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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올바른 세상살이"(10/31)
작성자이철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4-10-30 조회수1,018 추천수8 반대(0) 신고
 

연중 31 주일 (다해)

             지혜서 11,22-12,2       2데살로니카 1,11-2,2          루가 19,1-10

     2004. 10. 31.(주일) 홍제4동.

주제 : 올바른 세상살이

찬미 예수님!

오늘은 시월의 마지막 날, 하느님의 날입니다.  한 때 유행했던 유행가 가사에도 ‘시월의 마지막 밤’을 노래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에는 가을과 이별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인생의 황혼 그리고 세상 삶을 다 살고 난 다음이 정말로 아름답기 위해서는 인생의 과정 그리고 세상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 아름다워야 할 것입니다.  태어나서 살아가는 인생의 과정이 아름답지 않다면 그 삶을 마감하는 때도 기쁘지 않을 것이며, 우리에게 남는 것은 아쉬움뿐일 것입니다.  사랑을 열심히 주고 살아도 내게 돌아올 삶의 기쁨이 쉽지 않을 터인데, 내 삶에서 남을 비판하고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다면 우리에게 남는 슬픔은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생의 종착역에 비유할 수 있는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서 이리저리 놀러 다니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면 감탄하는 일이 전부가 아니라 그 아름다움이 내 삶에도 드러나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은 연중 31주일입니다.

조금 전에 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다시 새기고 우리가 삶에서 예수님의 뜻을 어떻게 실현해야하겠는지 다짐하는 시간입니다. 


세상살이에서 내 맘에 꼭 드는 사람들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온통 잘못된 길로 가는 탓도 있겠지만, 내 삶의 한구석에 시기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할 일입니다.  오늘 자캐오에 관한 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을 상종하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서 치워놓고 사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캐오가 가졌던 직업, 세리는 자기 동족을 이용하여 자기 배를 불리고 살아가던 직업으로서 정통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죄인’이라는 굴레를 쓰고 살아가던 사람의 대명사였습니다.  로마제국의 앞잡이로 사는 것이 그 드러난 모습이었고, 세금으로 걷을 돈을 로마인들에게 선납하고 그보다 더 많은 돈을 거둬들여 사는 직업이 세리였습니다.  그리고 자캐오는 그 세리들의 책임자였던 세관장이었다는  그렇게 경제적으로는 풍족하게 살았을 자캐오가 왜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는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성서에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쉽사리 생각한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행복의 기준만 채운다고 정말 행복한 삶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더 행복해질 수 있는 새로운 삶의 기준을 생각했고, 그 새로운 삶을 채우는 방법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일을 생각했던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난 다음에는 자기 삶을 바꾸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그가 선택하는 방법이란 재산을 더 모으는 일이 아니라 자기 땀을 흘려 벌어들였다고 생각했을 재산을 과감하게 나눠주는 일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온 삶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예수님과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한 대로 살려면 그는 더 이상 로마제국의 앞잡이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자캐오의 모습을 보면서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면서 두 가지 좋을 결실을 다 얻을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애써 모은 재산의 절반을 나누어주고, 남을 속인 것에 대해서는 그 재산을 네 배로 갚아주겠다는 선언에서 자캐오는 열심히 그리고 부끄러움 없이 산 사람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 있게 드러낸 삶이 구원을 불러들인 조건이 되었다는 뜻으로 예수님은 자캐오를 가리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처럼 자캐오의 마음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한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리와 같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죄인의 친구’라고 비난함으로서 자기들의 불편한 감정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비판한다고 해서 예수님이 세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 정치에도 요즘 등장한 ‘과거사 진상규명법’도 그런 뜻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제국주의시대와 6.25전쟁시대, 그리고 그 이후, 다른 사람들의 피와 땀을 이용하여 행복을 누리던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돌이키지도 않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신만이 옳다’는 주장은 더 커지는 법이고, 실제로 우리 삶을 깨끗이 정리해야할 내용을 담는 법조문은 자꾸만 변질되며 옳은 정신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래서는 무늬만 찬란해지는 것이며, 진정한 의미의 인본주의 국가는 한참 물 건너가게 된다는 것이 실제 모습이 됩니다.  이 자리에서 과거 역사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해도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머리를 바로 세우고 ‘이러저러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나를 간섭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큰소리치는 일도 세상살이의 한 가지 방법일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삶을 다 마치고 내 삶에 대한 하느님의 평가를 받게 될 때도 과연 그 자신감이 있을 것인지는 따로 판단할 일입니다.  잘못된 삶을 우리가 돌이키도록 끊임없이 기다리는 분이 하느님이시지만 우리가 언제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될 것이며, 우리가 언제 삶을 바꾸게 될 것인지 아는 사람은 자신을 빼고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가장우선으로 생각하고 살아도 세상에서 옳게 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산다면 많은 경우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그들을 돕고 이해하는 삶이 아니라 오로지 내 행복만을 추구하는 ‘우물 안 개구리식의 삶을 만들기 쉽다’는 것도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생각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도 변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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