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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11) 가해자가 되어버린 노인!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21 조회수988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4년11월21일 주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성서주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 없음 ㅡ사무엘 하권5,1-3;골로사이서1,12-20;루가23,35-43ㅡ

 

     가해자가 되어버린 노인!

                                    이순의

 

 

연중 마지막 시기를 알리고 있다.

계절도 스산하고 풍경도 적적하며 햇빛조차 작열하던 기력을 잃고 무기력하기 이를데가 없다. 기운이라는 것이 다 때가 있고, 운명이라는 것이 다 흐름이 있다.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연중시기에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를 고민해 보았다.

 

봄이 오면 만물이 소생을 하고 어린 잎들은 귀여운 재롱을 부리며 연하고 고운 속살을 뽑내고 있다. 예쁘지 않은 잎이 한 잎도 없다. 소중하지 않은 싹이 한 포기도 없다. 대지는 공평하고 탄생은 활기차며 싱그러운 잘남은 모두의 희망이다.

 

그러나 가만히 서 있는 나무에 붙은 조무래기들이야 무슨시련이 있으랴 싶었지만 가을이 오시면 작은 잎새들의 모습은 제 각각으로 변한다. 분명히 새싹이 돋는 봄에는 똑 같이 예쁜 어린 싹이었는데 낙엽지는 가을의 노인은 이파리 한 장도 젊음이 없고 같음이 없다. 서있는 나무의 어느 한 쪽을 누군가 부러 더 괴롭히지는 않았으련만 그 작은 잎새의 운명은 같을 수 없었던가 보다.

 

때로는 홍고운 빛깔이 고와서 선택적으로 책갈피에 꽃히는 드문 특은도 있다지만 여름을 사는 동안 잘남이 달랐을 잎새들도 마지막 가는 길은 같았다는 것! 대지의 물을 먹고 생명으로 태어남이 같았듯이 청소부의 빗자루에 쓸려가는 마지막도 다르지 않고 같았더라는 것이다. 사는 여름동안만 만나는 바람과 쪼이는 햇님과 친구인 벌래들과 나눈 정담이 달랐다는 것뿐!

 

실핏줄 같은 줄기 앙상한 잎이나, 구멍이 숭숭한 잎이나, 오색이 고운 미모의 잎이나 가을이 왔을 때는 입장이 다 같았더라는 것이다. 요즈음 친정어머니도 보고 시어머니도 보며 늙는다는 것은 떨어지는 낙엽이었다. 그분들도 젊었을 적에는 원망할 것이 있었을 것이다. 각복한 현실도 원망하고, 시집살이 구박하는 어른들도 원망하고, 불평할 남편이 있어서 큰 소리도 치고,

 

모두가 뿜어 낼 기력이 있어서 잘난척할 수 있는 원망이었을 것이다. 늙는다는 것은 기력이 소진되어 모자란다. 바람이 불면 악다구니를 쓸 여력도 없이 무기력하다. 젊은 초록으로 광합성 활동을 했던 노고는 잊어버리고, 모세혈관조차 말라버린 뻐석뻐석한 낙엽은 거리의 가해자다. 모든 젊음은 원망을 한다.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수액조차 굳어버린 낙엽은 나도 여름에는 초록이었노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미 노인의 원망을 들어줄 윗사람은 이승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이 세상의 어른은 노인이다. 모든 노인은 세상의 가해자다. 봄을 살았고, 여름을 채웠으며, 연두빛깔 수액을 마셨고, 초록빛깔 젊음을 누렸으니까!

 

노인의 원망을 들어줄 가해자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가해자가 되어버린 노인은 탓을 듣는다.

살았다는 것은 죄였나보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살았으므로 노인이 된다.

나도!

 

ㅡ"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요." 하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갈 것이다. 루가23,42-43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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