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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14 조회수1,216 추천수14 반대(0) 신고
 

◎ 2004년10월15일(금) -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 예수의 성녀 데레사 (1515-1582) 동정 학자

    

  2,000년의 가톨릭교회의 역사상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하나있다. 그것은 1970년 바오로 6세 교황이 우리 교회의 많고 많은 성녀들 중에서 두 성녀를 뽑아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던 것이다. 두 성녀가 바로 오늘 축일의 주인공인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1970년 9월 27일 선포)와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1970년 10월 4일 선포)이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1515년 3월 28일 스페인의 아빌라에서 부친 알폰소 산체스와 모친 도나 베아트리쯔 사이의 부유하고 다복한 가정에서 11명의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당시 유럽세계는 혼란과 개혁의 진통을 겪고 있었으니, 그것은 프로테스탄트의 강렬한 종교개혁과, 갓 태동한 인문주의와 문예부흥(르네상스)의 물결이었다. 성녀는 이런 새로운 시대 안으로 태어난 것이다. 어릴 적 성녀는 발랄한 성격과 아름다운 미모와 풍족한 재산을 바탕으로 멋진 결혼을 꿈꾸었다. 그러나 12살에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자신의 마음을 성모님께 완전히 의탁하였다. 16살에 아우구스티노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았고, 1535년 만19살의 꽃다운 나이에 돌연 생각을 바꾸어 아빌라의 카르멜 수도회를 찾았다. 데레사에게 있어서 세속과의 이별은 ‘셀 수 있는 모든 뼈를 떼어놓는 것’과 같았다. 바로 이듬해 1536년 성녀는 갑자기 혼수상태에 돌입하여 며칠동안 병석에 눕는다. 사람들은 성녀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장례를 치려했다. 그러나 성녀는 혼수상태에서 환시를 보았던 것이다. 그 후 성녀는 끈기와 인내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시험을 견디어 낸다. 수도생활 20년째 되던 1555년 어느 날, 기둥에 묶여 갖은 고문과 채찍으로 만신창이 된 구세주의 모습이 담겨진 성화를 보는 순간, 강렬한 하느님의 힘에 사로잡혀 직관과 환시의 길로 접어든다. 그 후 성녀는 완덕의 길에 끊임없이 정진하여 신비로운 계시를 받는 은총을 누렸다. 성녀가 받은 환시와 계시의 내용은 당대 신학자들로부터 가톨릭 신앙과 일치하는 것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1560년 놀라운 계시를 접한 성녀는 대의를 위해 수도서원을 포기하고 스스로 노력하면서 제3자로 수도생활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 후 성녀는 같은 고향 출신인 십자가 성 요한(1542-1591)의 도움을 받으면서 ‘맨발의 딸들’을 완덕의 길로 초대하기 위해 수도회의 느슨한 규칙을 고대의 엄한 규칙으로 돌려놓았고, 스스로 수도회를 세웠다. 성녀는 새로운 시대사조와 신학적 오류로 말미암아 피폐한 교회의 쇄신과 개혁을 위해 여생을 바쳐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와중에 수많은 곤경과 반대에 부딪혔으나 하느님과의 놀라운 일치와 불굴의 용기로 이를 극복하였다. 성녀는 신비적인 계시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1573년에 ≪완덕의 길≫을, 1577년에는 ≪영혼의 성≫을 저술하였고, 그 외에도 수많은 수도생활의 가르침과 교회쇄신과 개혁에 관한 그들을 남겼다. 정열적인 가슴과 놀라운 직관력과 조직력을 가졌던 범상치 않은 부인, 신비신학자, 예수의 데레사는 1582년 10월 4일 살라망카의 알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데레사는 1622년 교황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해 이냐시오 로욜라(1491-1556),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506-1552), 마드리드의 이시도로(1070-1130), 필립보 네리(1515-1595)와 함께 시성(諡聖)되었다.◆


[오늘의 복음]  루가 12,1-7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낱낱이 다 세어 두셨다.>


  1) 그러는 동안 사람들이 수없이 몰려들어 서로 짓밟힐 지경이 되었다. 이때 예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그들의 위선을 조심해야 한다.” 하고 말씀하셨다. 2) “감춰진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3)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곳에서 말한 것은 모두 밝은 데서 들릴 것이며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것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4) “나의 친구들아, 잘 들어라.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은 더 어떻게 하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5) 너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이 누구인지를 알려 주겠다. 그분은 육신을 죽인 뒤에 지옥에 떨어뜨릴 권한까지 가지신 하느님이다. 그렇다. 이분이야말로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분이다. 6) 참새 다섯 마리가 단돈 두 푼에 팔리지 않느냐? 그런데 그런 참새 한 마리까지도 하느님께서는 잊지 않고 계신다. 7)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낱낱이 다 세어 두셨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그 흔한 참새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느냐?”◆


[복음산책]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느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과 불행선언의 대단원이 막을 내렸다. 그런데 예수님으로부터 크게 꾸지람을 들은 그들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물론 책망이나 질타를 듣고 기분 좋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지만, 충고에 감사하는 자세도 미덕(美德)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바리사이와 율사들은 예수께 앙심을 품고 질문공세를 펴 대답에서 트집을 잡으려는 등 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11,53-54)


  예수께서 모욕적인 언사를 통하여 바리사이와 율사들의 기세를 꺾었다는 소식이 삽시간에 주위로 퍼져 나간 모양이다. 오늘 복음의 시작부분이 언급하듯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서로 짓밟힐 지경이 되었다니 말이다. 예수께서는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룬 군중을 둘러보시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첫 번째 가르침은 우선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관련된 것으로서, 그들의 누룩과 위선을 조심하고 경계하라는 것이다.(1절)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비록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책망하고 그들에게 불행과 화를 예고하셨지만, 조심해야 할 것은 그 사람들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들의 누룩과 위선이라고 말씀하신 점이다. 역시 예수께서는 사람보다는 사람의 죄를 미워하신다. 누룩이란 사람에게 유익한 것으로서 원래 술을 만들 때 사용하는 발효제이다. 누룩은 미소한 양이라도 전체에 큰 효과를 내는 역할을 한다. 바로 이 점을 바리사이들의 고질적인 형식주의에 빗대어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런 누룩에 한번 젖어들면 전체를 주체하기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두 번째 가르침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이 지금은 감춰진 듯 제한된 장소와 시간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머지않아 온 세상에 선포될 것이라는 점이다.(2-3절) 오늘 우리가 성서를 통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이것이 바로 그 증거가 될 것이다. 예수께서 선포하시는 복음의 진리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이며, 또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복음의 진리는 있으나 이를 선포할 사람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제자들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서서히 깨닫는다.


  세 번째는 제자들이 진정 두려워해야 할 존재가 누구인지에 관한 가르침이다.(4-7절) 그 존재는 당연히 하느님이시다. 하느님께서는 영(靈)과 육(肉)의 모든 세계를 지배하시고 이를 권능으로 다스리는 분이시다. 그분은 제자들을 참새보다 훨씬 더 귀하게 여기시고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두실 정도로 사랑하신다. 따라서 제자들은 자신들을 박해하는 자는 물론 세상의 어떤 것에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제자들이 하느님 외에 다른 무엇을 겁 없이 여기거나 업신여기라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께서 세상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당신 외아들을 보내주신 일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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