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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도미누스 플레빗 (Dominus Flevit)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18 조회수1,224 추천수9 반대(0) 신고
 

◎ 2004년11월18일(목) -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오늘의 복음]  루가 19,41-44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41)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 이르러 그 도시를 내려다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42) 한탄하셨다.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구나. 43) 이제 네 원수들이 돌아가며 진을 쳐서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쳐들어와 44) 너를 쳐부수고 너의 성안에 사는 백성을 모조리 짓밟아 버릴 것이다. 그리고 네 성안에 있는 돌은 어느 하나도 제자리에 얹혀 있지 못할 것이다. 너는 하느님께서 구원하러 오신 때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복음산책]  도미누스 플레빗(Dominus Flevit)


  어제 복음의 마지막 구절을 보면 예수께서는 ‘금화를 맡긴 종들의 비유’ 말씀을 마치시고 앞장서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고 했다.(28절) 이로써 루가복음이 보도하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상경기(9,51-19,28)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제부터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활동기(19,29-24,53)가 시작될 것이고, 이로써 예수님의 공생활도 끝을 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활동기는 성도(聖都) 예루살렘을 향한 성대한 입성(入城)과 함께 시작된다.(19,29-40) 우선 예루살렘 동쪽 올리브산 너머에 있는 베파게와 베다니아 근처에 도착하신 예수께서는 나귀를 타고 제자들과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올리브산을 넘어 예루살렘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중턱에 이르러 행렬을 멈추셨다. 여기서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예루살렘을 향한 불행을 예고하신다.


  바로 이곳, 올리브산 정상에서 가파른 경사를 따라 키드론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예루살렘 성도(聖都)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에 ‘도미누스 플레빗’(Dominus Flevit, 주님께서 우셨다!)이라는 이름을 가진 성전 하나가 세워져 있다. 우리에게는 ‘눈물성전’으로 알려져 있다. 5세기부터 수도원이 있었던 이 자리에 세워진 ‘눈물성전’은 1955년 이탈리아의 건축가 안토니오 바루치가 설계하여 완공한 것으로서 성전의 지붕을 눈물방울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다. 실제로 성지순례를 가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코스를 걸어보면 만감(萬感)이 교차한다. 베파게에서 올리브산 정상에 이르는 코스를 걸으면서 묵상하면 군중들의 열광적인 환호가 시끄럽게 들린다. 그러나 정상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도와 성전이 한눈에 들어오면 갑자기 고요해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비탈길을 내려와 눈물성전에 이르면 당시 예수님의 눈물이 나의 눈물이 되고 만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마태 21,1-9; 마르 11,1-10; 루가 19,29-40)과 성전정화 사건(마태 21,12-17; 마르 11,15-19; 루가 19,45-48; 요한 2,13-17) 사이에 삽입되어, 눈물과 한탄으로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내용의 오늘 복음은 루가만이 전하는 고유사료이다.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의 울음에 관한 보도는 모두 세 곳인데, 라자로의 죽음을 향한 울음(요한 11,35), 하느님께 큰소리와 눈물로 기도하고 간구하심(히브 5,7), 그리고 오늘 복음의 예루살렘을 향한 울음이다.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구나.”(42절)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예수님의 비통한 눈물과 한탄은 그분의 착잡한 심정을 헤아리기에 충분하다. 아직도 시대의 징표를 읽지 못하고 ‘요란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 그리고 그 성도를 대표하는 무리들. 예수를 반대하는 예루살렘 성도의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메시아의 영광은 없다. 기적의 시간도 모두 끝이 났고, 평화의 날들도 모두 지나갔다. 예루살렘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구원하러 오신 때마저 놓치고 말았다. 그에게 남은 것은 전쟁과 멸망과 심판이다. 실제로 기원후 70년 8월 29일 예루살렘은 로마제국의 군대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였다. 율법에의 충성이 예수께 대한 믿음과 회개를 대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율법만능주의가 그 믿음을 방해하였다. 예수님의 비통한 눈물과 한탄이 오늘날 우리 자신을 향한 것일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오늘이 가기 전에 진정 평화의 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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