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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 9월 30일 야곱의 우물 - <소스>입니다. ♣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4-09-30 조회수692 추천수2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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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 9월 30일 - 추수할 일꾼 ♣</b>
<FONT color=gree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독서 : 욥 19,21-27 또는 2디모 3,14-17
  복음 : 루가 10,1-12 또는 마태 13,47-52 ※
<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그때에 주께서 달리 일흔두 제자를 뽑아 앞으로 찾아가실 여러 마을과
고장으로 미리 둘씩 짝지어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떠나라.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마치 어린양
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구나.

다닐 때 돈주머니도 식량 자루도 신도 지니지 말 것이며 누구와 인사
하느라고 가던 길을 멈추지도 말라.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댁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여라.

그 집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살고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머무를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주인이 주는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그 집에 머물러 있어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집 저집으로 옮겨다니지 말라.

어떤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환영하거든 주는 음식을 먹고 그 동네
병자들을 고쳐주며 하느님 나라가 그들에게 다가왔다고 전하여라.

그러나 어떤 동네에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너희를 환영하지 않거든
길거리에 나가서  ‘당신네 동네에서 묻은 발의 먼지를 당신들한테
털어놓고 갑니다.그러나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 것만은 알아두시오’
하고 일러주어라.

내 말을 잘 들어라. 그날이 오면 소돔 땅이 그 동네보다 오히려
가벼운 벌을 받을 것이다.”
(루가 10,1­-12)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황량하고 돌투성이인 사막의 가장 외진 곳,
그곳에는 수도자조차도 두려워하는 뜨거운 태양열이 불타고 있었는데,
나는 나 자신이 기쁨 가운데 그리고 로마 군중 가운데 있는 것 같았다.

지옥의 두려움 때문에 나 스스로 나 자신을 처벌한 이 추방과 감옥에서,
나는 여러 번 눈앞에 로마 처녀들의 춤추는 광경을 마치 내가 그들
가운데 있는 것처럼 상상을 했다.

그것은 나의 차가운 육신 안에서 그리고 나의 바짝 마른 근육 속에서
죽은 것 같았으며, 열정만이 살아 있었다. 이 열정의 원수와 함께
나는 혼자서 예수의 발 아래 몸을 던졌으며 나의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그리고 나는 몇 주일 단식함으로써 나의 육체를 길들였다.

나는 내가 받은 유혹을 폭로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라는 것을 슬퍼한다.”(성 유스토키움에게 보낸 편지)

예로니모 성인은 격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그는 빨리 화를 내지만 빨리 후회하는 성격이었고,
다른 사람의 결점보다 자신의 결점에 가혹했다고 한다.

돌로 가슴을 치는 예로니모의 초상화를 보면서 한 교황이 말하기를
“당신이 그 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잘하신 일입니다. 만일 그것이
없었다면 교회가 결코 당신을 성인으로 추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도 히브리어로 된 구약과 그리스어로 된 신약을
라틴어로 번역한 성서학자다. 예로니모 성인은 주님께서 주신 성격과
성향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줄 아는 분이셨던 것 같다.

성서를 번역하기 위해서 스스로 준비를 했고 훌륭한 스승을 찾기 위해
서 애를 썼고 몇 년씩 한 곳에 머물면서 배웠다고 한다.  그런 준비가
어느 정도 된 후에는 팔레스티나를 두루 여행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성서를 공부하면서 예로니모 성인의 전구를 자주 청했다.
인간적인 약함보다는 주님을 위해서 그 약함까지도 활용할 줄 알았던
성인을 닮고 싶었고 최대한으로 공부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었기 때문
이다.

오늘 주님은 이리떼 가운데로 보내는 심정으로 제자들을 파견하신다.
이런저런 지침을 주시며 그 염려하는 마음을 표현하신다. 제자들이
지닌 인간적인 한계가 몇 가지 지침으로 덮여지지는 않을 텐데도
주님은 제자들에게 다니면서 추수할 일꾼을 만나라고 하신다.

둘이 셋이 되고 셋이 열이 되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라 하신다.
아마 주님은 공동체야말로 서로 있는 것을 다 내어놓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곳임을 아신 것 같다.

<b>박강수(재속회 선교사) </b>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   【 안나의 묵상나누기 】   †
<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돌로 가슴을 치는 예로니모의 초상화를 보면서 한 교황이 말하기를
“당신이 그 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잘하신 일입니다. 만일 그것이
없었다면 교회가 결코 당신을 성인으로 추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b>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돌을 들어 상대에게 던지는 것만큼 쉬운 일이 있을까.
돌을 들어 자신에게 던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상대방을 향하여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데 남은 세 손가락은 나에게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남의 것은 왜 그렇게 잘 보이는지 모른다. 나
에게는 말할 수 없이 관대한 자신을 바라보니 오늘 말씀이 내내 떠나
지 않는다.
<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마태오7,1-5]</b>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판단하는 대로 너희도 하느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남을
저울질하는 대로 너희도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들어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네
눈의 티를 빼내어 주겠다.'고 하겠느냐?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지 않겠느냐?"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언제 들어도 <b>앗!</b>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이시다.
하느님을 내 안에 모시고 살면 내 안에 있는 티가 먼저 보인다.
그러나 하느님과 잠시라도 멀리있거나 신앙생활의 방학을 맞이
하면 당근으로 상대방의 티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한가지씩 <b>☞</b>
들춰내기 시작하게 된다.

어제 친구와 전화 통화중에 이런 대화를 나눴다. 얼마전 부턴가
천주교와 개신교의 차이점에 대해서 많이 묻고 다닌다는 것이다.
같은 아버지!라는 것만으로는 설득력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인터넷 사이트도 가입을 못하고 밖에서 내내 서성거린다
고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예전에 개신교 안에서는 성찬식을 1년에
부활절과 성탄절 두 번을 했었지만 가톨릭에서는 매 미사 시간
마다 주님을 내 안에 모시는 성체성사가 내 삶을 바꿔놓았고,

악한 길에서 떠날 수 있도록 힘을 주셨으며,
깊은 신앙의 길로 인도해주었으며,
주님과의 만남이 새롭게 느껴졌으며,
묵주기도의 신비를 체험하였으며...,
하하, 오늘 수다도 길어질 것 같다.((*^_ _ _^*))

앗!나도 보통 사는이들과 다를바 없으나, 남을 향하여 ☞하는 것
보다 나를 향하여 ☜견주어보는 시간이 더 많아진 것이다.
<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b>인간적인 약함보다는
주님을 위해서 그 약함까지도 활용할 줄 알았던 성인</b>
<FONT color=#005e77 style="FONT-SIZE: 11pt">을 생각하니 <b>[캐롤 위모]</b>의 다음 글이 생각났다.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는 ★</b>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는
구원받은 자임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한때는 죄인이었음을 속삭이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을 선택했노라고.

교만한 마음으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실수하는 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도우심이 필요했노라고.

강한 자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이 힘주시기를 기도하노라고.

성공했음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했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내가 진 빚을 다 갚을 수가 없노라고.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이 아니라
몰라서 혼란스러움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겸손히 하느님의 가르치심을 구하노라고.

온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이 많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하느님의 인정하심만을 믿노라고.

삶의 고통이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내 몫의 고통을 지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이름을 찾노라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권위가 내게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오직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있을 뿐이라고.
<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2고린토11,30]
내가 구태여 자랑을 해야 한다면 내 약점을 자랑하겠습니다.

[2고린토12,10]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약해지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며,
모욕과 빈곤과 박해와 곤궁을 달게 받습니다. 그것은 내가
약해졌을 때 오히려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b>
<FONT color=gree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 하느님의 평화를 빕니다.†</b>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과연 이 안일한 시대에 살면서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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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자답하는...안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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