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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1월 10일 야곱의 우물 - 감사의 기도 ♣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10 조회수1,194 추천수5 반대(0) 신고
 
♣ 감사의 기도  ♣ 

[루가 17,11-­19]   
그때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예수 선생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크게 소리쳤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의 몸을 보여라” 하셨다.
그들이 사제들에게 가는 동안에 그들의 몸이 깨끗해졌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자기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께 돌아와 그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이것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몸이 깨끗해진 사람은 열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 갔느냐?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러 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인 한 사람밖에 없단 말이냐!”하시면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오늘 복음은 나병환자 열 사람의 병을 고쳐주신 뒤 그들 중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 안에 나타나는 치유에 대한 온전한 감사와 하느님을 찬양 하는 태도를 칭찬하시며 “나머지 아홉 사람은 다 어디 갔느냐? …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완전한 치유란 육체적 치유만이 아닌 심리적·영성적 치유가 뒤따 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라고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예수께 “선생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크게 소리친 나머지 아홉 사람은 되면 되고 아니면 그만인 태도는 아닌지, 혹은 다 나은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는지,아니면 고맙긴 하지만 다른 바쁜 일이 생겨 미처 표현하지 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큰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께 돌아와 그 발 앞에 엎드려 감사 를 드린 사마리아 사람의 태도는 또 하나의 믿음과 사랑의 고백이기에 이 태도는 영적으로 치유된 사랑의 사람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거듭나고 세례와 견진성사의 은혜를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을 쇄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그분의 돌보심으로 사는 태도가 있나 없나 하는 것은 매일의 삶 안에 베푸시는 온갖 기적을 알아차릴 수 있는 민감함과 그것을 참으로 감사할 줄 아는 태도라 볼 수 있겠습니다.
오늘 나는 몇 차례나 그분께서 주신 사랑의 선물과 기적에 감사기도를 드렸는지 살펴봅시다. 변수운 수녀(착한목자수녀회) † 【 안나의 묵상나누기 】 † + :) + 우리가 참으로 그분의 돌보심으로 사는 태도가 있나 없나 하는 것은 매일의 삶 안에 베푸시는 온갖 기적을 알아차릴 수 있는 민감함과 그것을 참으로 감사할 줄 아는 태도라 볼 수 있겠습니다. 일년 사계절이 다양한 것처럼 맑은 날도 있고,비오는 날도,눈오는 날도 있듯이.../신앙여정도 그저 좋은 날만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그것이 전부인줄 알고, 종점인줄 알고 달려갔는데 하하,그것은 그저 과정에 불과하였던 것이었건만 나의 어리석음을 통탄하면서 되돌아서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또 벼락이 치는 종점이 아닌 정류장과 같은 지나쳐야만 되는 곳에 서서 살아온 날들을 가슴치며 울며 잠못 이루던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고통스러운 순간 앞에서도 왜 감사가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은 분명 누군가에게라도 원망을 할 수 있는 순간이건만.../ 원망 대신 감사가 가슴 저 밑바닥에서는 말하고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삶의 몇 번의 고비들을 넘기면서 발견한 감사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그 당시에는 내 마음데로 아니되었지만 나중에 셈을 해보니 결과적으로 앗! 에게 좋은 결과로 인도해주시기 위함이었음을 알아냈습니다.
아!~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한 순간만이라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고통가운데서도 감사가 끊이지 않고 그분께 나이 길 수 있다고 안나는 생각하고 또 믿습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고요한 바다로' 라는 찬송가의 가사가 생각납니다. 그 풍랑이 내 삶을 하느님께로 더 가까이 이끌어주시기 위하였음을 어찌 고백하지 않으리요! 어쩌면 예수께 “선생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크게 소리친 나머지 아홉 사람은 되면 되고... 아니면 그만인 태도는 아닌지... 혹은 다 나은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는지... 아니면... 고맙긴 하지만... 다른 바쁜 일이 생겨... 미처 표현하지 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앗! 의 모습이 들어있는 대목이요, 앗! 의 모습이 보이는 여운이 많이 남는 글귀들입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나머지 아홉 사람에 속할 수 있는 확률은 50:50에서 단 백지 한장의 차이일뿐입니다. 내가 정상에 올랐다고! 외치는 그 순간에 내 신앙은 저 나락에 떨어져 뒹굴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거듭나고 세례와 견진성사의 은혜를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을 쇄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나날의 삶이 하느님을 호흡하는 삶이 되지 않는 한...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쇄신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저 이 세상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인줄 알고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구태의연한 신앙인의 자세에서 단 한치도 못벗어난체 입으로는 주님을 고백하고 있지만 가슴은 멎어버린 태엽감긴 장난감처럼 그렇게 살아가기가 일수입니다. 마지막 묵상글 한 구절을 잡고 흔들어봅니다. 오늘 나는 몇 차례나 그분께서 주신 사랑의 선물과 기적에 감사기도를 드렸는지 살펴봅시다. 일단! 기적을 발견할 수 있는 한 구절을 다른 글에서 [펌]하였습니다. 모든 우연한 만남들과 모든 외로운 존재들에게 스스로 한가지 단순한 질문을 던지도록 해라. "내가 이 사람에게 과연 무엇을 줄수 있을까?"
당신에게 돌아올수 있는 대가가 무엇인지를 걱정하지 말고 오직 당신이 그 사람에게 무엇을 줄수 있을것인가에 대해서만 몰두해야 한다.
선물을 준다는것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당신은 그 사람을 칭찬할수도 있으며 아무런 말도 없이 그 사람의 행복을 빌어 주거나 다른 어떤 방식으로 호의를 나타낼수 있다.
누군가를 축복하는 마음, 애정이 담긴 배려 또는 짧은 기도조차 다른 사람들을 감동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삶속으로 사랑을 가져오기 시작한다면 당신의 인생은 사랑으로 가득채워지게 되고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것들 속에서 기적을 발견할수 있다. 당신의 인생은 사랑의 표현이 되고, 그리고 당신의 내적인 삶과 외적인 삶 모두에서 지금까지 결코 일어날수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보게 될것이다.
당신이 사랑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면 모든것들이 당신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할것이다.
- 디팍 쵸프라 - 《따뜻한 이야기방의 황현옥 세실리아 님의 '한가지 질문' 중에서 [펌]》 만약 앗! 가 (벗 님들과 안나아주매인 입니다.^^) 앗! 의 삶속으로 사랑을 가져오기 시작한다면 앗! 의 인생은 사랑으로 가득채워지게 되고 앗! 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것들 속에서 기적을 발견할수 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의 몸을 보여라” 하셨다. 主님의 한 말씀에 믿음을 가지고 내 몸을 사제들에게 보이러 갈 수 있어야 나음을 받을 터인데, 기적을 발견할 수 있을 터인데...
과연 내 삶에 하느님의 사랑을 가득 채워서 그분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깨달아진 말씀에 넵!!!하고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을른쥐 고민됩니다. 오늘은 이 말씀이 나병환자인 [안나]의 가슴에 메아리칩니다. 영적으로 치유된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안나가요*^^* 《 소스입니다. 》 <center><img src=http://www.cdmb.co.kr/pds/004/10/j245.JPG></center>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 감사의 기도 ♣</b> <FONT color=gree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b>[루가 17,11-­19]</b><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그때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났다. <br> 그들은 멀찍이 서서“예수 선생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크게 소리쳤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의 몸을 보여라” 하셨다. <br> 그들이 사제들에게 가는 동안에 그들의 몸이 깨끗해졌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자기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께 돌아와 그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br> 이것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몸이 깨끗해진 사람은 열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 갔느냐?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러 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인 한 사람밖에 없단 말이냐!”하시면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오늘 복음은 나병환자 열 사람의 병을 고쳐주신 뒤 그들 중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 안에 나타나는 치유에 대한 온전한 감사와 하느님을 찬양 하는 태도를 칭찬하시며 “나머지 아홉 사람은 다 어디 갔느냐? …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br> 사실 완전한 치유란 육체적 치유만이 아닌 심리적·영성적 치유가 뒤따 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라고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br> 어쩌면 예수께 “선생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크게 소리친 나머지 아홉 사람은 되면 되고 아니면 그만인 태도는 아닌지, 혹은 다 나은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는지,아니면 고맙긴 하지만 다른 바쁜 일이 생겨 미처 표현하지 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br> 큰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께 돌아와 그 발 앞에 엎드려 감사 를 드린 사마리아 사람의 태도는 또 하나의 믿음과 사랑의 고백이기에 이 태도는 영적으로 치유된 사랑의 사람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br> 우리가 믿음으로 거듭나고 세례와 견진성사의 은혜를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을 쇄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br> 우리가 참으로 그분의 돌보심으로 사는 태도가 있나 없나 하는 것은 매일의 삶 안에 베푸시는 온갖 기적을 알아차릴 수 있는 민감함과 그것을 참으로 감사할 줄 아는 태도라 볼 수 있겠습니다. <br> 오늘 나는 몇 차례나 그분께서 주신 사랑의 선물과 기적에 감사기도를 드렸는지 살펴봅시다. <FONT color=purple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b>변수운 수녀(착한목자수녀회)</b>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 【 안나의 묵상나누기 】 †</b>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b>+ :) +</b> <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우리가 참으로 그분의 돌보심으로 사는 태도가 있나 없나 하는 것은 매일의 삶 안에 베푸시는 온갖 기적을 알아차릴 수 있는 민감함과 그것을 참으로 감사할 줄 아는 태도라 볼 수 있겠습니다.</b>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일년 사계절이 다양한 것처럼 맑은 날도 있고,비오는 날도,눈오는 날도 있듯이.../신앙여정도 그저 좋은 날만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br> 어느 날인가는 그것이 전부인줄 알고, 종점인줄 알고 달려갔는데 하하,그것은 그저 과정에 불과하였던 것이었건만 나의 어리석음을 통탄하면서 되돌아서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br> 또 벼락이 치는 종점이 아닌 정류장과 같은 지나쳐야만 되는 곳에 서서 살아온 날들을 가슴치며 울며 잠못 이루던 날도 있었습니다. <br> 그런데 말입니다... 고통스러운 순간 앞에서도 왜 감사가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순간은 분명 누군가에게라도 원망을 할 수 있는 순간이건만.../ 원망 대신 감사가 가슴 저 밑바닥에서는 말하고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삶의 몇 번의 고비들을 넘기면서 발견한 감사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br> 그 당시에는 내 마음데로 아니되었지만 나중에 셈을 해보니 결과적으로 앗! <b>나</b>에게 좋은 결과로 인도해주시기 위함이었음을 알아냈습니다. <br> 아!~<b>나</b>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한 순간만이라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고통가운데서도 감사가 끊이지 않고 그분께 나이 길 수 있다고 안나는 생각하고 또 믿습니다.*^^* <br> ♬<u>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u> '고요한 바다로' 라는 찬송가의 가사가 생각납니다. 그 풍랑이 내 삶을 하느님께로 더 가까이 이끌어주시기 위하였음을 어찌 고백하지 않으리요! <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어쩌면 예수께 “선생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크게 소리친 <b><FONT color=red style="FONT-SIZE: 10pt">나머지 아홉 사람은 <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되면 되고... 아니면 그만인 태도는 아닌지... 혹은 다 나은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는지... 아니면... 고맙긴 하지만... 다른 바쁜 일이 생겨... 미처 표현하지 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b>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앗! <b>나</b>의 모습이 들어있는 대목이요, 앗! <b>너</b>의 모습이 보이는 여운이 많이 남는 글귀들입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나머지 아홉 사람에 속할 수 있는 확률은 50:50에서 단 백지 한장의 차이일뿐입니다. 내가 정상에 올랐다고! 외치는 그 순간에 내 신앙은 저 나락에 떨어져 뒹굴고 있습니다.*^^* <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우리가 믿음으로 거듭나고 세례와 견진성사의 은혜를 온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을 쇄신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b>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우리가 나날의 삶이 하느님을 호흡하는 삶이 되지 않는 한...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쇄신하지 않는 한... <br> 우리는 그저 이 세상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인줄 알고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구태의연한 신앙인의 자세에서 단 한치도 못벗어난체 입으로는 주님을 고백하고 있지만 가슴은 멎어버린 태엽감긴 장난감처럼 그렇게 살아가기가 일수입니다. 마지막 묵상글 한 구절을 잡고 흔들어봅니다. <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오늘 나는 몇 차례나 그분께서 주신 사랑의 선물과 <b>기적</b>에 감사기도를 드렸는지 살펴봅시다.</b>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일단! 기적을 발견할 수 있는 한 구절을 다른 글에서 [펌]하였습니다. <FONT color=purple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모든 우연한 만남들과 모든 외로운 존재들에게 스스로 한가지 단순한 질문을 던지도록 해라. "내가 이 사람에게 과연 무엇을 줄수 있을까?" <br> 당신에게 돌아올수 있는 대가가 무엇인지를 걱정하지 말고 오직 당신이 그 사람에게 무엇을 줄수 있을것인가에 대해서만 몰두해야 한다. <br> 선물을 준다는것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당신은 그 사람을 칭찬할수도 있으며 아무런 말도 없이 그 사람의 행복을 빌어 주거나 다른 어떤 방식으로 호의를 나타낼수 있다. <br> 누군가를 축복하는 마음, 애정이 담긴 배려 또는 짧은 기도조차 다른 사람들을 감동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만약 당신이 당신의 삶속으로 사랑을 가져오기 시작한다면 당신의 인생은 사랑으로 가득채워지게 되고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것들 속에서 <b>기적</b>을 발견할수 있다. <FONT color=purple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당신의 인생은 사랑의 표현이 되고, 그리고 당신의 내적인 삶과 외적인 삶 모두에서 지금까지 결코 일어날수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보게 될것이다. <br> 당신이 사랑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면 모든것들이 당신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할것이다. <br> - 디팍 쵸프라 - <b> 《따뜻한 이야기방의 황현옥 세실리아 님의 '한가지 질문' 중에서 [펌]》 </b><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만약 앗! <b>나</b>가 (벗 님들과 안나아주매인 <b>나</b> 입니다.^^) 앗! <b>나</b>의 삶속으로 사랑을 가져오기 시작한다면 앗! <b>나</b>의 인생은 사랑으로 가득채워지게 되고 앗! <b>나</b>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것들 속에서 <b>기적</b>을 발견할수 있다. <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예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의 몸을 보여라” 하셨다. </b>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主님의 한 말씀에 믿음을 가지고 내 몸을 사제들에게 보이러 갈 수 있어야 나음을 받을 터인데, 기적을 발견할 수 있을 터인데... <br> 과연 내 삶에 하느님의 사랑을 가득 채워서 그분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깨달아진 말씀에 <b>넵!!!</b>하고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을른쥐 고민됩니다. 오늘은 이 말씀이 나병환자인 [안나]의 가슴에 메아리칩니다. <FONT color=gree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9pt"> <b>영적으로 치유된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b> <IMG src="http://www.imagestation.com/picture/sraid53/p1267c37ffdbfe50aca62ebc9cb2ddfb0/ fc8b9715.gif" > <b>안나가요*^^*</b> <embed src="http://user.chollian.net/~bemyhoney/dankseidir.wma" width="280" height="67" autostart="true" volume="0" loo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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