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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태우지 않는 불꽃처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20 조회수1,229 추천수14 반대(0) 신고
 

◎ 2004년10월21일(목) -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오늘의 복음]  루가 12,49-53

<나는 평화롭게 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49)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50)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을 다 겪어 낼 때까지는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지 모른다. 51)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로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한 가정에 다섯 식구가 있다면 이제부터는 세 사람이 두 사람을 반대하고 두 사람이 세 사람을 반대하여 갈라지게 될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할 것이며 어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딸이 어머니를 반대할 것이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반대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반대하여 갈라질 것이다.”◆


[복음산책]  태우지 않는 불꽃처럼


  ‘십계’(十戒, The Ten Commandments)라는 영화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영화 ‘십계’는 구약성서 출애굽기 전반부(1-20장)의 내용을 소재로 삼아 1956년 세실 감독과 율 브리너와 찰튼 헤스턴 출연으로 제작된 불후의 명작이다. 필자는 중학교를 다니던 1973년쯤에 단체관람으로 이 영화를 보았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십계’를 생각하면 스릴 만점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그 중에서 오늘 복음의 주제가 될만한 ‘불’과 관련된 장면은 ‘불타는 가시덤불’(3,2), ‘구름기둥과 불기둥’(13,22), 그리고 십계명을 주시기 위해 ‘불 속으로 내려오신 야훼’(19,18) 등의 모습이다.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해낸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가던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십계명을 받게 된다. 그 때 하느님 야훼의 말씀이 불덩이가 되어 암벽에다 계명을 하나씩 새기는 장면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마치 불덩이가 나의 가슴속에 계명을 하나씩 새기는 것과도 같아 온 몸이 섬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불’은 구약과 신약성서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적 표현으로서 하느님의 현존과 세상의 심판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께서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49절)라고 하심은 정의로운 하느님에 의한 세상 심판이 임박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고 계시며, 거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이미 보고 계신다. 어쩌면 그 날과 그 시간이 빨리 왔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심판의 불이 타오르기 전에 예수께서는 ‘세례’를 받으셔야 한다. 예수님의 세례(洗禮)는 수난과 고통의 바다에 침례(浸禮)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불과 세례는 심판과 속죄, 정화와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하느님의 불과 예수님의 세례, 하느님의 심판과 예수님의 속죄, 그리고 하느님의 정화와 예수님의 구원의 시간이 다가와 눈앞에 펼쳐진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이젠 결단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어떠한가? 마치 한 가정의 식구들이 한 마음이 되지 못하고 반대하여 갈라져 있듯이, 예수님을 두고 세상은 온통 갈등과 혼란에 빠져 있다. 허나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예수님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그분을 반대하여 등을 돌릴 것인지 말이다.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림이나 무관심이나 중립은 통하지 않는다. 요한도 묵시록에서 “나는 네가 한 일을 잘 알고 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차라리 네가 차든지, 아니면 뜨겁든지 하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러나 너는 이렇게 뜨겁지도 차지도 않고 미지근하기만 하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묵시 3,15-16) 하고 말한다.


  예수 편에 서기로 결정한 사람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예수를 선택한 것은 곧 불과 세례를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원하시는 불이 자기 안에 타오르고 있어야 한다. 우리 안에 이 불이 타오르고 있다면 이는 예수님께 기쁨이다. 그렇다고 이 불이 자신을 태워버려서는 안 된다. 이 불은 자신을 태우기 위한 불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불꽃이 이는데도 타지 않는 떨기’(출애 3,2)와도 같은 것이다. 자신을 태우지 않고서 남을 위해 불꽃처럼 사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불과 예수님의 세례를 향하여 준비와 기다림으로 사는 것이고,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신으로 사는 것이며, 다시금 기쁨과 즐거움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다. 우리가 공경하는 성인성녀들이 바로 그렇게 살았던 분들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불에 의해 자신과 세상을 향한 크나큰 열의와 불타는 사랑을 지닌 사람들이었으며,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횃불이 된 이들이다. 이제는 우리가 내심의 불타는 사랑과 열의와 격정으로 인류의 횃불이 되어야 할 차례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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