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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스도교 안의 물고기 상징(묵상)
작성자권상룡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12 조회수994 추천수5 반대(0) 신고

그리스도교 안의 물고기 상징과
물위를 걸어가는 기적사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관점

 

로마 박해시절 신자들끼리 서로 교환하던 암호가 물고기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요한복음 8장 6절에 간음하다 들킨 여인을 앞에 두고 예수가 땅바닥에 무언가 쓰고 있었다는 것이 물고기 문양임을 전해져오고 있다. 또 흔히 교황을 베드로의 후계자로 물고기를 낚는 어부로 상징하는 이야기도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러나 왜 물고기를 크리스찬의 상징으로 사용하는지의 이유에 대하여서 설명해주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을 희랍어의 머리말만 따서 연결하면 익투스(Ichthus: Iesous Christos Theou Uios Soter = Jesus Christ, Son of God, Sa vior)라는 단어가 되어 희랍어로 물고기라는 뜻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점성가들에 의하면 예수는 물고기띠 해, 물고기띠 달에 출생하였다고 하여 물고기 두 마리(마르6:38/41)를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삼는다고 한다. 그러나 점성학의 열 두 띠의 표식은 예수 훨씬 이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마르꼬6장 38절과 41절에 두 마리의 물고기 이야기가 나온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두 마리 물고기는 점성학에서 말하는 물고기 띠의 상징이다.

 

점성학에서는 원을 사등분하고 이를 다시 30도씩 셋으로 쪼개 전체가 열 두 개의 띠로 나누어지며, 각 띠가 장악하는 원의 부분을 집이라고 부른다. 이를 하나의 왕국으로 간주한다면 열 두 개의 왕국이 존재한다. 그래서 과거 2천 년 동안을 하느님이 물고기 왕국, 즉 두 마리 물고기 집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고대 점성학의 논리를 따르면 하느님은 때가 되면 물고기 집에서 나와 다음 집인 물동이를 메고 가는 사람의 집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루가복음 22장 10절에 물동이를 메고 가는 남자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와 열 두 제자가 유월절의 마지막 날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물동이를 진 남자의 안내로 물고기 집에서 나와 물동이를 진 남자의 집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점성학의 관점으로 볼 때, 성경에서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요한복음14:2)라는 말은 점성학에서 말하는 열 두 개의 집을 말한다. 아버지의 집은 하느님 나라 즉 '우주 전체'를 말하며 열 두 개의 집을 뜻하게 된다.

 

물고기와 어부에 관한 이야기는 희랍신화에도 근원이 깊숙이 박혀 있다. 희랍 신 오르페우스(Orpheus)는 낚시를 갖고 물고기를 낚는 어부이다. 희랍 신화에 의하면 물이란 무지(無智)의 세상이다. 따라서 물에 사는 물고기는 무지한 대상이다. 그래서 어부가 물고기를 낚아 물 밖으로 끄집어낸다는 것은 무지의 세상에서 유지(有智)의 세상, 즉 사리분별을 이해하는 인간으로 만든다는 의미이다. 물이라는 경계선을 기준으로 물 속의 세상밖에 모르는 무지한 물고기에게 물 밖을 의미하는 물위의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다는 의미도 담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가 물위를 걸으신 기적(마르6:45-52)사화의 의미도 그런 접근방식에서 한 번 이해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물위를 걸어가는 기적사화의 주제는
자연현상마저도 주님의 발아래 있음을 강조하고자 하는 면도 있겠지만 그보다
세례성사의 물을 경계로 넘어서는 /신앙 생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새롭게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의심과 낙담과 절망으로 내딛는 신앙의 걸음은 결국 자신을 물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베드로의 걸음이 될 뿐이다.(마태14:28-31) 바로 성서 안의 예수가 물위를 걸어오듯이 이제 신앙인들은 하느님을 향한 믿음의 걸음을 물위를 걸어가는 모습으로 인식해나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로 향하는 신앙의 걸음은

물을 경계로 할 때/, 물 속이 아닌 물위의 세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노예생활로부터
홍해를 건너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선 것처럼 
세상의 굴레에 길들여진 삶의 관성으로부터
세례성사의 물을 경계로 넘어서는 /신앙생활을 통해
하느님 뜻 안에 속한 삶을 살아감을 의미한다
볼 수 있다.

 

또한 예수는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다.(요한3:5)
물위를 걸어가는 기적사화
구약(물 속에 가라앉는 율법)과
신약(물위로 떠오르는 사랑의 계명)을 잇는
세례요한의 물세례를 경계 할 때-------- 
물위를 상징하는 세계는
예수 안의 신약의 계명인
사랑의 성령 안에 살아가는 삶을 의미한다
고 볼 수도 있다.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것은
구약의 세례 요한의 물세례(회개상징)와
신약의 예수의 사랑의 성령 안에 살아가는 삶
으로
그 당시의 복음 현장 안에서의 숨은 뜻을 파악하며 해석해 볼 수 있다.
글쓴이 : 권 상룡(세례요한)
2004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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