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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헌금의 가치는 마음이 결정한다.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21 조회수1,368 추천수10 반대(0) 신고
 

◎ 2004년11월22일(월) -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 성녀 체칠리아 (200년경-230년경) 동정 순교자

  1784년 천주교 전래이후 100년 동안 박해시대를 겪어야 했던 우리에게 동정 순교자 성녀 체칠리아는 그녀의 고향인 이탈리아 로마에서만큼 잘 알려져 있는 성인 중의 한 사람이다. 음악인의 주보, 성녀 체칠리아! 정확한 기록은 아무 데도 없지만 사랑 받는 만큼 많은 전설이 성녀를 둘러싸고 있다. 로마의 고대 미술관에 소장된 카를로 사라체니의 작품(1610년경)에는 천사와 함께 비올라를 연주하는 성녀 체칠리아를 볼 수 있다. 워싱턴 국립미술관 소장, 오라찌오 젠틸레쉬와 죠반니 란프랑코가 1617년경 합작한 그림 한 폭에는 악보를 들고 있는 천사와 오르겔을 연주하는 성녀 체칠리아를 담고 있다. 이들 그림은 분명히 어떤 근거가 있을 것이다.


  200년경 로마의 이방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체칠리아는 어릴 적부터 예수를 믿었다. 후일 부모의 강요에 의해 이방인 발레리아노와 결혼하게 된 성녀는, 전설에 의하면, 자신의 결혼식에서 오르겔을 연주했다하고, 또는 악기에 맞춰 예수께 동정을 청원하는 노래를 불렀다고도 한다. 결혼 첫날밤 성녀가 남편에게 ‘동정을 지켜줄 천사가 내 속에 있다’고 말하자, 남편이 ‘천사를 보여주면 동정을 지켜줄 것’을 약속한다. 그 날 발레리아노는 꿈속에서 백발의 노인, 즉 당시 로마의 주교이자 교황 우르바노 1세(222-230)가 건네주는 황금 글자로 된 책을 받은 후, 주교에게 가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다. 집으로 돌아온 발레리아노는 체칠리아 옆에 서있는 천사를 직접 보게 되었고, 천사는 그들에게 백합과 장미의 관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그 향기에 매료된 발레리아노의 동생 티부르티오도 세례를 받게 된다. 그때부터 두 형제는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의 주검을 거두어 장례를 치른다. 당시 법으로 금지되었던 이 일을 용감히 해낸 두 형제는 감옥에서 간수까지 회개시키고 230년경 순교한다.


  성녀 체칠리아가 이 셋을 거두어 장례를 치른 일로 당시 로마 장관 알마키오에게 잡혀가 끓는 물에 담겨졌으나, ‘시원하다’하며 말짱했다. 화가 치민 장관이 성녀의 목을 칼로 치게 했다. 세 번이나 칼로 목을 내리 쳤으나, 성녀는 3일을 더 살았다고 한다. 3일 동안 성녀는 가진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게 하였고, 이에 감동한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우르바노 교황은 트라스테베레에 있는 성녀의 집을 성전으로 축성하였고, 시신을 로마의 칼리스토-카타콤바에 안치하였다. 545년 비질리우스 교황은 트라스테베레에 성녀 체칠리아 성전을 지어 봉헌하였고, 819년 파스칼리우스 1세 교황은 성녀의 유해를 찾아내어, 그 유해를 꿈속에 나타난 성녀의 지시를 받고 트라스테베레 성녀 체칠리아 성전에 안치하였다고 한다.◆


[오늘의 복음]  루가 21,1-4

<예수께서는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작은 동전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1) 어느 날 예수께서 부자들이 와서 헌금 궤에 돈을 넣은 것을 보고 계셨는데 2) 마침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작은 동전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가난한 과부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은 돈을 넣었다. 4) 저 사람들은 모두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예물로 바쳤지만 이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가진 것을 전부 바친 것이다.”◆


[복음산책]  헌금의 가치는 마음이 결정한다.


  오늘 복음은 가난한 과부가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을 헌금으로 바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성전에서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부활에 관한 토론으로 그들의 입을 막아버리고(20,27-40),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경계하라(20,45-47)고 가르치신 예수께서 그곳을 나오셔서 성전밖에 설치된 헌금 궤를 보고 계셨다. 예루살렘 성전 밖 ‘여인의 뜰’에는 각각 다른 명목의 헌금 궤가 13개나 있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넉넉함에서 얼마씩을 헌금하였지만, 어떤 가난한 과부는 작은 동전 두 닢을 헌금하였다. 그 두 닢이 곧 과부가 가진 모든 것이었다. 액수로 따지자면 보잘것없는 돈이지만 예수께서는 어느 누구보다 과부의 헌금이 컸다고 하셨다.


  가진 것을 몽땅 바쳐버린 과부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이 우리의 머리를 스친다. 실제로 그랬을까? 아니면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오늘 과부의 헌금이 어떤 헌금보다 큰 헌금이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과부헌금의 사실유무를 떠나서 헌금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액수의 많고 적음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헌금이나 헌물에서 그 진정한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바치는 사람의 마음자세이다. 헌금의 액수에 관계없이 헌금에는 내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 마음은 제각기 다르다. 헌금의 가치를 깎아 내리는 마음이 담겨있는 경우가 있으니, 달갑지 않고 억지로 내는 마음, 자기의 위신이나 남의 이목 때문에 내는 마음, 넉넉하면서도 인색한 마음, 자기를 선전하고 광고하려는 마음, 마음조차 담지 않고 그냥 내는 마음 등이 그런 것이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을 바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다. 그렇다고 헌금이 가진 모든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하느님께 예물을 바친다면 정성껏 바쳐야 하고, 가진 것 중에 제일 좋은 것을 골라 바쳐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은 바로 우리의 생명이다. 이 생명을 차마 바칠 수 없기에 우리는 생명을 대신할만한 것을 바치게 되는 것이다. 생명을 바친다면 그것은 가진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자신의 생명을 세상을 위해 내어놓을 예수님의 마지막 죽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사도 바울로는 말한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은혜로우신 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부유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분이 가난해지심으로써 여러분은 오히려 부유하게 되었습니다.”(2고린 8,9)


  하느님이 인간이 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사실이다. 생각해보라. 지고의 존재인 하느님이 인간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하느님의 것을 버려야 하며, 또 얼마나 많은 인간적인 한계를 감수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이런 포기와 감수는 사랑이 아니고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엄청난 일이 실제로 예수 안에서 일어난 것이다. 예수께서는 인간이 되심으로 가난하게 되셨다. 십자가 위에서 그분은 더욱 가난하게 되셨으며, 죽으심으로써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으셨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참다운 사랑이 그분 안에서 밝히 드러났다.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이토록 크신 사랑이 드러났다면, 오늘날 예수님의 그 큰 사랑은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가? 확실한 것은 부자들의 ‘가벼운’ 헌금보다는 과부의 ‘온전한’ 헌금 속에 그 모습이 담겨있다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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