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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자유에 의한 선, 또는 악의 선택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08 조회수1,174 추천수12 반대(0) 신고
 

◎ 2004년10월8일(금) -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오늘의 복음]  루가 11,15-26

<나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14) 예수께서 벙어리 마귀 하나를 쫓아 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벙어리는 곧 말을 하게 되었다. 군중은 이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15) 그러나 더러는 “그는 마귀의 두목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하였으며 16) 또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하늘에서 오는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17)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갈라져서 싸우면 쓰러지게 마련이고 한 집안도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망하는 법이다. 18)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하는데 만일 사탄이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그 나라가 어떻게 유지되겠느냐? 19)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면 너희 사람들은 누구의 힘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냐? 바로 그 사람들이 너희의 말이 그르다는 것을 지적할 것이다. 20) 그러나 나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사람이 빈틈없이 무장하고 자기 집을 지키는 한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그보다 더 힘센 사람이 달려들어 그를 무찌르면 그가 의지했던 무기는 모조리 빼앗기고 재산은 약탈당하여 남의 것이 될 것이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사람은 나를 반대하는 사람이며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헤치는 사람이다. 24) 더러운 악령이 어떤 사람 안에 들어 있다가 거기서 나오면 물 없는 광야에서 쉼터를 찾아 헤맨다. 그러다가 찾지 못하면 ‘전에 있던 집으로 되돌아가야지.’ 하면서 25) 돌아간다. 그리고 그 집이 말끔히 치워지고 잘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26)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흉악한 악령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 자리 잡고 살게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의 형편은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된다.”◆


[복음산책]  자유에 의한 선, 또는 악의 선택


  선(善)과 악(惡)이 공존하는 것으로 보이는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은 선(善) 자체이신 하느님이 창조하신 만물을 두고 매번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장)고 하셨는데, 왜 악이 존재하는 지에 대한 의문을 가진다. 악에 대한 의문과 질문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어린아이나 의인(義人)이 당하는 불행을 직면할 때 더욱 고조(高潮)된다. 유사 이래 사람들은 세상의 선과 악의 문제를 두고 골머리를 앓아왔다. 우리가 창세기의 천지창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신앙의 결론은 세상은 선하신 하느님에 의해 선(善)하게 창조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악이 존재하는가? 가톨릭신앙은 사실상 악의 독자적인 존재를 부인한다. 잘라 말하면 악은 선의 결핍(缺乏)이다.(토마스 아퀴나스) 그러므로 악의 존재를 인정하려들기보다는 선의 결핍을 안타까워해야 한다는 말이다.


  천사론(天使論)에 관한 가톨릭신학은 세상과 인간보다 먼저 천사들이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창조된 천사들 중에서 순전히 자신의 자유의지로서 창조주이신 하느님과의 동등한 존재가 되기 위해 교만과 허세를 부리던 천사들이나, 사람이 되신 하느님 예수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한 천사들이 타락하여 마귀의 무리가 되었다. 천사들이 하느님의 사자(使者)로 창조되어 하늘에서는 하느님을 보필하고, 땅에서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임무를 가졌다면, 마귀들이 그 반대의 행세를 할 것은 뻔한 일이다. 따라서 세상을 사는 인간도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 물리적(物理的)으로 선을 행할 수도 있고, 악을 행할 수도 있으며, 동시에 영적(靈的)으로 천사와 마귀의 세력에 노출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이 마귀의 세력에 사로잡히면 자신의 자유의지가 약해지거나 심한 경우에는 전부를 약탈당해 사람의 구실을 못하고 존재를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거나, 나쁜 악행을 반복해서 습관적으로 저지른다면 ‘마귀 들림’을 의심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미루어 볼 때 우리는 복음서들이 왜 예수님의 구마기적활동에 그토록 비중을 두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마귀를 쫓아낸다는 것은 바로 마귀 들린 그 사람에게 다시금 자유를 회복시켜주는 것이며, 회복된 자유는 또다시 선(善)과 악(惡)을 두고 선택의 기개(氣槪)를 과시하게 된다. 특히 마귀가 들려 귀머거리가 되거나 반벙어리가 된 사람들을 구마하여 치유해 주시는 예수님은 단순히 마귀를 쫓아낸 일만 하신 것이 아니라 치유된 사람에게 ‘말을 들음’과 ‘말을 함’의 기능, 즉 하느님 말씀의 경청과 발설의 기능(대화)을 되돌려 주시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벙어리 마귀 하나를 쫓아내신 예수님의 구마기적행적을 두고 반대자들이 예수님을 모함하려 든다. 반대자들은 예수께서 마귀의 두목 베엘제불의 세력을 빌어 마귀를 쫓아낸다고 말한다. 이 세상에서 마귀와 그 세력을 몰아낼 수 있는 능력은 마귀자신들에게도 있고, 하느님에게도 있다. 마귀들이 다른 마귀들을 쫓아낼 수는 있지만 그것은 마귀 들렸던 사람을 이전보다 더 비참하게 만들기 위함이다.(24-26절) 그러나 하느님께서 구마(驅魔)하심은 사람에게 인간본연의 품위와 자유, 그리고 말씀의 경청(傾聽)과 발설(發說)을 돌려주시기 위함이다. 이 일을 예수께서 하신다면 그는 하느님이시며, 그로 인해 이 땅에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한 것이다.(20절) 이에 인간은 언제든지 자신의 자유의지를 통하여 선(善)의 편에 설 수도, 악(惡)의 편에 설 수도 있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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