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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렇게 하늘로 올라간 자캐오 (연중 제 31주일)
작성자이현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30 조회수1,285 추천수9 반대(0) 신고
           그렇게 하늘로 올라간 자캐오 (연중 제 31주일)

 

   10월의 마지막 주말입니다. 방송에서는 가수 이용씨의 '잊혀진 계절"이란 노래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많은 분들에 애창된다고 합니다. 지난 11일 선종한 동료 민성기(요셉)신부도 이러한 '잊어지지 않는 신부'로 오래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갈산동 성당에서 있은 민신부의 장례미사후에 민신부의 형님인 민훈기 가브리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동생은 정말 멋지게 죽었습니다. 높은 북한산도 모자라 헬기를 타고 병원으로 가다가 높은 하늘에서 선종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틀림없이 주님을 직접 만나고 주님의 품에 안겼으리라 확신합니다...."


   오늘 복음(루가 19, 1-10)에서 키가 작은 세관장이었던 자캐오가 예수님을 만나려고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간 것처럼 민신부는 틈만 나면 높은 산에 올라가 주님과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리 자캐오가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통회했듯이 민신부는 미사강론이나 강의, 그리고 그의 많은 글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꼬라지가 'No Man's Land' 즉 황무지요 바보임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수도자입니다. 나는 사제입니다. 내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수도자로서, 사제로서의 역할 때문입니다. 이러한 역할 규정이 나를 이땅에 살게 합니다...그러나 나는 수도자로서의 신원에, 사제로서의 신원에 올곧게 머물지 못합니다. 나는 나의 신원에 위기의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수도자로서 사제로서 옳게 살고 있지 못함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내가 수도자로서 사제로서의 삶을 살아가지 못한 상태를 이 연극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No Man's Land'라고... 이 연극에서 나는 허스트가 보았던 바보스러움을 바라봅니다. 위기의식을 지닌 수도자로서 두려움을 품고 사는 사제로서의 나의 역할이 바로 허스트가 보았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삶을 사는 'the fool's job'으로서의 나의 꼬라지를 찾아냅니다. 그렇게 나는 제 1막에서 허스트가 독백으로 내뱉었던 'No Man's land'입니다. 그리고 허스트처럼 'no man's land'로서의 내 꼬라지를 드러내지 못한 채 여전히 수도자로서 사제로서의 삶을 향유하고 있는 나자신을 발견해나갔습니다. 결국 나는 제 2막의 마지막 부분에서 허스트에게 질책하듯 이야기하는 스푸너의 쓴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You are in no man' land" >
                                 -민신부님의 저서 '하느님의 결혼식 1권 중에서-

 

   그동안 스스로 세속적으로 성공했다고 자부하고 살았던 세관장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나고나서  자신의 꼬라지가 'No man's land'임을 깨닫게 된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이러한 철저한 통회와 겸손은 바로 기쁨으로 이어집니다. 자캐오는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라는 말씀에 예수님을 집에 모시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을 갚아주겠습니다."라고...


   비록 '주님이 보시기에는 이 온세상이 저울에 앉은 먼지와 같으며 땅에 내리는 한 방울의 아침이슬과 같다'(제 1독서: 지혜 11, 22)지만 자신의 꼬라지가 스스로 'No man' land'임을 고백한 민신부는 예수님을 만난 기쁨에 자신의 재산(달란트)을 이 세상 곳곳을 누비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그것도 부족하여 하늘나라에 자진납세(?)하러 올라간 진정한 '오늘날의 자캐오'가 아닐까요? 

 

   그리고 돈많고 키가 작은 자캐오는 물질적인 것만 추구하고 또 수많은 죄와 한계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길에 서있던 무화과나무가 자캐오를 예수님과 만날 수 있도록 디딤돌이 되어준 것처럼 우리는 비록 자신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돌무화과나무(루가 13,6-9 참조)지만 다른 사람이 주님과 자신을 만날 수 있도록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우리에겐 작은 위안이 됩니다. 비록 시인이면서도 시를 쓰지 못하고 있었던 스푸너가 역시 같은 처지인 허스트에게 따끔한 질책을 통하여 스스로 자신의 꼬라지를 알게 함으로써 또하나의 돌무화과나무가 되어준 것처럼 말입니다. 가브리엘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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