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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10) 바람이 차서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18 조회수909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4년11월18일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성베드로 대성전과 성 바오로 대성전 봉헌 기념 ㅡ요한 묵시록5,1-10;루가19,41-44ㅡ

 

             바람이 차서

                              이순의

 

 

호수가를 돌며 단련이라는 소명에 충실하고 있었습니다.

팔굼치를 휘저으며 보폭의 너비에 힘을 실었습니다.

바람이 세차게 다가와 훼방을 놓았습니다.

 

나만의 장애는 아니었습니다.

 

노란 잎사귀, 빨간 잎사귀, 구멍이 숭숭한 잎사귀, 그리고 아직도 푸르딩딩한 생기가 아쉬운 잎사귀들에게 거친 팔매질을 하며 혹한 성깔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온갖 잎새가 바람이 때문에 후두둑 후두둑 떨어져 뒹굴었습니다.

 

가만히 뒹굴게 두지도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요기조기, 콘크리트바닥에도, 돌틈에도, 풀섶에도, 물위에도 바람이 마음대로 후후 불고, 하하 웃고, 버럭 화를 내며 공간을 가르고 다닙니다.

 

어지럽게!

 

바람이 때문에 달린 모자를 쓰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잎이 돋고, 잎이 살고, 잎이 지는, 삶의 질서는 같아도 한 잎 한 잎에게 지워진 여정의 사연은 달랐습니다.

쌓여있는 낙엽 한 장도 닮음이 없고, 떨어진 자리가 같음이 없으며, 격고 만났을 벌레의 흔적 조차도 일치한 게 없었습니다. 

 

사연은 제 각각의 몫이겠구나.

 

왜 붉으니

왜 누르니

왜 고우니

왜 미우니

왜 구멍이 크니

왜 구멍이 작니

왜 돌틈이니

왜 길바닥이니

왜 물 위니

왜 초록이 남았니

왜 아직도 가지에 머무니

.

.

.

.

.

?

 

하나도 같은 몫이 없었습니다.

 

이는 바람인들 제 몫이 같겠습니까?

 

하늘에서 보면 우리네 사람의 모습도 쌓여있는 낙엽처럼 겹겹이 포개져 인생이라는 질서가 다르지 않게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똑 같은 낙엽이 한 장도 없는 무수함 처럼 우리네 사연도 같은 것 없이 무수할 것입니다. 그러니 황망히 부는 바람 한 점 인들 같은 운명이 있겠습니까?

 

낙엽 한 점인들 제 명운을 알고 떨어졌겠습니까?

바람인들 오고 가야할 데를 알고 불어 보겠습니까?

그래서 나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ㅡ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너는 그 길을 보지 못 하는구나. 루가19,42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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