라고 생각하면서, 저 또한 부족한 믿음과 신앙생활 속에서도 자주 인용하며 접해왔습니다.

 

그러나 진정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깊은 뜻은 헤아리지 못한 체 어휘의 사전적 이해만으로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구하고 [하느님]께 의탁해온 나의 가식이 가미된 신앙관! 또 내 자신이 [하느님]과의 관계범주조차도 깊이 헤아리지 못한 체 부족하기 그지없는 나의 믿음과 신앙, 그리고 얕은 교리적 이해와 종교적 바탕만을 가지고 인간관계속에서 감히 [하느님]을 말하고 [하느님]을 논하며 [하느님]의 뜻 입네 은총 입네 하면서 내 중심적 사고로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통한 [하느님]의 고귀한 존엄을 표해온 것들이 과연 [하느님]을 내 믿음과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섬기는 [천주교]신자로서 합당하고 올바른 표현행위였는지, 내 스스로에게 자문해보는 일들이 잣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세상의 모든 만물들이 [하느님의 섭리]안에서 [하느님]모상대로 계획된 [인간]창조를 위한, [인간]창조에 앞서 지어내신 조화적 산물(창세기;천지창조)임을 믿어 왔기에 [하느님의 섭리]는 바로 [하느님]의 [인간]을 [하느님]의 권능으로 다스리시기 위한 [하느님만의 계획]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또 [하느님]이 지어내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세상곳곳에서 뿌리내려 살고 있는 다양한 [인간]종족들의 기기묘묘한 삶의 형태와, 마치 우상숭배와도같은 신앙행위들을 비롯한 천태만상의 것들이, 단 한가지도 [하느님의 섭리]에서 예외일수 없음도 생각 해 봅니다.

 

우리는 영상매체들을 통한 자연계에서 살아 숨쉬는 모든 생명체들의 신비롭고 오묘한 조화들을 보면서, 이모든 현상들을 [자연의 섭리]-[자연의 법칙]-[자연의 질서]라고 표현하지만, [하느님]이 곳 세상만물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생명의 주인이심을 믿으며 [하느님의 섭리]안에서 세상만물이 존재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 [자연의 섭리]로 존재하는 이세상이 바로 창조주[하느님]게서 만물의 영장으로 삼으신 [인간]을 위하여 꾸며 주신 [에덴 동산]이라고 이해하고싶습니다. 실로 [하느님]은 시작도 끝도 없으신 분답게 [에덴 동산]역시 우주만물까지 연계된 [인간]의 무한한 번식과 번영을 감안한 [인간]의 한계적 상상을 초월한 [하느님만의 계획]다운 장엄한 스케일을 느낌니다.

 

그러나 태초부터 [인간]이 [하느님]게서 허락하신 지능과 자유의지를 남용함으로서 [하느님]의 [성령말씀]만으로 다스리기에는 사악함으로 만연되어가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말씀]이[사람]이 되시어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빛]이 되신 [주님] 진리의 말씀 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라고 하신 한 소절 말씀만으

로도 내 안에 [하느님]이 함께 하시고 [하느님의 섭리]안에서 내가 존재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만물의 영장으로 지음주신 [인간]과, [인간]을 위해 지어내신 [에덴 동산]의 모든 [자연생명]들과의 관계 또한 [하느님의 섭리]안에서는 하나의 장엄한 생명공동체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결국 이세상의모든 것이 [하느님의 섭리]안에서 태동한 [하느님]의 것이기에 [인간]이 비록 세상만물의 영장으로 지음받아 군림할지라도 [주 하느님]앞에서는 포도원지기와 다를 바 없는 존재이기에 나를 비롯한 [인간]개체와 [인간]집단이 행한 악행과 선행을 기묘한방법으로 벌하시고 보상해 주심이 또한 [하느님의 섭리]임을 생각해 봅니다.

 

내자신이 설사 [하느님]을 수없이 기만하고 배반하고 잊어버리고 살았다 할 지라도 [하느님]은 바로 내 운명의[주(인)님]이시며, 내 [아버지]이시며, 내가 구하고 청하면 기쁘게 들어주시는 [아빠]이시며, 내 잘못을 반성하고 뉘우치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 주시고 [당신]의 평화로 채워 주시는 [구원자]이심을 믿기에, 내 믿음과 신앙의 진정한 대상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며 [하느님]을 조건없이 믿고 의지해도 좋을 이유가 티없이 공정한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 때문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내자신이 겪어 온 소용돌이 삶의 여정을 통해서나, 이세상곳곳에서의 [자연]과[인간] [인간]과[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끈임 없이 빚어지는 크고 작은 환난들이 결코 정의로우신 [하느님]의 진노와 무관하지 않음을 생각하며 이 또한 [하느님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으로 [하느님의 섭리]는 심오하기 그지없는 [하느님만의 계획]이며 특히 지적능력과 자유의지로 선택을 허락받은 [인간]종족들의 악행과 선행을 기묘히 벌하시고 보상하시는 티없이 공정한 [하느님 심판의 잦대]라고 이해하고싶습니다.

 

그런 점에서【[종교]에 대한 나의 이해】라는 제목으로 부족한 신앙을 고백한 바 있는 나의 종교[천주교]가 내 영혼구원의 든든한 길잡이 종교로 자부심 갖기에 충분하지만 이 또한 [하느님의 섭리]안에서는 구원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영혼인간]들의 지향을 바르게 인도하는 다양한 종교들 중에 한 종교일 뿐이라고 이해하고싶습니다. 그러나 나의 종교[천주교]는 [하느님의 섭리]안에서 가장 훌륭한 종교임을 자랑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 이유를 [하느님]의 참뜻을 가장 깊고 넓게 헤아리는 참 종교라고 내자신이 믿기 때문이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하느님]의[인간]을 [하느님]의 길로 바르게 인도하는 구원사업체로서의 사명에 부족함 없는 종교라고 믿기 때문이며, 또한 내 자신이 그 속에서 함께 하는 [천주교]신자이기 때문입니다.

 

미약하지만 신자로서 헤아리고 있는 나의 종교 [천주교]는, 이 땅에 구원의 [빛]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님]의 말씀이 모태가 된 2천년역사의 종교이며, 그로부터 그분의 말씀을 진리로 삼아 [하느님]을 [성부]의 위 격으로, [그리스도님]을 [성부/하느님]의 유일한 독 생 [성자]의 위 격으로, [성부/하느님]과 [성자/그리스도님]을 믿는 이들의 영성에 근본적 힘이 되어주시는 [하느님의 본(령)성]을 [성령]의 위 격으로, [성 삼위]가 [천주성]어로 일치를 이루시는 [삼위일체의 하느님]어로 받들고 섬기는 종교이며, 그 안에서 함께 하는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올곧게 인도하는 종교적 사명에 부족함이 없는 참 종교라고 믿지만, 그러나 [하느님의 섭리]안에서는 티끌하나조차도 예외일 수 없다는 열린 마음으로, 非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多종교사회에서의 다양한 믿음들과 신앙을 가진 우리들 주변의 여타종교인들도 그들 대로의 믿음과 신앙의 대상에 대한 지향의 길과 섬김의 형식이 서로 다르고 서로의 교리와 진리이해의 표현조차 달리함으로서 서로의 가는 길은 다르다 할지라도, 결국 가야할 곳은 오직 한 분, 내[주 하느님]뿐이라는 소신있는 믿음으로 그들과 함께 한다면, [천주교]를 내 영혼구원의 길잡이로 삼고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내 지향의 길로 선택한 내 믿음과 신앙이 좀더 평화롭고 자연스러운 [하느님의 섭리]안에서 [하느님]의 참뜻과도 부합되는 아름다운 [천주교]인의 참모습이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하느님]을 말하고 [그리스도님]을 논하고 [주님]을 찬미할지라도 내자신이 [천주교]신자로서의 [그리스도]인 이라는 사실도 분명해야함을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나의 종교 [천주교]가 유일神어로 여기는 [하느님]을 [삼위일체의 하느님]어로 받들고 섬기는 우리 [천주교]만의 교리적 타당성에 대하여, [천주교]에 대한 긍정적 관심을 가진 이웃과의 대화나, 아니면 여타종교인들로부터 [천주교리]의 타당성에대한 부정적 사고의 논쟁에 부딪칠 수도 있음을 생각할 때, 내 스스로가 [천주교]신자로서 [삼위일체의 하느님]에 대한 깊고도 폭넓은 이해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흔히 우리[천주교]인들에게 여타종교인들이 [천주교리]의 타당성에대하여, [하느님]의 참뜻과 상반되는, 마치 성서의 계시적 말씀과 복음 말씀의 참뜻을 자신들만이 바르게 헤아리는 양, 그래서 그들의 길만이 참 진리의 길이며 참 구원의 길인 양,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며 자기 도취적 믿음으로 접근하여, 논쟁과 함께 전교까지도 권유하려는 그들 방식의 신앙행위들을 볼 때마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러한 자기 사고적 논쟁행위들이 나의 교회공동체와 가족공동체 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기에, 과연 이러한 모습들이 [주님]의 말씀(마태10;34-36//누가12;51-53)어로 예고하신 증거인가? 라는 자문과, 그렇다면 이러한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는 내자신의 주관적 판단과 사고도 [하느님]의 오묘한 뜻과 상반될 수 있음을 자답하며, 그런 점에서는 [인간]이 [인간]중심(개체이든 집단이든)어로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인간]에게 허락된 자유와 의지의 핵심임을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중심적 사고로의 외적행위가 비록 [하느님]을 들어내는 소신의 표현일지라도, 전달된 상대의 기분과 느낌에 따라서는 오히려 [하느님]을 욕되게하는 교만의 극치가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섭리]안에서 티끌과도같은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면, 겨자씨 보다 작은 내 존재를 통하여 [하느님]을 들어내는 행위가 어떠해야하는지를 또한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역시, 진실한 [믿음과 신앙]은 혼탁한 세상을 고달프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영혼 속에 반듯이 갖추어야 할 지혜와 평화가 샘솟는 [구원의 샘]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인간]들의 영혼 속에 꼭 갖추어야 할 [구원의 샘]이라 할지라도, 모든 선택과 포기는 [인간]자신들의 자유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자신들의 몫이지만, 선택과 포기의 자유의지가 초래한 소행의 보상은 반듯이 [하느님의 섭리]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하느님]의 뜻이 [인간]에게 깊고 폭넓게 인식 되기 위하여는 [하느님의 섭리]가 종교적 의미로서의 단어가 아닌 지상에서 살아가는 모든[인간]종족들과 [자연의 섭리]안에서 존재하는 모든 [자연 생명]들이 함께 공존하는 근원적 의미의 단어임이 폭넓게 인식되고 이해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한 인식과 이해가 모든[인간]의 의식에 바탕이 되어 함께 할 수있다면, 우선 세상곳곳 다양한 [인간]들의 다양한 믿음들과 다양한 신앙들 그리고 다양한 종교들이 빚어 온 분열과 갈등 그리고 적대감들이 먼저 소멸되고, [하느님의 섭리]안에서 평화를 회복한 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인간]들에게 만물의 영장으로 삼고 맡겨 주신 [하느님]의 세상을 [하느님]의 뜻에 맞게 잘가꾸고 보존해야할 [인간]본연의 사명을 주도함으로서 [하느님]의 평화가 이세상 [인간]모두에게 임할 것이라는 소망의 기도와 운동이야말로 참 [그리스도]인다운 참 구원활동이 될 것이라는 비약된 상상을 해 봅니다.

 

이상과 같은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나의 이해는 [천주교]신자로서의 믿음과 신앙에 대한 올바른 가치와 인식의 필요성과 연관한 끈임 없는 자문에 대하여 [하느님]게서 부족하지만 내 믿음만큼의 [성령님] 도우심에 의한 이해의 자답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럼으로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저만의 사고적 이해를 [복음나누기]와도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표현한 것이기에 지식적 기준으로 평가되지 않기를 희망하며 공감대를 함께 하시는 교우님들과 서로의 부족한 믿음과 신앙의 나눔이기만을 희망합니다, 그리고 또 [천주교]를 자신의 종교로 선택하여 [천주교리]를 공부하며 영세준비를 시작하신 님들 중에서 단 한 분만일지라도 제 게시의 글을 통해 [천주교리]를 이해하는데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큰 보람이겠습니다.

 

***(((접속하신 님들께 주님의 평화가 가득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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