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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묵상 - 누구를 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4-09-26 조회수1,321 추천수9 반대(0) 신고

복 음: 루가 9,18-22 

어느 날 예수께서 혼자 기도하시다가 곁에 있던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대개는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 다마는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옛 예언자 중의 하나가 다시 살아났 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다시 물으시자 베드로가 나서서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예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 묵상 - 누구를 안다고 말하기 위해서는 ★
“가수, 윤 복희씨를 알아?” “그 사람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니?” “소나무 신부님 알아?” “아, 김 대열 신부님? 물론 잘 알지. 지금 일본에 계시잖아?” “그러면 느티나무 신부님도 아니?” “한국 천주교 신자가 그 양반의 이름을 모르면 간첩이다. 김웅렬신부님!”
흔히 볼 수 있는 우리들의 대화형식이고 어느 누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주 쓰는 내용일 것이다. 오늘은 우리가 이처럼 잘 사용하는 ‘누구를 안다’라는 말에 대해 묵상해보고 싶다. 사실,누구를 안다거나 모른다거나 하는 표현을 쓸 때는 그리 가볍게 이야기 할 성질은 아닌 듯싶다.몇 십 년을 한 이불 덮고 자는 부부들도 서로가 낯설게 보일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천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누구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를 안다는 표현을 쓸 때 그 누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이해는 무엇일까?
누구를 안다는 표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체험해야 한다.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 사람이 무엇을 슬퍼하고 기뻐 하는지, 그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희망하는지를 알아야한다. 아파하는 것이 무엇이고, 무엇이 그를 치유할 수 있는 지를 알아야한다.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상대에 대한 배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표면적인 일과 보여진 행동이나 말로 그 사람에 대해 자기 나름대로의 모양새를 만들어버린다. 그 사람이 아닌 자기가 그린 그림을 그 사람이라 믿는다는 말이다.
물론 누군가를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부친이 생전에 내 고등학교 동창의 주례를 서신 적이 있다. 그 때 주례사 내용 중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인간이란 어쩌면 죽을 때까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우리 인간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 상대를 알려고 하는 마음 이전에, 자신에게 알고자 하는 상대를 위한 마음이 있는가를 생각해보아야한다. 만일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한 발짝 물러 서는 편이 옳다고 본다. 우리 모든 신자들이 하느님의 복음을 전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면 이러한 맥락에서 관계를 만들어 나가야하지 않을까?
이야기를 오늘 복음으로 옮겨보자.
오늘 복음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한다. 분명한 것은 그 대답이 옳은 대답이었을지라도 베드로의 준비된 대답은 아니었다. 설익고 급작스러운 대답이었다. 그에 대한 증거는 이러한 고백 이후 수시로 변하는 베드로의 언행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오늘 여러분 앞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신다. 그리고 당신에게 물으신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교과서적인 답을 원하실 그분이 아니다. 다른 이들이 떠드는 그런 내용에는 관심이 없으시다. 바로 당신의 마음을 듣고 싶으신 것이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오늘 제자들에게 하신 질문 역시, 세례자 요한이라는 이야기도, 엘리야라는 이야기도, 죽은 어느 예언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그저 다른 이들이 떠드는 소문이 듣고 싶어서 던지신 질문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들의 마음을 듣고 싶으셨던 것이다.
여러분, 다시 한 번 질문을 해본다. 준비된 답변이 있는가? 그분께서 나의 무엇을 원하시고, 슬퍼하시는지, 그분이 나의 무엇을 자랑스러워하시고 안타까워하시는지를 알고 있는가? 답을 만들어보자. 아주 심각하게 아주 정직하게.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풍성해지시기를 ♣일본 시부까와 천주교회 김대열 사베리오신부님의 지난 묵상글입니다.♣ ☞원본은 http://cajincheon.org/ 매일복음 방에 있습니다.☜ † :) † 여러분, 다시 한 번 질문을 해본다. 준비된 답변이 있는가? 그분께서 나의 무엇을 원하시고, 슬퍼하시는지, 그분이 나의 무엇을 자랑스러워하시고 안타까워하시는지를 알고 있는가? 답을 만들어보자. 아주 심각하게 아주 정직하게. 어제 윗 묵상 글을 읽으면서 나는 댓글에 이렇게 달았다. "아주 심각하게 아주 정직하게..." 그래서 적어도 하루는 고민을 해보겠습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부억에서도, 책상에서도, 걸으면서도,빨래하면서도... 계속 중얼거리며...생각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잠들기 전에도, 이른 아침에 눈을 뜨면서도 화두처럼 꼭 붙잡았다. 매일 무릎을 끓고 기도하는 똑같은 자리, 똑같이 '전능하신 천주 성부...' 하는데 왈칵 뜨건물이 뚝뚝 떨어지는것이다.
언젠가 차 안에서 가을 햇살을 보며 고단한 내 삶이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따닷하여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중얼거리는데 갑자기. 아주 갑자기! 우리 아버지가 하늘에 계시는구나/하면서 뜨건 눈물이 맺혔던것처럼...
그랬습니다. 나에게 주님은 아버지셨습니다. 정녕 아버지셨지요. 몽당 연필 하나 사주지 않는 육신의 아버지의 그림자는 내 삶에 어두움으로 남아있었지만,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는 언제나 달려갈 수 있는 품이었습니다.
10대가 지나서 신앙의 방황길을 섰을 때였습니다. 길가를 지나가는데 수요 예배를 드리는 2층교회에서 창밖으로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에 가던 발길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눈물을 훔치곤했었습니다. 방황하는 그 중에도 아버지는 늘 내 곁에서 내 삶을 인도해주시고 지켜주셨어요.
주님은 나의 아버지셨습니다. 내 몸을 낳아주신 아버지 사랑을 받지 못했음에도...메마르지 않을 수 있었음은 아버지이신 그 분이 내 안에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나의 목자이시기에 부족함이 없었노라고 나즈막하게 읊조립니다. [시편 23]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
그 이름 목자이시니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곧은 길이요,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원수들 보라는 듯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부어 내 머리에 발라 주시니, 내 잔이 넘치옵니다. 한평생 은총과 복에 겨워 사는 이 몸, 영원히 주님 집에 거하리이다. 성서의 그냥 말씀이 아닙니다. 곱배기의 삶을 살아오며 진한 눈물의 댓가를 지불하면서 얻어낸 시편 23편의 말씀입니다.나를 위한 말씀이었어요. 부족하기 이를데 없는 내 삶에 하늘 아버지는 늘 풍성한 것으로 채워주셨어요.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나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셨습니다.[필립비4,7]
그렇기에 언제나 감사함으로 아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한 일이 아니라, 삶의 풍랑이 휘몰아치는 순간임에도 내 영혼은 더 낮은 곳을 바라보며 감사드리고 있었습니다. 내 입술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향하여 감사 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 이게 아닌데...왜 감사가 드려지는지여... "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그래서...[안나]는 아침에 눈을 뜨며 성호를 긋습니다. 주모경을 바칩니다. 살그머니 일어나 거실을 지나면서 고상을 바라보며 또 성호를 긋습니다. 무릎을 끓어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라는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묵상집 겉표지를 바라봅니다.
젤 먼저 담장안에 갇혀 있는 형제들이 떠오릅니다.앗!나도 형제들처럼 갇힐뻔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그네들과 안나는 백지 한 장 차이임을 압니다.기온의 변화 는 안나의 마음을 더욱 간절하게 합니다.
그리고 E-mail로 주고 받는 형제와 자매들의 기도제목이 떠오릅니다. 이제 앗!나는 형제와 자매들의 행복속에 함께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같은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열 손가락중에 하나가 생이손을 앓면 온 몸이 아프듯 안나도 같이 아파옵니다. 모두 모두가 빨리 낫기를 바라고 청합니다.
텔렉스 통신사였기에 빠르다면 빠른 타자속도임에도 더 빨리 치고 싶습니다. 이틀에 한 번씩 손톱을 깍아도 왜 그렇게 손톱이 빨리 자라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더 멀리, 더 빨리 전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알지 못하는 형제에게도 전해야 되겠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 에게 나누고 또 나눠서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서이지요.집안이 조금 널브러져 있어도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음을 압니다. 그래도 열 손가락이 모자랍니다.
뭔가를 매일 중얼거리고 다닙니다. 복에 겨워 사는 이 몸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며가며 생각하고 화살기도 바치는 것입니다.'생각하는 것이 기도하는 것'이지요. 오늘에 내가 있음은 그 누군가가 [안나]를 위해서 기도해주었음이라고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나의 아버지.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고 물으신다면... ㅇ ㅏ ㅂ ㅓ ㅈ ㅣ 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가을 여행에는 돌아가신지 16년이 되는 친정아버님을 뵈오러 산소에 찾아갈 것입니다. 그리고...사랑한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안나]의 아버지가 [안나]를 많이 많이 사랑해주셨기에...
그 사랑이 흘러 흘러....오래 묵은 마음의 응어리들을 녹여버렸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음을 고백하겠습니다. 그저 다 끌어안을 것을...왜 그리도 섭섭함이 하늘을 치솟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늘 죈종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을 말할 수 있습니다. 밤을 지새울 수도 있습니다. 그분은 나의 아 버 지이십니다. 이 정도면 아주 심각하게, 아주 정직하게 대답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손으로 꾹꾹 눌러쓴 첫 편지를 보내는 이들에게 이렇게 시작합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멋지게 살며 길이 안보여도 두려움없이 걷고 있습니다. 의지할 아무것도 없지만 확신을 지니고 하느님을 의지하면서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것이고 그분은 예비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세속적인 성공으로의 삶이 아니라 신앙적인 믿음의 삶으로 불리움받았습니다. - 마데 데레사 수녀님의 묵상집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中에서 - † 그래서...오늘도 하느님의 평화를 빕니다.† 가끔은 게으름뱅이 안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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