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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99) 가을이가 놓고간 선물!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30 조회수896 추천수5 반대(0) 신고

2004년10월30일 연중 제30주간 토요일 ㅡ필립비서1,18ㄴ-26;루가 14,1.7-11ㅡ

 

         가을이가 놓고간 선물!

 

 

고운 단풍은 아니라도 성당마당에서 떼굴 구르는 마른 담쟁이를 보며 가을이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제관 벽에 혈관같은 핏줄로 얽혀 있는 앙상한 줄기를 보며 곧 가을이가 갈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벌써 찬 바람이 어지럼증을 내며 제 세상이라고 웃어댑니다. 가을이가 떠나기 전에 선물을 보냈습니다.

 

쌀자루 네 개!

참기름이 커다란 팻트병으로 두 병!

마른 고사리가 비료포대로 한 자루!

단감이 사과박스로 한 박스!

못생긴 자잘한 대봉이 반 박스!

깜박 잊었는지 참깨가 빠졌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짝궁은 섬으로 갔습니다.

섬에 가서 쌀을 사고, 콩을 사고, 고추도 사고, 깨도 사고, 터의 단감도 따고, 못생긴 장도감도 땄습니다. 주인없는 집의 감나무에는 타인의 손을 타서 높은데만 열려있습니다. 그래도 양심이라는 놈이 차마 위에까지 흩어다 먹을 마음은 아니었던가 봅니다. 주인의 몫으로 그거라도 지켜주어 고맙습니다.

 

짝궁은 가을이 오시면 식량을 마련하는 원시적인 사람입니다. 골목안 구멍가게에도 쌀이 넘쳐나는 시대에, 안먹어서 남아돈다는 밥을 챙기는 짝궁을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벌래가 생기는 쌀을 손가락이 껄적지근 하다고 버리는 주부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쌀을 저장하는 집은 점점 줄어 몇 집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짝궁은 가을이만 오시면 연중 행사를 치릅니다.

 

떠돌다가 혹시 늦어지면 돈 아까운 각시가 굶을까봐서 1년치 준비를 합니다. 언제나 가을이 오시면 섬 집으로 가서 섬 마을을 돌아 다닙니다. 좋은 것으로 안전한 것으로 보고 골라서 마련합니다. 그리고 혹시 섬에서도 속을까 걱정되어 참기름을 짤 때는 화장실도 가지않고 지켜있습니다. 돈 많이 벌고, 잘 나가고, 먹고 사는 일이 별거냐고 하는 사람들이야 웃기는 이야기겠지만 짝궁의 가을은 철저한 다람쥐인생입니다.

 

그리고 각시인 나는 벌래가 나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게 목적입니다. 혹시 벌래가 나고, 나비가 생겨도, 손가락에서 생명들이 꼼지락 거려도, 절대로 식량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 벌래가 살고 있는한 내 쌀은 안전하니까요. 그래도 올해는 참기름만큼은 두 병만 짜라고 잔소리를 했습니다. 여름에 한 번 더 짜야합니다. 작년에는 산에 들어 간다고 네 병을 짜다가 먹었습니다. 지금 한 방울도 남지 않았지만 맛이 덜 있었습니다.

 

1년을 먹기 보다 6개월만 먹겠다고 우겼습니다. 짝궁이 여름에 못 오면 제가 가서 짜다 먹을랍니다. 참깨는 충분히 사 두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가을이가 오셔서 선물을 많이 놓고 갔습니다. 우체부 택배 아저씨의 수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인도 없이 하늘이 주신 햇빛과 물만 먹고도 토실하니 굵은 단감은 모양이 찌글텡이 입니다. 그래도 달디 달고 맛이 좋습니다. 그냥 씻어서 마구마구 먹었습니다.

 

짝궁은 김장 비닐을 사다가 쌀자루 마다 옷을 입혔습니다. 공기가 들지 않으면 여름까지도 벌래가 나지 않습니다. 바람이 잘 드는 발코니에 차곡히 쌓았습니다. 서로 도와주고 받아주는 우리가 다람이 부부 같아서 행복했습니다. 넉넉하지 못 하기 때문에 식량자루를 먼저 챙기는 빈곤의 지혜를, 가진자들은 미련퉁이라고 비웃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나는 그런 짝궁이 너무너무 좋아서 살고 있습니다.

 

고사리는 아저씨가 짝궁을 따라서 산에 가시기 전에 섬마을의 산천을 떠돌며 꺽어 말린 고사리입니다. 간간한 소금기의 해풍 탓에 삶아 놓으면 먹물처럼 까맣게 우러납니다. 희뿌두두한 수입 고사리에 길들여진 어떤 분은 꺼멓다고 싫어했습니다. 육지의 고사리 하고도 안 바꾸는데, 수입산 하고 비교한다는 것은 웃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좀처럼 섬마을의 고사리는 남을 주지 않고 우리만 먹습니다.

 

하루종일 가을이가 주고간 선물을 차곡히 차곡히 쌓느라고 바빴습니다. 돈도 많이 가져다 주지 않는 짝궁이 고마워서 몇 번이나 뽀뽀를 해 주었습니다. 어떤이는 그게 몇 푼이나 되느냐고 비웃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진자들의 금쪽 보다 더 값진 짝궁의 절실한 의무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1년동안은 가족을 굶기지 않을 짝궁은 자신감을 저장한 것입니다. 그런 자신감을 따라서 바보 같은 만족을 하는 사람은 각시입니다.

 

아들의 기말 고사가 끝나면 섬집에는 내가 갈 차례입니다. 매주도 쑤어야하고, 고추도 다듬어 방아도 찧어야하고,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짝궁은 올 해도 가족을 살리는 의무를 철저하게 수행한 가장입니다. 성당마당에서 어지럼증을 내며 찬 기운이 넘 보아도 끄떡 없습니다. 올태면 오라지요. 짝궁의 따수운 가슴을 절대로 얼리지 못 할테니까요. 가을이가 두고간 선물은 다음번 가을이가 오실 때까지 우리의 생명을 지켜 줄 것입니다.

 

우리 가족에게 이만큼 다람이의 결실을 허락하시는 아버지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아멘!

 

ㅡ그러나 여러분을 위해서는 내가 이 세상에 더 살아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확신이 섰기 때문에 나는 살아 남아서 여전히 여러분과 함께 지내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여러분의 믿음을 발전시켜주고 기쁨을 더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여러분을 다시 찾아가게 되면 여러분은 나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를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필립비서1,24-28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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