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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음을 비우고 사는 한 해가 되게 하소서!
작성자권태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28 조회수1,285 추천수6 반대(0) 신고

莊子의 '山木'편에 보면 "虛船觸舟人不怒"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풀이하면 "빈 배가 배(쪼그마한 배)에 부딪혀도 사람이 성내지 않더라" 그런 뜻일 겝니다.

사공이 노를 저어 가는 데 저 쪽에서 빈배가 와서 부딪쳤다. 성을 낼 까닭이 없지요.

사람이 타지 않은 빈 배였으니까요.

하지만 만약 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고 가정해 봐요.

서로 삿대질을 했을 겁니다. "뭘 보고 다니느냐?" "눈은 구멍이 모자라 달았느냐?"

"네가 잘못 한 걸 왜 나보고 그러느냐?" 아마도 시끄러웠을 겁니다.

하지만 빈 배가 흘러와 부딪친 것을 어떡하겠습니까?

 

"이 警句의 참 뜻은 사람이 빈 배처럼 마음을 비우고 살면 남과 다툴 일이 없다라는 뜻이니 자네들이 살아가면서 자기수양의 덕목으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가르침을 대학한문 교수였던 이가원 교수님한테서 받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빈 배일 수 없었습니다. 부자가 망해도 3대는 간다던데 큰 부자가 아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2대도 못가서 우리집은 가난해졌고 등록금을 마련 못해 휴학도 하고, 겨우 졸업하고 좋은 직장이라는 은행(그 당시는 최고의 직장)에 들어갔어도 만족치 못하고, 사업한다고 나서서 몽땅 떨어먹고 다시 이 직장 저 직장을 전전하며 욕심만 부리다가, 결국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두고 멀리 보르네오섬까지 가는 곤욕을 치뤄야 했습니다. 

 

나는 보르네오의 자연 속에서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피부색이 까무잡잡하고 몸집도 우리보다 왜소한 현지인들과 뒤섞여 지내면서 나는남을 배려할 줄 아는 그들의 마음씨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例 1>

제가 있었던 회사는 원목개발회사였는데 밀림을 가다 보면 임자없는 바나나나무가 많거든요.(주로 원숭이나 날짐승들이 분뇨로 씨앗을 퍼뜨려서 저절로 자란 것들입니다) 하루는 배가 고파 현지인 부하들을 시켜 누렇게 익은 바나나를 따 오라고 시켰는데 야구글러브 같은 바나나 한송이만 가져왔어도 내가 그런 말을 안했을 텐데 모두가 바나나 3알, 또는 4알만 달랑 들고 왔더군요.

"야, 이 바보들아. 그걸 몽땅 잘라오면 누가 뭐래냐? 임자도 없는 건데. 먹다가 남으면 집에 갖다주면 좋아할텐데" 했더니

"임자가 없다는 건 모두가 임자라는 뜻이죠. 그러니까 나는 내 몫만 따온 거에요" 합디다. 설령 아무도 따지 않아 썩거나 산짐승이 먹어도 내 몫이 아니니까 관계없다는 겁니다.

 

<例 2>

하루는 정글길을 가다가 우리가 탄 토요타 찦차가 그만 비가 와서 곤죽이 된 수렁에 빠졌습니다. 데후기어까지 넣고 별짓을 다 했어도 바퀴가 점점 깊이 박혀 도저히 빠져 나올 수가 없어서 난감해 하는데 저만치 앞에서 고장난 듯이 서 있던 자동차가 시커면 연기를 내며 시동을 걸더니만 뒤로 후진하여 밧줄을 던지길래 그걸 찦차 앞범퍼 도르레에 묶고 이쪽은 감고 저쪽은 댕기니까 무 빠지듯이 쑥 빠져 나왔습니다.

차를 꺼내준 사람들한테 가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내 차를 운전하던 현지인 부하에게 "늦었다. 어서 가자!" 하니까 이 친구가

"안돼요. 못 갑니다" 하더군요.

"야, 임마. 왜 못 가? 차가 고장 났어?" 내가 다그쳤더니

"아니요." 하더라구요.

"그럼 왜 못 가? 점점 어두워질텐데 빨리 가!"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부하직원이 난감하게 나를 쳐다보더니만 어렵사리 말을 꺼내는데

"다음 차가 오면 꺼내 주고 가야지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글에 길은 그 길 하나밖에 없는데 그 길로 딴 차가 올텐데. 그 차도 분명히 빠질텐데 우리가 그 차를 꺼내줘야 하는거 아니냐 바로 그런 얘기였습니다.

얼마나 제 얼굴이 확끈거리던지....

허구헌날 책임감이 없다는 둥, 꾸물거린다는 둥 내가 야단만 쳤었는데 그날 이후 나는 "야! 이게 아니다."하며 그들을 대함에 있어 크게 뉘우친 바 있었습니다.

 

84년 귀국 후 천주교 영세를 받고 나는 정식으로 하느님 백성이 됐지만 아무리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나니" 했어도 가난에 쩔었던 욕심쟁이라서 마음을 비울 줄 몰랐고, 그러다가 가끔 죄를 지으면 혹시나 본당신부님께서 내 목소리를 알아들으시면 어쩌나 해서 이 본당 저 본당 찾아다니며 고해성사를 하곤 했어요.

 

이제 교회력으로 새해를 맞았으니 이 죄인도 금년에는 죄도 좀 덜 짓고 욕심도 줄이고 마음도 비우면서 살았으면 하고 소망하며 기도 합니다.

요즘들어 생각하니 빈 배처럼 마음을 비우는 것은 욕심을 줄이는 것만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이 아니겠나 싶어요. 촛불 하나의 온기라도 남에게 베풀면서 때에 따라서는 내 입장보다 남의 입장이 되어 나를 바라보기도 하고 내 이익 생각키 전에 남의 이익도 생각하고.

정말 보르네오에서 배운 것처럼 나도 새해에는 그렇게 살았으면 합니다. 주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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