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천상궁전 모델하우스 구경가기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17 조회수1,000 추천수6 반대(0) 신고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11/17)






    독서: 묵시 4,1-11 복음: 루가 19,11-28 새 아파트 단지가 근처에 들어서면 기존의 아파트 단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로 집을 옮기느라 모델 하우스나 근처의 부동산 소개소의 문이 몹시 분주해진다. 새로 이사가고 싶은 사람들은 앞으로의 전망, 구조와 근처에 무슨 시설들이 들어설 것인지에 대해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음을 본다.(요즘은 완전 경기침체라 그렇지도 않지만 ^^) 우리 신앙인에게도 이주해야할 곳이 있다. 현세의 임시 대여 기간이 끝이 나면 옮겨야 할 곳, 곧 우리가 영원히 거처해야 할 본향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그 본향에 대해서도 새 아파트에 대한 희망과 열정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먼저 반성해볼 일이다. 오늘의 독서 말씀은 일반적으로 묵시록의 저자라고 알고 있는 요한 사도가 환시 중에 본 천상 궁전의 모습-우리가 궁극적으로 이주하기를 열망해야 할 곳-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다. 하느님의 모습과 천상의 모습은 어떠할까? 성서에서는 이사야 6장, 에제키엘 1장, 다니엘 7, 9-14등 몇몇 곳에서 그 모습을 보여주셨다. 이들 현시는 그야말로 논리적이고 사실적인 묘사가 아니므로 시적인 언어와 상징으로 이해해야하는 내용이다. 묵시록 4장에서 요한은 <창조주>이며 하늘나라의 최고의 주권자이신 하느님의 모습과 천상 어전의 모습을...5장에서는 <구세주>이신 "어린 양"의 환시를 보여주고 있다. 묵시록의 일차 독자는 당시 무소불위의 로마제국의 휘하에서 숨죽이며 살고 있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다. 그들은 막강한 군사력과 재정적인 힘, 약소국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하는 로마의 요구를 받아들이느냐 거부하고 엄청난 시련을 각오하는냐의 신앙의 기로에 서 있었다. 요한의 메시지는 명백하다. 온 천하의 주권을 가지시고 다스리시는 분은 <하느님 한 분> 뿐이시라는 사실을 확신시켜주고 충실한 제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영광이 무엇인지를 미리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요한 사도의 전체적인 의도를 알고 본문을 읽으면 된다. 천상의 문이 열려 있고 그곳으로 들어오라는 음성이 들려 그 안을 보고 있는 환시자. 그곳엔 하늘의 한 옥좌가 보이고 어떤 분이 앉아 계셨다. 옥으로 만든 옥좌의 주인은 말할 것도 없는 하느님이시다. 그분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과 같았다>고 표현되어 있다는 것은 인간의 언어로 감히 형상화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옥좌 둘레에 있는 24개의 높은 좌석과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쓴 원로들은 누구를 말할까? 묵시 21,12-14를 근거로 이스라엘의 12지파와 어린 양의 12사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구약과 신약의 하느님 백성의 대표자를 결합시키는 숫자로 해석할 수 있다. 옥좌 앞에서의 번개, 천둥소리, 일곱 횃불의 훨훨 타오름은 구약에서부터 묘사되어 왔던 하느님 현존을 상징하는 표상들이다. 또한 7 이라는 숫자는 하느님의 완전성과 충만함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완전하고 충만하신 현존을 말하는 것이다. 옥좌 앞의 수정처럼 맑은 유리바다는? 하느님과 피조물 사이의 무한한 거리를 상징한다고도 하고 솔로몬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의 바다모형(1열왕 7,23-26)과 연관지어 천상의 예루살렘 궁전을 의미하고 있다고도 해석한다. 옥좌 둘레에 있는 네 생물은 무엇인가? 에제 1,10의 네 생물의 묘사와 연관이 있으나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우선 4라는 숫자는 사방을 뜻하며 가득히 박힌 눈들의 의미와 더불어 온 우주의 곳곳을 살피시는 하느님의 권능을 말하고 있다. 사자의 모습은 위엄과 기품을(또는 고상함), 황소의 모습은 힘을(또는 강건함), 사람의 모습은 지성을(또는 지혜로움), 독수리의 모습은 영을(또는 날램) 상징하고 있다고도 한다. 이 네 생물을 복음사가와 연관시켜 해석하기도 하는데 원래의 의미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고, 후대의 교부들이 붙인 해석일 따름이다. 네 생물의 입에서는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시다.."는 외침이 흘러나오고 24 천상의 원로들은 하느님의 영광과 영예에 감사드리며 경배함으로써 화답하고 있다. 4장의 절정부분은 천상어전의 모든 이의 찬양이다. "주님이신 우리 하느님, 하느님은 영광과 영예와 권능을 누리실 만한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만물이 주님의 뜻에 의해서 생겨났고 또 존재합니다." 지상의 어떤 것도 창조주 하느님의 영원하고 절대적인 권세와 영광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님을 노래하고 있는 천상의 모습을 전해주면서 요한 사도는 오늘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 다시 묻고 있다. "돌아갈 그 곳을 열망하며 당신은 <오늘>을 살고 있는가?" 오늘 복음(루가 19,11-28)의 메시지도 그렇다. 우리에게 똑같이 부여해 준 (마태오는 다르게 나누어주지만 루가는 똑같이 금화 한개다) 마치 인간 누구나 똑같이 가지고 있는 하루라는 시간, 한번 뿐인 생명이라는 것들을 당신은 어떻게 쓰고 있는가? 한 해가 벌써 다 저물고 있다. 전례력으로는 이 달이 마지막 달이다. 마지막의 마무리는 얼마나 되어 가고 있는가? 독서와 복음이 오늘 우리에게 묻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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