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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우리의 기도(10/17)"
작성자이철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16 조회수1,151 추천수8 반대(0) 신고
 

연중 제 29 주일 (다해)

            출애굽기 17,8-13       2디모테오 3,14-4,2      루가 18,1-18

    2004. 10. 17. 홍제4동


주제 : 우리의 기도

찬미 예수님!

엊그제는 영화하나를 봤습니다.  제목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고래 등 타는 사람’이라고 번역이 가능할 ‘웨일 라이더(Whale Rider)’라는 영화였습니다.  뉴질랜드 원주민에 해당하는 어느 부족의 이야기였습니다.  아주 오래전 옛날에 뉴질랜드 땅으로 이주해온 조상의 혈통을 이어가는 일에 누구의 생각이 적용되느냐 하는 이야기로 볼 수도 있는 영화입니다.  남자 중심, 장남 중심으로 이어지는 부족의 족장 후손에 쌍둥이로 태어났던 남자 아이는 세상을 떠나고 여자 아이만 남았고, 이름은 남자아이에게 붙여주려고 했던 ‘위대한 조상의 이름을 물려받은 파이키아’라는 여자아이의 이야기입니다.


여자로 태어나기는 했어도 그리고 할아버지의 끈질긴 반대와 무시에도 불구하고 그 소녀는 어깨너머로 남자들의 전통무예를 익혔고, 시험을 위하여 할아버지가 바다에 던졌던 고래뼈로 만들어진 목걸이를 찾아오기도 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오늘의 복음에 나오는 과부처럼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현실을 바꾸려는 자세’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현실 생활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삽니다.  그때에 우리는 가까이 살지는 않더라도 내가 겪는 어려움에 도움을 줄 사람으로 형제와 자매를 떠올립니다.  그들에게 내 사정을 조금만 설명하면 내 어려움을 쉽사리 인정하고 내가 겪는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나와 같은 마음을 가져줄 것이라고 우리가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형제와 자매를 이렇게 받아들이고 느끼는 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관계, 혈연관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혈육의 정은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관계가 신앙인들과 하느님의 관계에도 존재합니다.  저는 그것을 우리가 바치는 기도와 하느님의 응답이라고 바꾸어 표현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지 그 태도를 알려줍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내 기도를 들어주어야 할 대상을 성가시게 그리고 그가 견디지 못할 만큼 끈질기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명한 시대에 사는 우리는 흔히 기도와 삶을 분리합니다.  기도는 무릎 꿇고 하느님께 무엇인가를 청하면 되는 일이고 그 나머지 시간에는 내 맘대로 살아도 좋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자기 맘대로 삽니다.  그런 자세가 삶을 올바로 이끌지 못하는 것인데도 그것을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저 내가 할 만큼만 하고, 내 요구사항을 듣는 대상은 나를 무서워해서라도 내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청하면 지체 없이 그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지체 없이’라는 시간과 우리가 현실에서 계산하는 ‘지체 없이’라는 말의 의미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90,4에 보면 ‘당신 앞에서는 천 년도 하루와 같아 지나간 어제 같고 깨어 있는 밤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옳게 알아듣는다면 우리의 기준대로 하느님이 움직이지 않으신다고 화내는 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전형적인 태도라 할 것입니다.  제가 이런 사실을 말씀드려도 많은 사람들은 아주 어리석게 행동합니다.


하느님의 그 기준은 첫 번째 독서인 출애굽기에도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아말렉 사람들이 한판 붙었을 때, 모세가 손을 위로 들고 있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겼고, 손이 아래로 쳐지면 그 결과가 반대로 나타났다고 출애굽기는 적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 옆에 있던 사람들은 상상을 뛰어넘는 기발한 생각으로 자기 민족의 전쟁을 승리로 이끕니다. 


기도에는 당연히 사람들의 협조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실제로 많은 기도를 합니다.  곤경에 빠졌을 때 그 곤경을 이기게 해달라고, 고해성사에 들어와서는 내 죄를 내가 통회하고 있으니 제게 참으로 용서를 주시라고, 시험을 앞두고서는 내가 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도 시험 결과만큼은 만족할만한 점수를 얻게 해달라고, 이웃과 다투고 나서 내가 먼저 잘못한 것이 아니므로 화해할 마음은 조금도 없지만 내 마음이 편하게 해달라고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꽤 많은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본보기는 복음서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과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에게 억울한 일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적어도 하느님 앞에 나서기에 부족함이 없거나,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반성한 다음이라야 올바른 자세라는 것입니다.  말은 쉽지만 실제 행동이 쉽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신앙인으로 살면서 기도는 우리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무슨 삶에 필요한 것인지 정확하게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욕심을 내어 내게 필요한 것을 얻겠다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한 올바른 자세도 중요한 일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디모테오에게 부탁하는 것도 같은 내용을 담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올바른 기도를 하고 싶다면, 성서의 말씀을 익히고 그 안에서 올바른 본보기를 기억하여 실천하는 일도 놓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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