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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오직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14 조회수1,066 추천수7 반대(0) 신고
 

◎ 2004년11월14일(일) - 연중 제33주일 (다해)

▣ 평신도 주일


   오늘은 한국 천주교회가 1970년부터 지내온 ‘평신도 주일’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평신도 사도직에 대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1968년 ‘한국 천주교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를 결성하고 대림 제1주일을 ‘평신도 사도직의 날’로 기념했으나, 1970년부터 전례력 마지막 전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기념하면서 모든 평신도들이 그리스도로부터 부여받은 사도직의 사명에 충실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평신도의 본질에 대하여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성품과 교회에서 인정한 수도자 신분에 속하는 이들 이외의 모든 크리스천’을 ‘평신도’라고 정의한다. 평신도는 곧 세례와 견진성사로써 하느님의 불림을 받아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고, 하느님 백성 중에 들고, 그들 나름대로 그리스도의 사제직․예언직․왕직에 참여하며, 교회와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의 백성 전체 사명을 각기 분수대로 수행하는 신도들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평신도가 “현세적 일에 종사하면서 하느님의 뜻대로 이를 관리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찾도록 불린 자들이다.”(교회헌장 31항)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평신도의 독자적인 소명’이다. 이러한 본질과 기초를 바탕으로 공의회는 처음으로 평신도가 교회와 세상에 대하여 가지는 사명을 ‘평신도 사도직’(apostolatus laicorum)이라 규명한다. “평신도 사도직은 교회의 구원 사명 자체의 한 부분이며, 주님께서 친히 세례와 견진을 통하여 모든 사람을 이 사도직에 부르시는 것이다.”(교회헌장 33항)


평신도 사도직은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다양한 형태로 수행될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형태가 바로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 즉 사제직․예언직․왕직에 참여하는 것이다. 공의회는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위임한 자신의 삼중직무를 평신도를 통해서도 계속 수행하신다는 사실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이들의 삼중직무가 위계적 직무가 누리는 충만함과 연합하여 완성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의 복음]  루가 21,5-19

<너희가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


  5) 사람들이 아름다운 돌과 예물로 화려하게 꾸며진 성전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6) “지금 너희가 성전을 바라보고 있지만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날이 올 것이다.” 7) 그들이 “선생님,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날 즈음해서 어떤 징조가 나타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8)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앞으로 많은 사람이 내 이름을 내세우며 나타나서 ‘내가 바로 그리스도다!’ 혹은 ‘때가 왔다!’ 하고 떠들더라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들을 따라가지 마라. 9) 또 전쟁과 반란의 소문을 듣더라도 두려워하지 마라. 그런 일이 반드시 먼저 일어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끝 날이 곧 오는 것은 아니다.” 10)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민족이 일어나 딴 민족을 치고 한 나라가 일어나 딴 나라를 칠 것이며 11) 곳곳에 무서운 지진이 일어나고 또 기근과 전염병도 휩쓸 것이며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굉장한 징조들이 나타날 것이다. 12)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는 잡혀서 박해를 당하고 회당에 끌려 가 마침내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며 나 때문에 임금들과 총독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13) 그 때야말로 너희가 나의 복음을 증언할 때이다. 14) 이 말을 명심하여라. 그 때 어떻게 항변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마라. 15) 너희의 적수들이 아무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주겠다. 16) 너희의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잡아 넘겨서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17) 그리고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겠지만 18)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19) 그리고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


[복음산책]  오직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떨어지는 낙엽의 계절과 더불어 교회의 전례력도 이제 그 막바지에 이르렀다. 오늘 주일과 다음 주일인 그리스도의 왕 대축일을 지내고 나면, 교회의 전례력은 올해에 이별을 고하고 대림절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것이다. 이렇게 한 해의 마지막에 다다른 교회의 전례력에 발맞추어 평일 미사와 주일 미사에서 선포되는 독서와 복음 말씀은 종말론적이고 묵시(黙示) 문학적인 성격을 아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종말과 묵시적 성격이란 세상이 이제 그 마지막에 직면하여 드러내거나 맞이하게 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말한다. 계시(啓示, revelation)라는 개념이 ‘시작’과 관련하여 새로운 것과 감추어져 있던 것이 드러난 것이라면, ‘종말’과 ‘묵시’와 관련하여 드러나거나 맞이하게 될 일들을 대표하는 개념은 현현(顯現, epiphany)과 폭로(暴露, apocalypse)라는 단어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세상의 종말을 선언하는 대변화, 죽음과 부활, 그리스도의 재림, 생자(生者)와 사자(死者)에 대한 그분의 심판, 그리고 종말 후의 내세(來世)에 관한 일 등이다.


  성서(聖書)상 종말과 묵시문학적 유형으로는 구약의 다니엘서(BC 160년경)와 신약의 요한묵시록(AD 100년경)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구약시대 말기에 편집된 묵시문학적 작품들은 ‘에티오피아어 에녹서’, ‘희년서’, ‘시빌라의 신탁’, ‘열두 족장의 유언’, ‘모세의 승천기’, ‘솔로몬의 시편’, ‘제2 에즈라서’, ‘시리아의 바룩서’ 등 그 규모가 실로 방대하다. 묵시문학의 발생원인은 이스라엘이 외세의 지속적인 침략에 의해 주권(主權)을 잃고(BC 721년 북왕조 멸망, 587년 남왕조 멸망과 유배생활, 333년부터 헬레니즘의 지배, 63년부터 로마제국의 지배) 의기소침한 가운데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주권회복을 야훼 하느님이나 그분의 사자(使者) 또는 메시아에 의탁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묵시문학은 천지창조부터 세상종말까지의 환란과 난세의 역사를 다루면서 종말사건과 내세를 통한 개벽(開闢)과 역전(逆轉)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염원하던 개벽과 역전은 없었고, 한 가닥 독립전쟁(AD 66-70)의 시도마저 여지없이 실패로 돌아갔으며, 그 대가로 70년 8월 29일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고 이스라엘 자존심의 상징인 성전까지 불타고 말았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예수께서도 공생활 마지막 시점에서 세상종말과 관련하여 묵시문학적 가르침을 주셨다.(마태 24,1-25,46; 마르 13,1-37; 루가 21,5-36) 그러나 예수님의 종말교훈은 이스라엘의 염원이나 묵시문학자들의 생각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것은 구약의 묵시문학적 염원과 예언의 성취자로 예수께서 이미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도래는 단지 ‘사람의 눈으로 오는 것을 볼 수 없을 뿐’(루가 17,20)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이미 왔다는 증거이다. 이렇게 임재(臨在)하여 있는 하느님 나라는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끝나는 것도, 가짜 그리스도의 출현이나 반란과 전쟁, 기근과 전염병이나 지진과 우주적 징조로도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참다운 그리스도이신 인자(人子)의 재림으로 오히려 완성될 것이다. 그 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임재하여 있는 하느님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온갖 미움과 거짓, 박해와 환란, 고문과 죽음 속에서도 믿음과 용기를 잃지 않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다. 이렇게 끝까지 참고 견디어 내는 사람은 예수를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리신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이다. 결국 우리는 오직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자신의 삶이 다하는 날까지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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