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싸이클 다이어리(연중 제 33주 월요일)
작성자이현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15 조회수1,063 추천수7 반대(0) 신고
 

                                      싸이클 다이어리(연중 제 33주 월요일)


  십자가를 안테나로!

  주말을 이용하여 체 게바라의 위대한 여정을 다룬 ‘모터 싸이클 다이어리’라는 영화를 보다보니 한달 전에 선종한 민요셉신부님과 20여년 전에 만난 김요한 형제가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민신부님은 이미 그의 많은 저서를 통해 발표되었듯이 한국의 마라도를 비롯하여 아프리카, 유럽 등 세상 곳곳을 찾아다니시며 일기형식의 글을 많이 쓰셨습니다. 그리고 김 요한 형제는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무전여행을 하며 다니던 그가 1989년 서울에서 세계성체대회를 지내고 나서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라는 성체대회 메시지를 자전거를 타고 세계에 전하겠다고 했을 때 모두가 그를 말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착실히 출국을 준비했었고 제가 인천 가르멜수도회를 방문할 때 자신도 그 수도회에 기도를 부탁하러 가겠다고 하며 저와 동행을 했습니다. 점심식사 후 땡전 한푼없이 그가 7년간 자전거로 세계선교여행을 떠나겠다고 하자 모든 가르멜수도회의 수사님들이 '그건 미친 짓이다'라며 말렸습니다. 그런데 그 식당에서 그가 한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성모님과 예수님이 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그분들이 저의 스폰서입니다..."

  그리고 모터 싸이클을 타고 가면 많은 사람을 놓치고 지나가기 때문에 굳이 힘이 들더라도 싸이클 즉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수년 후, 로마의 유학시절 그를 거기서 만났을 때 저는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자전거를 다니면서 겪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일기형식으로 써 책을 한번 내어보자"고... 그러자 그가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복음을 쓰셨냐?"고... 자기는 바빠서 못 쓰니 제가 알아서 쓰라고 하면서 신문에 난 기사등을 그후 줄곧 제게 보내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후 저는 전화가 올 때마다 "이제 그만 그 힘든 여행을 그만두라"고 했습니다만 그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세례자 요한이 그 길을 닦은 것처럼 자기도 예수님이 다시 오기 전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리고 원래 7년을 계획했는데 다니다 보니 너무나 안타까운 가정, 마약에 찌든 사람들이 많아 좀더 연장해야겠다"고 하며 아직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전세계를 누비고 있습니다. 한번은 어느 시골마을에 들러 성체조배를 하고 나왔는데 자전거와 짐이 없더랍니다. 그런데 그는 그 마을에 오기 전에 산길을 오르면서 짐이 많아 무겁다고 불평을 했었는데 주님께서 그 불평을 들으시고 즉시 도둑에게 선물로 나누어주셨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불평을 후회하고 자전거만이라도 돌려달라고 기도를 하였는데 바로 성당 앞에서 그 마을 신문기자를 만나 이 딱한 소식이 전해져 더 많은 짐(?)을 선물 받았다는 이야기도 저는 전화로 들었습니다. 아무튼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을 김삿갓 요한형제가 건강한 모습으로 사명을 다하고 귀국을 할 수 있도록 기도 중에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 복음(루가 18, 35- 43)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리고의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예리고의 소경은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눈을 뜨고 새로운 삶을 찾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길에서 만난 작은 예수님들이 우리의 눈(심안, 영안)을 뜨게 할 것입니다. 의학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의사의 삶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을 산 체 게바라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1952년의 모터 싸이클 여행이 저의 눈을 뜨게 해주었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라고. 한편 에르네스토 게바라(일명 푸세)의 모터 싸이클 여행을 다룬 영화의 내용과 평은 다음과 같습니다.

   <호기심 많고 열정이 넘치는 23세의 의대생인 푸세는 엉뚱한 생화학도이자 마음이 맞는 친구이자 형처럼 지내는 ‘알베르토 그라나도’와 함께 4개월간 전 남미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을 결심한다. 낡고 오래된 ‘포데로사’라는 이름의 모터 싸이클에 몸을 싣고, 안데스산맥을 가로질러 칠레 해안을 따라 사막을 건넌 후, 아마존으로 뛰어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 것. 어릴 적부터 천식을 앓고 있는 푸세. 하지만 젊은 날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만은 누구보다 드높다. 당찬 각오로 이들의 여행은 시작됐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하나밖에 없는 텐트가 태풍에 날아가고, 칠레에서는 정비사의 아내에게 추근댔다는 오해를 받아 쫓겨나기에 이른다. 설상가상으로 유일한 이동 수단인 모터 싸이클 마저 소떼와 부딪쳐 완전히 망가지면서 여행은 점점 고난 속으로 빠져든다. 푸세와 알베르토는 이제 모터 싸이클 대신 걸어서 여행을 계속한다. 점점 퇴색 되어가는 페루의 잉카유적을 거쳐 정치적 이념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몰리는 인생막장인 추끼까마따 광산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알고 있던 현실과는 다른 세상의 불합리함에 점차 분노하기 시작한다. 또한 의대생인 푸세는 여행 중 나병을 전공하고자 하는 희망에 따라 라틴 아메리카 최대의 나환자촌 산 빠블로에 머무르게 된다. 나병은 피부로 전염되는 병이 아니라며, 장갑을 끼지 않은 채 환자들과 악수하고 가깝게 어울리는 푸세. 이런 행동은 이곳에서 금지된 행동이었지만 순수하고 열정 가득한 그의 모습은 의료진과 환자 모두를 감동시킨다. 그리고 푸세 자신 또한 점점 마음속에서 새롭게 타오르는 빛나는 의지와 희망을 느낀다. 이제 곧 여행을 마치고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들. 여행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푸세는 이 8개월간의 여행을 거치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마음 깊은 곳에서 자라남을 느낀다. 길 위에서 새로운 세상의 목마름을 깨닫게 되는 23살의 청년 푸세! 그가 바로, 훗날 역사상 가장 현명하고 인간적인 지도자, 낭만적인 혁명가로 추앙받은 세기의 우상 ‘체 게바라’이다...>

 

  <이 영화는 20세기 가장 낭만적인 혁명가였던 체게바라의 젊은 날을 로드무비 형식으로 담아낸 영화이다. 우선 체게바라는 누구인가?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카스트로 정권의 반미 친공 노선 열렬히 옹호하여 쿠바 혁명의 상징이 되었으나 결국 미국 CIA에 의해 피살된 혁명가인 것이다. 그의 젊은 시절 여행기를 그린 모터 싸이클 다이어리는 그의 가장 순수하고 열정적인 한때를 묘사한 것이다. 여행을 하면서 그들의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할까? 여행의 시작은 모험과 낭만으로 가득했지만 여행이 지속될수록 두 청년은 그 험난한 여행을 통해 새로운 삶의 의지와 희망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영웅을 표현하여 그를 부각시키기 보다는 인간적인 면을 더 보여 그의 젊었을 때의 사고방식과 세상의 도전하는 정신을 보여주려고 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체 게바라의 영웅성과 사실성을 부여하기 보다는 그의 인간적인 면과 길에서 만나는 사람과의 인간관계등 개인적으로 감정을 처리한다. 사실을 토대로 하였지만 로드무비가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길 바란 것이다. 대륙여행을 통해 두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짐작하지 못한 그들은 스스로를 완성하고 제 목표를 향해 찾아 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영상과 선율이 있는 인간냄새가 나는 영화인 모터 싸이클 다이어리가 아닌가 싶다. 특히 감동적인 것은 애인이 미국에 가게 되면 수영복을 사오라고 준 15달러를 불쌍한 탄광의 어느 부부에게 준 일, 나병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헌신적으로 나환자들을 돌보는 모습, 자신의 생일 날, ‘남미가 나누어졌다는 것을 믿지말라’는 말과 함께 의사, 간호사, 수녀들이 사는 북쪽에서 나병 환자들이 있는 남쪽으로 헤엄쳐 건너가는 모습. 이는 장차 푸세가 할 일, 남미의 북미에 대한 굴욕적인 종속을 깨고 남미를 통합하는 그의 운명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그것은 평범한 열망을 꿈으로 행동으로 변모시키는 자의 용기가 보여주는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천식을 앓는 푸세의 거친 호흡소리가 귀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아마도 매 순간 자신의 호흡과 싸워야 했으리라. 이 사나이가 그러했으니 당신도 세상과 싸울 힘을 잃지 말라고, 공기 중에 남아 있는 마지막 산소라도 구걸하는 듯 헐떡이는 그의 호흡 소리는 마음속 깊은 무언가를 함께 점화하고 있다...>


   싸이클을 지금도 타고 다니며 전세계에 복음을 전하고 있는 김요한 형제, 그리고 모터 싸이클을 타고 가다 고장난 그것을 버리고 험난한 길을 걸으며 세상에 대한 눈을 뜬 체 게바라 못지 않게 25년전, 24세의 늦깍이로 일반대학을 준비하며 ‘영적 싸이클’을 준비한 민신부님의 어느 날의 일기를 공개하는 걸로 ‘싸이클 다이어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가브리엘통신


                                               <1980년 3월 19일 >


  오늘은 3월 19일이니 나의 본명 첨례일이다. 성요셉 성인의 대축일. 난 오늘 미사에 참례할 것을 밝히면서 꿈속에서의 귀결이 이루어지도록 나의 마음을 가다듬는 계기가 되도록 신앙생활에도 더 한층 굳건히 하리라. 아버지의 선종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라진듯 하나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신앙인으로서는 모자라는 공포에 젖어있다.

 

  난 나의 인생을 50세 전후로 보고있으니 이제 거의 반평생을 살아온 셈이 된다. 종교서적에서 죽음에 대하여서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어야 된다고 하였으며 죽음이란 고통 육신생활을 끝으로 영원한 영신생활의 길로 접어든다고 하였으니 난 이제 살아온 이 해들을 반성하며 남은 그날들에 대한 준비로 하느님에 대한 빚청산을 해야겠다.

 

  성요셉대축일을 맞이하여 갖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난 요셉이란 의미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구원을 주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해주는 성인으로 알고 있다, 혹 언젠가 나의 주요한 논문주제로 쓰여질지는 모르나 난 나대로의 교양으로 죽음에 대한 종교적인 연구를 할 작정이다.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적성과 이상에 맞는 종교계통의 학과를 선택해야만 되겠는데 현실이 나를 멀리하는가보다. 생각해보아야지.

 

   어느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시의 한 귀절에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대는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글귀가 있다. 난 비록 나의 생활이 인생의 일순간으로서 나의 정신을 속인다할지라도 결코 그에 동요되지 않을 것이며 아부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 짧은 일생동안 난 신에 대한 인간의 염원을 호소할 것이며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점들을 살펴 되찾으면서 메말라가는 세상을 신의 은총을 입을 수 있게끔 인간답게 살도록 계몽하여 나 자신 몸소 평신도로서 인간답게 살아가리라. 저녁노을에 비치는 인간의 인간다운 풍요함을 담뿍담아 포화상태가 되어 있을 '큰 바위 얼굴'의 장성한 소년마냥 생을 찾으리라.

 

  수전노로서의 깡마른 인간이 아니라. 평판이 높은 야망의 정치가가 아니라 권력과 재물에 대한 째째한 속인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신의 경지에 이르는 성인이 되는 점근선의 길을 걸을 아니 거니는 인간이 되리라.

 "주여, 어찌하여 저를 이 세상에 보내셨나요?"

함구하는 나의 마음에 주 하느님에 대한 의무로 새로이 다져본다...

 

추가:

 

15년간 자전거 세계일주 여행을 한 한국인이 있다
[이 기사는 도깨비 뉴스 닷 컴 제공입니다]

자전거 만으로 세계일주 여행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말로 가능한게 아니라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을까. 있다. 그런 한국인이 실제로 있다. 그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일주를 마치고 지금 북미 대륙일주를 위해 캐나다에 도착해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자전거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간혹 있긴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여러나라에서 자전거 여행을 했다는 정도 뿐이다. 그는 지난 15년간 자전거 무전여행을 했으며 앞으로도 5년간 아메리카 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여행할 계획이다. 29살 청년은 자전거하나 달랑 들고 집을 떠나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 가게 된다.

쟈니 김(43)씨가 6월 23일 밴쿠버에 도착했다. 20년으로 예정된 그의 기나 긴 세계일주 여정은 이제 남북미 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방문 만을 남겨두고 있다.

”비행기도 차도 아닌 자전거로 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려면 대충 20년은 걸릴 것 같았어요. 제 인생 전체를 세계여행에 건거죠.”

김영석씨가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하게 된 이유는 돈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18세부터 세계여행을 꿈꾸던 김영석씨는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1989년 8월 부모님께 ‘유럽 여행을 몇 달 다녀오겠노라’고 둘러대고, 유럽행 편도 비행기 삯과 자전거 한 대를 가지고 장장 20년 여정의 자전거 세계일주를 떠났다.

그의 여행은 유럽에서 시작되어, 아프리카, 중동지역, 다시 유럽대륙의 노르웨이, 네델란드를 거쳐 북미지역의 출발지인 밴쿠버에 도착했고 캐나다를 동서로 횡단한 다음에 몬트리올로 입성하게 된다.
그 후에는 미국을 일주(비자 문제가 잘 해결될 경우)한 후 멕시코, 우루과이 등 남미대륙을 거쳐 호주대륙으로 건너가 호주와 뉴질랜드 방문을 마지막으로 장장 20여년의 기나 긴 세계일주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바다를 건너는 대륙간의 이동은 비행기나 배를 이용해야만 했다. 경비는 여행을 다니며 만난 사람들이 ‘커피나 한잔 사 마시라, 샌드위치 사 먹으라’며 준 잔돈을 푼푼이 모아 마련했다. 아프리카 대륙 종단 때, 야생 동물구역 같은 위험 지역에서는 배도 얻어 타고 자동차도 얻어 타는 등 교민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여행지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곳으로는 스위스와 노르웨이. 무엇보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에 감탄했고 또 그 아름다움에 걸 맞는 좋은 사람들이 그를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고 한다.
특히 노르웨이 신문 ‘트로나인’에서는 동양에서 온 김영석의 세계 일주기를 기사화하여 그의 여행에 힘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가 기나긴 세월동안 여행동안 가장 기뻤을 때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을 때이다. 비록 유창하지 않은 영어실력이지만 그들과 밤새도록 대화하며 정을 나누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또한 세계 각국에서 만난 어린이들의 해 맑은 웃음을 볼 때 마다 김영석씨는 여행 중 쌓인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고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15년 전 자전거 세계일주를 시작한 20대 청년은 이제 40대 중반의 중년이 되었다. 그 동안의 김영석씨는 한 번도 고국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그는 가장 긴 세월동안 집에 안 가고 여행을 한 부문의 기네스 세계기록 비공식 보유자이기도 하다)
단지 몇 달에 한 번씩 집에 전화를 하고, 여행을 다니면서 쓴 기행문을 한국에 계신 부모님 앞으로 보내왔던 것이 전부이다. 6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자식으로서 큰 불효를 했지만,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서는 자식의 뜻을 이해해 주시리라고 믿고 여행을 강행했다.

앞으로 5년 뒤, 김영석씨는 자전거 세계일주 여행이 끝나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고향인 안성에서 뜻이 같은 사람들과 함께 장애인 쉼터를 설립하고 싶은 것이 소원이다. 또 하나의 소원은 남북통일 이다. 통일이 되면 그의 바람 같은 인생의 마지막 여행지로 북한 일주를 하고 싶다고 한다.

그가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자전거로 세계 여행을 하는 목적은 종교적 신념 때문이다. 김영석씨는 평화의 메시지를 온 세상에 전하고 싶다고 한다.
“오늘, 내일 길에서 쓰러져 죽더라도 여한이 없습니다. 돈이 없어도 이렇게 세계여행을 해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제 뜻을 펼치다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영광스러운 것 아니겠습니까.”


기사 츨처 : 코리아 미디어 http://www.coreamedia.com

캐나다 =도깨비뉴스 리포터 차표한장 a003003@dkbnews.com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