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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17) 묵주와 성모상
작성자유정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08 조회수1,215 추천수7 반대(0) 신고

우리집 성모님은 요즘 난의 향기에 흠뻑 취해 계신다.

문갑 두 개를 붙여놓은  중앙에 성모님과 예수님을 모셔놓고 양옆에는 일곱개의 난화분이 도열해 있다. 성모님 바로 옆의 예쁜 칸막이 상자에는 열개가 넘는 가지각색의 묵주가 영롱한 빛깔을 자랑하며 담겨있다.

 

우리집에 성모님이 오신지도 어느덧 13년이 되어간다.

92년도 부활절 영세받던날 대모님께서 선물하신 성모상이다.

처음 3년간은 나이롱 신자로 지내다가, 그 후  6년간은 아예 쉬다가 2001년부터 다시 하느님 곁으로 오기까지 대모님은 어디로 가셨는지 소식도 모르는데 그래도 성모님은 우리집 안방에서 계속 거하고 계셨었다. 성당에 발길 끊은 6년 동안에도.

 

한  때 난 성모상을 다시 사고 싶은 적이 있었다.

성물방에 가보면 날렵하고 화사하고 예쁜 성모상이 무척 많은데 우리집 성모님은 참 구닥다리 모습에 투박하고 색깔도 칙칙하고 팔뚝도 너무 굵어 진짜 촌스럽다.

세련되고 우아한 성모님을 모셔놓으면 집안 분위기도 좀 살아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난 끝내 그러지 못했다. 내가 정말 힘들때, 내가 고통스러울때, 슬펐을때, 그 앞에서 눈물로 기도하며 구원을 바랐던 그 기억들을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려울때 어머니가 돼 주셨고 친구가 돼 주셨고  은총의 전구자가 돼주셨던 그분을 어찌 배반할 수 있으랴!

 

처음 영세받고 성당에 오락가락하던 시절, 3000원을 주고 샀던 분홍색 묵주가 생각난다. 묵주기도도 할 줄 모르고 묵주에 대한 애착심도 없어 얼마후엔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냉담 육년만에 돌아왔을때 난 묵주 한개 없는 신자였다.

구역장이 반장들을 대동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기도를 무려 4개월동안 해주었는데 그때 묵주 한 개를 선물받았다.

 

그러던 어느날 구역장께서 조촐한 경양식집으로 나를 초청했다. 할 얘기가 있다고 하면서.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한 마음으로 나간 나에게 구역장님은 다짜고짜 묵주 두 개를 식탁위에 내 놓으며 (이거 뇌물은 아니예요.) 하는 거였다.

사실 그건 뇌물보다 더 무서운 것이었다.

구역에 반장자리 하나가 공석인데 할 사람이 없으니 맡아줄 수 없냐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게 아닌가!

결국 그 묵주 두 개에 코가 끼여 아직도 반장 굴레를 못 벗어나고 있다.

 

사실은 4개월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가정방문에 기도해 준 그 친절을 차마 뿌리칠 수 없었던 거였다. 구역장은 그 후로도 수시로 손수 만든 묵주를 선물하곤 했는데 그게 열 개가 훨씬 넘었다. 반장 잘하라고 먹이는 뇌물이었다. 그렇게 수시로 뇌물을 안기니 어찌 반장 그만 두겠단 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사실은 따뜻한 사랑의 표시임을 알기에 그 마음을 배신할 수 없어 끽소리 못하고 아직도 반장이다.

 

묵주와 성모상!

신심이 없었을때 묵주는 그저 구슬 꿴것에 불과했고 성모상은 아무런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그저 우상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마음에 신앙이 자리잡고부터 묵주의 영롱함이 마음을 사로잡고 성모상은 생명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많은 말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성모상이 하나의 돌덩이가 아니고 생명이 느껴지는 존재가 되므로 바꿔치기 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것이다. 영원히 함께 가야할 우리집 성모상이다.

 

우리집 성모님은 요즘 참 좋아보이신다.

일곱개의 난이 실실한 녹색 잎사귀로 우아하게 당신을 마치 호위하듯 양 옆에 서있으니 얼마나 든든하고 아름다운가!

퐁퐁이로 닦아도 빛깔이 살아나지 않고 촌티 나는 성모님이지만 우아한 화분 덕분에 훨씬 생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이제 자세히 요모조모 뜯어 뵈니 소박하면서도 음전한 구석이 있어 듬직하게 느껴진다.

 

바로 당신 옆의 상자에서 자태를 뽐내는 묵주들....

뽀얀 진주, 붉은 자만옥, 푸른 옥, 화려한 칠보, 보랏빛 자수정, 크리스탈, 캣츠아이, 소박한 나무묵주에 이르기까지 이름도 가지가지, 얻어 가진  잠벵이가 참 많기도 많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겐 아무리 귀중한 것을 준다해도 그 가치를 모를 것이다. 아무리 귀한 보석도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겐 한낱 돌덩이에 불과하듯 불심이 없는 사람에겐 염주가 소용없고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에겐 묵주가 별 의미를 갖지 못 할 것이다. 나역시 신앙심이 없던 시절엔 묵주의 소중함과 애착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묵주가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지는건 내마음에 이제 신앙심이 가득 히 채워졌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는 묵주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기도하지 않는 묵주가 무슨 소용이 있나? 바라보기만 하는 묵주, 들여다보기만 하는 묵주는 그저 장식품에 불과할 것이다. 묵주를 여기저기 많이만 가지고 다니는게 능사가 아니고 진실한 기도가 중요하다는 신부님의 훈화말씀을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진실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분명 어리석고 불행한 일일 것이다. 이 아름다운 묵주들 골고루 애용하고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이 아름다운 묵주가 진열장의 장식품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매일매일 성모님 앞에서 묵주의 기도를 바치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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