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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83) 푸세식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4-09-30 조회수957 추천수8 반대(0) 신고

2004년9월30일목요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 ㅡ욥기19,21-27;루가10,1-15ㅡ

 

                   푸세식

 

 

아저씨 더러 손바닥 보다 조금 더 큰 터를 정리 하게 하고 달랑 두그루만 남은 감나무 주위를 빙둘러 파시라고 했다.

 

예부터 감나무는 막걸리와 사람의 똥물을 먹어야 열매가 실하고 떨어지지 않는 법이라고 했다. 실제로 전에 장고리 남의 빈 집을 수리 해서 살 때는 똥통이 드럼통 하나를 땅에 묻어 판자 둘을 나란히 올려 놓고 쌌다. 그 국물을 한그루 밖에 없는 감나무에 늘상 퍼댈 수 밖에 없었다. 그 나무의 단감은 굵고 실하며 단 맛이 진했다. 무엇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농사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퇴비를 만들만한 볏짚이 없었다. 볏짚이 없다보니 똥물을 퍼 댈만한 장소가 없다.

 

그런데 고장마을에 집을 사서 이사를 해서도 그들이 똥을 퍼 올릴 곳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 였다. 똥간에 똥은 가득 차서 탑이 세워지고 그 탑은 곧 그들이 놓은 똥이 그들의 항문에 닿을 기세를 하고 있다. 그 집의 똥간은 시멘트 콘크리트로 크게 짜여져 그 규모가 비교되지 않을 만큼 깊고 넓었다. 살았던 주인이 살고, 병들고, 죽고, 비어 있었던 수 년 동안에 단 한 번도 변소를 퍼내지 않았다고 한다.

 

아저씨께서 감나무 주변을 장딴지가 모두 들어 갈 만큼 깊이 파셨다. 수 년을 삭아서 새까맣게 우러나 구리지 않은! 눈이 찌리 하고 코끝이 쎄에 할 만큼 시큼한 냄새의 마알간 똥국물을 그 구덩이에 연실 퍼다 부었다.

속이 보이지 않을 만큼 똥간의 깊이는 낮아 졌는데!

대변의 탑이 그들의 항문을 찌를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오후가 되어 실어증으로 말을 할 수 없는 아저씨의 행동이 부산하고 다급하시다.

“뭔 일이 생겼소?”

하고 여쭈니 굵고 투박한 손가락으로 감나무 텃밭 아래 축대를 가리킨다. 한달음에 뛰어가 내려다보았다.

너무 똥물이 많았던 것일까?

앞집 할머니네 초가집 뒤뜰의 처마 밑으로 그들의 텃밭 축대에서 똥물이 새고 있었다.

“욕 얻어 묵것네.

객지 것들이 남의 집에다 똥 펐다는 소리 듣것네.

아저씨 어떻게 해봐요.”

비상이 걸렸다.

 

앞집에를 가 보아도 할머니는 마실을 가셔서 계시지 않고, 뒤 곁에서는 똥 냄새가 곰삭아서 시큼허니 골골하게 진동을 하고!

구덩이를 팠던 흙으로 다시 구덩이를 메우게 되면 그 흙이 덜 스며든 똥물을 빨아들일 것 같았다. 흙을 한 삽 넣어 보는 순간 어른 장딴지 깊이로 찬 똥물이 튀어 올랐다.

“첨벙”

“으 으 으 으 으 ! ! ! ”

외양간에서 남의 소 먹일 볏짚을 좀 긁어다가 대충 덮고 다시 흙을 몇 삽 떠서 구덩이를 채우려 했다. 그러나 진국물 위에 볏짚이 둥둥 떠 있을 때뿐이고 금새 젖어 가라 앉아 버렸다. 똥물은 텁텁한 양념국물이 되어 왕관을 만들며 튀어 올랐다.

“첨벙”

“으 으 으 으 으 ! ! !  ”

아저씨만 재촉하고 분주하다. 새어나온 똥물을 어떻게 막을 방도가 없었다.

 

그 때 마실 가셨던 할머니께서 귀가 하셨다.

“할머니, 어쩌까요? 잉?

이리 쪼까 와 보씨요. 잉.

집에 가 봐도 안지시드구먼.”

자초지종을 듣던 할머니는 축대 밑을 어림으로 살펴 보셨다.

“냄새나 쫌 덜 나게 흙이로 요리 조리 살살 덮어보제에?”       

해 달라고 하시는 대로 흙을 뿌려 덮었지만 그렇다고 몇 년을 곰삭았을 냄새가 흙속으로 들어 갈 일이 아니지 않은가?

“할머니, 죄송해서 어쩔께라우.

이렇게 셀 줄 알았쓰먼 안 했지라. 잉.”

본심은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있었다.

“한번 해 뿌린 것을 우짤것인가.

 벨 수가 있당가!

 쇠주 있쓰먼 나 쇠주나 한잔 주소.”

할머니를 모시고 방으로 들어와 소주 한 잔을 따랐다.

 

젊어서 이섬 저섬을 다니며 봇짐장수를 해다가 구물구물한 자식들의 끼니를 때웠을 때는 떠돌이 아낙의 설음에 눈물지으시다가! 겨우 초등학교를 마치고 뭍으로 나가 논 사고 밭 사고 제법 먹고 산다는 딸 자랑에는 웃으시다가! 멀리 도시로 나가 몇 년째 얼굴을 보지 못한 아들 생각에는 묻지도 않은 자식을 변명 하시느라고 진땀을 흐르시다가! 궁핍하던 시절에 밀가루 배급이라도 타서 입에 풀칠하는 보탬이라도 되려고 성당에 나가 코쟁이 신부님께 세례도 받았었고! 마을마다 개신교가 생기고 그 파벌을 이기지 못해 개종을 해버린! 현실의 무지한 정신세계를 한탄 하시다가!

“나는 세례명이 김 테클라여. 성기당 댕긴 사람은 전부다 한집안 식구인디......”

“... ... !” 

“밀가리만 타묵고 배반 했쓴께에 불구둥에 처백킬 죄로 갈랑가 모르것써어.”

“... ...?”

 

할머니는 삶을 체념한 듯이 열려진 방문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초가에 눈길을 고정하신다. 여러 해 동안 지붕에 이엉을 올리지 못했다. 비닐하우스에 덮는 보온 덮개를 덮어 초가삼간 오막살이가 덮개삼간 추막살이로 변해버린 집을 향해 애달픈 헛손질을 하셨다.

“나 죽으먼 애 어멈이 저놈의 되깨비 소굴같은 집꾸석일랑 씨러 뿌리고 마당 삼어서 살어줘어”

하시는 푸념에는 한 늙은 여인의 무상한 삶의 끝자락을 보둠어야 하는 섬짓함이 느껴졌다.

“자식들이 있으신데요”  라고 뱉어 내 버렸다.

 

많지도 않은 술잔에 취기가 도셨는지 굽힌 허리를 펴신다.   

“나는 쒜주만 묵네

 맛난 괴기도 소용없고 쒜주 두 잔만 주먼 질로 고맙네

 잘묵고 가네”

부축해서 모셔다 드리고 초막에 쓰러져 혼자 누운 할머니가 걱정이 되었다.

‘암모니아 가스에 잘 못 되시면 어쩌나?’

‘빈속에 술을 드렸는데 밥을 좀 드시게 할 걸.’ 

오후 내내 마당을 서성이다가 해가 저물 무렵 다시 그 초막 문을 열었다. 할머니는 세월에 온전히 초연한 모습으로 아무 탈 없이 곤하게 잠이 들어 계셨다.

 

참으로 시골 인심이다.  객지 것들이 미친 짓 했다고 동네에서 쫏겨 날까 봐 걱정 했는데 할머니의 주름만큼 깊은 마음은 그들의 어설픈 잘못을 그대로 흡수 하시고 말았다.

 

똥을 푸라고 단단히 이르고 육지에 나간 남편이 깊은 저녁에 전화를 했다.

“똥은 펐는가?”

“푸기는 펐는디 큰일 났다.”

“왜? 똥통에 누가 빠졌는가?”

“그것이 아니고 똥을 펐는디 그 똥물이 앞집 할머니네 축대로 새 버려서 냄새가아........으읔크흐흐!”

“으어허?! 많이 나??”

“농창하니 몇 년을 곰삭은 국물인디 시큼허니 지독허제. 잉”

“푸 우 하 하 하 하- - - - - ”

그들은 전화에 대고 심각한 일을 그만 뱃살이 땡기도록 웃고 말았다.

           ―위대한 푸세식 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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