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복음산책) 사랑만이 율법의 정신이다.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13 조회수1,239 추천수14 반대(0) 신고
 

◎ 2004년10월13일(수) -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오늘의 복음]  루가 11,42-46

<너희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 율법교사들도 화를 입을 것이다.>


  42) “너희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그 밖의 모든 채소는 십분의 일을 바치면서 정의를 행하는 일과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구나. 십분의 일을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이것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43) 너희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즐겨 찾고 장터에서는 인사 받기를 좋아한다. 44) 너희는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다. 사람들은 무덤인 줄도 모르고 그 위를 밟고 지나다닌다.” 45) 이때 율법교사 한 사람이 나서서 “선생님, 그런 말씀은 저희에게도 모욕이 됩니다.” 하고 투덜거렸다. 46) 그러자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율법교사들도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견디기 어려운 짐을 남에게 지워 놓고 자기는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는다.”◆


[복음산책]  사랑만이 율법의 정신이다.


  목욕재계(沐浴齋戒)라는 말이 있다. 큰일을 앞두고 부정(不淨)을 타지 않기 위해 깨끗이 목욕을 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몸을 깨끗이 닦는다고 항상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다. 몸을 씻는 일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일은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다. 목욕을 못해 몸이 더러운 사람이 무조건 더러운 마음을 가졌다고 볼 수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겉이 깨끗하면 속도 깨끗할 것이고, 겉이 더러우면 속도 더러울 것이라고 믿는 우리들이다. 예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깨끗한 그릇 속에 담긴 더러운 착취와 사악함을 보셨다. 그래서 정결예식의 참뜻을 내세워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책망하신 것이다. 진정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한 자선과 봉사라고 가르치셨다. 오늘 복음에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본격적인 불행선포가 보도된다.


  어제 복음을 통하여 언급하였듯이 마태오복음은 바리사이와 율사들을 함께 묶어 그들에 대한 7번의 불행을 선언한다.(마태 23,13-32) 그들이 불행한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자. ① 하늘나라의 문을 열고 닫는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가로막는다.(13절) ② 갖은 노력으로 한 사람을 개종시켜 더 악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든다.(15절) ③ 성전맹세는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나 황금맹세는 꼭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16-22절) ④ 십일조 율법은 철저하게 지키면서 정작 정의와 자비와 신의를 소홀히 한다.(23-24절) ⑤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닦지만 속에는 착취와 탐욕이 가득 차 있다.(25-26절) ⑥ 겉으로는 옳은 듯 하나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차 있다.(27-28절) ⑦ 예언자들의 무덤을 꾸며놓고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29-32절)


  루가복음은 바리사이들에 대한 불행선언 셋과 율사들에 대한 불행선언 셋을 보도하고 있다. 우선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불행선언의 이유를 보자. ① 십일조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소홀히 한다.(42절) ② 회당에서 높은 자리와 장터에서 인사 받기를 좋아한다.(43절) ③ 사람들이 모르고 그 위를 밟고 지나가는 무덤과 같다.(44절) 그 다음 율법학자들에게 내려지는 불행선언의 이유를 보자. ① 남에게는 어려운 짐을 지우고 자신은 손가락도 대지 않는다.(46절) ②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꾸미면서 죽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47-51절) ③ 지식의 열쇠를 치워버려 자신도 들어가지 않으면서 들어가려는 사람마저 막는다.(52절)

   

  오늘 복음은 바리사이들에 대한 세 가지 불행선언과 율사들에 대한 첫 번째 불행선언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예수님 당대에 모든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율법학자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통상 율사들은 바리사이들 부류에 속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이를 양심적이고 전적으로 따르는 데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율법이라면 마지막 가장 사소하고 작은 것까지도 지키도록 요구하였고, 자신들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다 보니 율법을 주신 하느님의 뜻과 정신은 사라지고 율법 자체가 그들의 목적이 되어버렸다. 결국 율법보다 귀중한 인간에 대한 참다운 정의와 사랑이 떠나버렸고, 하느님 스스로도 율법을 떠나버리신 것이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율법은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우리도 하느님의 일을 하면서 정작 하느님은 잃어버리고 일만 붙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복음을 선포하고 성사를 집전하고 배령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예식에 치중한 나머지 복음과 성사의 원초적인 선포자요 집전자이신 예수님을 망각하고, 마치 사람에 의해 모든 일이 성사(成事)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그렇다. 갓난아기를 키우는 A엄마가 있다고 하자. 하루는 엄마가 갓난아기를 업고 고객잔치를 한다고 선착순 100명의 엄마들에게 신형 밥통을 공짜로 준다는 백화점으로 달려갔다. 이미 백화점 정문 앞은 소식을 듣고 달려온 엄마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가까스로 A엄마는 100명 안에 들어 고대하던 밥통을 탔다.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던 A엄마, 밥통을 품에 안고 버스를 탔다. 그제야 뒤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업고 있던 갓난아이가 없어진 것이었다. 우스개 이야기 같지만 우리들의 모습을 얼마나 잘 대변해 주고 있는가? 마찬가지로 빈껍데기와 같은 율법에 믿음과 의리, 즉 신의(信義)를 건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다고 예수께서는 율법과 사랑을 대립시키지는 않으셨다. 그분은 오직 빈껍데기 율법에 다시금 사랑과 정의를, 즉 하느님 스스로를 채워주시려 하신 것이다. 사랑만이 율법의 참 정신이며, 사랑의 실천만이 율법을 완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