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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물이 되는 자유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4-09-27 조회수988 추천수9 반대(0) 신고

 

 

추석을 앞둔 9월을 마감하는 일요일, 성지에 대한 글을 쓰고 계신 한 자매님과 함께 강화도에 있는 성지, 갑곳돈대를 찾았습니다. 

 

황홀한 가을 날씨가 축복으로 와 닿는 느낌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는데 춥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 공기까지 풀냄새와 더불어 상큼하니까 우울하고 슬픈 마음이 위로받는 것 같고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성인들이 온갖 고초와 죽음까지 불사하고 하느님을 따랐던 숭고함이 묻어 나오는 성지, 숙연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분들이 진리를 위하여 몸바치신 넋을 조금이라도 본받아 제 마음에 일고 있는 풍랑도 잘 이겨내자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마침 성지에 비치되어 있는 "십자가의 길" 을 묵상할 수 있는 책을 뽑았더니 십자가의 길을 묵상할 수 있는 내용이 9가지나 되었습니다. 그중에서 베네딕토 수도원 규칙에 따른 묵상으로 14처 기도를 묵상하였습니다. 이제까지 해 온 십자가의 길보다 더 깊이 제 마음을 파고 들었습니다.

 

제가 처음 영세를 받고 매일 대학교를 오가는 길에 성당에 들러 간절히 바쳤던 기도는 바로 이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그 때도 집안이 기울어 극도로 힘들었을 때, 의지할 곳 없는 마음을 십자가의 길을 통해 하느님께만 매달리며 우울함과 슬픔을 이겨내던 시절이었습니다.

 

묘하게도 근 40년만에 비슷한 감정에서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고 난 후에 풀섶에 앉아 강화대교 밑을 흐르는 바다를 바라보며 내 마음을 맡기고 실컷 울고 싶기도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길에 대한 묵상책을 들척이다가 9번째에 있는 "밀로 슬라브의 십자가의 길" 제 2처가 펼쳐지고 그 묵상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제 2처

 

    유다로부터 배반 당하시어 붙잡히신 예수님을 묵상합시다.

 

+ 예수 그리스도여.....*주의 십자가로......

 

열두 제자의 하나인 유다와 함께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이 보낸 무리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떼지어 왔다. 유다가 예수께 다가와서 "선생님!" 하고 인사하며 입을 맞추자 무리가 달려들어 예수를 붙잡았다. (마르 14, 43. 45-46)

 

묵상

 

칼과 몽둥이로 무장한 군중

사람과 삶이 대항하는 역사의 수많은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배반자의 입맞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영원히

파괴하는 위선의 상징

 

자유가 도착했을 때 선물은 열리지 않았고

사람이 도착했을 때 자신의 감옥에 갇힌 이기심의 노예

항상 무한한 사랑을 받았던 유다.

특별한 총애로 그를 선택한 예수님.

 

유다, 비극의 형상

그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것은 그에게 수치였습니다.

자신의 이성에 거만한 확신으로 스스로 갇혀 있는 그는

자신의 자유를 타락 시키고, 영원히 잃어버렸습니다.

 

예수의 자유는 이와는 얼마나 다른 것입니까!

인간들을 위한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자유를 양도하신 분

칼에 대항하지 않고 위장하지 않고 선물이 되는 자유

악을 이기며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영원한 자유.

 

이 묵상글을 읽어 내려 가는 중에 "선물이 되는 자유" 에 마음이 멈추어졌습니다. "그렇다, 내가 선물이 되자. 그러면 내가 힘들어하고 있는 모든 것이 풀릴것이다." 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문득 로마서 (8, 18-25)에 대한 묵상 안내글중에  "우정이 완전히 깨졌다고 생각했을 때  서로를 필요로 하는 우정의 관계에서 상호 기쁨을 주는 우정의 관계로 변모 되어 가고 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라는 대목이 떠올랐습니다.

 

엊그제의 묵상을 돌이켜 보았습니다.

 

필요로 하는 우정관계를 상대에게 기대할 때 서운하기도 하고 마음이 아픈것 같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상호 기쁨을 주는 우정의 관계에서 바라볼 때 우정이 지속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인정받고 싶고 나를 섬겨 주기를 바라는 상대를 필요로 하는 우정관계일 때 상대방도 불완전한 한계를 지닌 인간이기에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내가 소외 당하고 차별당하고 무시당하는 것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되어 이러한 감정에 사로잡히다 보면 좌절하고 상처를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상호 기쁨을 주는 우정관계는 하느님께 중심을 둔 우정관계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설령 섭섭하게 해도, 내게 상처가 된 말들이 그냥 그사람의 감정이기도 하고 역시 불완전한 다 같은 인간 존재의 한계로 받아들이다보면 이해하고 넘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선물이 되는 자유" 곧 주님을 따라가는 자유에 이를 때까지 신음하기도 하고 또다시 벗어나기도 하고, 반복하면서 점점 자유에 이를것이라는 희망이 있기에 저는 또다시 일어섭니다.

 

"성령을 하느님의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날과 우리의 몸이 해방될 날을 고대 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8, 23-24)" 라는 말씀처럼 자유롭게 되기 까지 고통속에서 신음하고 있으나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고 삶으로 살아낼 때 저는 우울과 슬픔을 넘어서서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기쁨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좌절 속에서도 저를 일으켜 세워주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저는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이웃에게 선물이 되는 자유에까지 도달할 것입니다.

 

이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고 돌아오는 길에 차안에서 묵주기도를 간절히 바치며 제가 직면하고 있는 아픔을 봉헌하였습니다. 잘 이끌어 주십사하는 소망을 담고서...  

 

그리고 이 날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제가 오해받았던 부분을 해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고, 제가 오해하는  부분도 어느정도 이해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심한 오해를 받는 줄도 모르다가 우연히 오해를 받고 있음이 드러났고, 무엇인지 모를 좋지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어서 참 힘들었는데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커다란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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