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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2월 6일 『야곱의 우물 』- 외적 무능 ♣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05 조회수901 추천수8 반대(0) 신고
     
    ♣ 외적 무능 ♣ 
    
    [루가 5,17-26] 
    하루는 예수께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거기에 갈릴래아와 유다의
    여러 마음과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
    이 앉아 있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병자들을 고쳐주기도 하셨는데 그때 사람들이 중풍 들린 사람을 침상에 눕혀가지고 와서 예수 앞에 데리고 가려 하였으나 사람들이 많아서 병자를 안으로 데 리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 구멍을 내고 병자를 요에 눕힌 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예수 앞에 내려보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을 들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저 사람이 누구인데 저런 말을 하여 하느님을 모독하는가? 하느님 말고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수군거리기 시작 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느냐? '너는 죄를 용서받 았다'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하는 것과 어느 편이 더 쉽겠 느냐? 이제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사람의 아들에게 있다 는 것을 보여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병자에게 "내가 말하는 대로 하여라.일어나 요 를 걷어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 하셨다.그러자 병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떡 일어나 깔고 누웠던 요를 걷어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면서도 마음은 두려움에 싸 여 "우리는 오늘 참으로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하였다. 중풍병자는 침상에 누운 채 예수님 앞에 옮겨져 왔다.한 인간이 그곳에 아무 능력도 없이 드러누워 있다. 산다는 것이 그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
    저 자신에게는 짐이요, 주위 사람들에게도 짐이다. 그런 그가, 모여 있던 우리 모두가 지금 한 가지 희망을 품게 되었다.그리 스도께서 이 사람을 치료하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찾음으로써 이 사람에게도 인생이 커다란 전환점이 될 줄 누가 알겠는가?
    이 중풍환자나 주위 사람들이 기대와 희망으로 이 순간을 지켜 보고 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어리둥절하게 한다. "안심하여라, 네가 죄를 용서받았다." 그는 죄 때문이 아니라 육신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인데 예수님은 전혀 다른 입장 에서 판단하신다.
    몸이 건강한지 병들었는지 하는 것보다는 우선 영혼이 건강한지 병들었는지, 영적으로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를 보신다. 육체 를 꿰뚫어 마음속을 보신다.
    그 중풍병자의 가장 큰 고통은 육신의 병이 아니라 그의 인생을 아무 의미도 없는 짐으로 만드는 하느님과의 격리였다.
    자기 힘으로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이 도와주더라도 그렇다. 중풍이나 외적 무능은 이렇듯 영적 비탄의 표시다. 눈으로 보는 사건의 외형 너머로 내적 사건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짐스러운 존재였던 중풍병자가 무거운 침상을 가볍게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게 한다. 『야곱의 우물』 《매일성서묵상》에 나오는 12월 6일자 수원교구 성남동 천주교회 김양요님의 글입니다. *^^*
    【 묵 상 나 누 기 】 † 전환점 † 오늘 복음에 나오는 중풍병자의 말씀를 읽을 때면 언제나 떠오 르는 돌아가신 친정어머님. 그리고 내 자신이다. 몇 달前 여름 방학 동안에 야곱의 우물을 나르면서 마지막 날인 8월 30일 야 곱의 우물을 올리며 [안나]의 오래된 영혼의 중풍병이 나음을 받았기에 오늘 묵상글을 나누는 느낌은 남다르다. [루가 5,24] 그리고 나서 중풍병자에게 "내가 말하는 대로 하여라. 일어나 요를 걷어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 하셨다.그러자 병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떡 일어나 깔고 누웠던 요를 걷어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앗!나는 사람들 앞에서 누웠던 요를 걷어 들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주님의 나즈막한 소리를 마음으로 알아들으면서 '주님, 사마리아 여인되어 물동이를 지고 나르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고국방문길에 올라서도 종종거리며 물동이를 날랐다.^^
    지금은 나음을 받았던 그가 그랬듯이 앗! 나는 날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미사를 드리러 가는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다.기쁘다. 미사의 의미를 깨달아가면서 미사를 드리니 삶의 의미가 새롭 게 다가온다. 중풍병자처럼 내 맘데로 할 수 없었던 묶인생활 을 살아보았기에/얼마나 갑갑했던가를 아직은 잊지 않았기에!
    성체를 모시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곤고한지를 느꼈기 때문에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라는 사제의 기도 소리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울컥 뜨거운 눈물이 솟 구치는 것이다. 아파본 경험이 없다면 이 기쁨을 누리지 못한 체 그 날이 그 날인것처럼 미사를 드렸으리라... 중풍이나 외적 무능은 이렇듯 영적비탄의 표시다... 10 년 전에 처음으로 버스 운전을 배울 때의 일이다. 유럽베낭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리어커 끌고 배추장사라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다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러 돌아갔지만,보수 가 맞지를 않는다. 장비운전하면서 취득한 대형면허가 있으니/ 버스 운전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친구의 권유와 또 언젠가는 유치원을 경영하고픈 꿈이 남아 있었을 때였으니 맞춤쟙이었다.
    몇 일을 기사 뒤에 앉아서 노선을 익혀 두었다. 그리고 운전하 는 솜씨를 얼마나 눈여겨 보았던가. 하지만, 운전은 자신이 직 접 버스를 끌고 도로를 나와야 하는 것이다.아무리해도 용기가 나지를 않는다.일 주일 후에는 새벽시간에 직접 운전을 해야된 다고 하는데.../운전대를 잡아보니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다...
    일을 해야 먹고 사는데, 일을 해야 다음 꿈을 이룰 수 있는데/ 그 다음 날 아침 새벽기도회에 가서 엎드려졌다. 예배가 끝난후 모두가 돌아간 빈 자리에서 하느님과 앗! 나의 맞대결을 시작하 는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캄캄한 상태. 인생에 있어서 광야와 같은 곳에 섰을 때.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때... 나는 나의 죄를 들여다 보기 시작하였다. 단지 지금 무엇인가를 할 수 없다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 속에서 나와 주님 과의 해결해야 될 것을 짚고 넘어가야 되는 것이다.
    그랬다.나는 몇 일간을 주님과 마주 앉아서 죄에 대한 통회자복 을 하였다. 그렇게 많은 것들이 보일 줄이야.../하느님과 나의 관계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무엇을 해결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그 때 삶을 통해서 느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나는 이른 새벽에 첫 차를 운전하였다. 전철 역으로 가는 몇 안되는 손님을 태우고 사수(운전을 가르친 기사) 를 뒤에 태우고 첫 길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내 무거운 죄 들을 고백하고나서야 삶의 힘을 얻은 것이다. 그런 후 5년 동안 무사고 영업용 운전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운전했던 일은 내 삶에 꼭 필요한 일이었다. 앞으로도 기 회가 되면 그 일은 나에게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 믿는다. 여리딘 내가 할 수 있었기에 나는 누구라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묵상글로 돌아간다. 그는 죄 때문이 아니라 육신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인데 예수님은 전혀 다른 입장에서 판단하신다. 몸이 건강한지 병 들었는지 하는 것보다는 우선 영혼이 건강한지 병들었는지, 영적으로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를 보신다. 육체를 꿰뚫어 마음속을 보신다. 내가 주님 앞에 가지고 나온 삶의 모든 '꺼리'들은 그 문제를 통하여 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줄을 깨달으면 해결된다고 나는 늘 생각한다. 언제나 '죄'의 문제를 해결하 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짐스러운 존재였던 중풍병자가 무거운 침상을 가볍게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게 한다. 나는 누구보다 이 말씀이 가슴으로 이해가 간다. 내가 부름을 받았을 때 그 때도 느꼈지만, 살아가면서 내내 삶의 굽이들을 만날 때면 나음이 무엇인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 것 인지를 알고 있는... 안나가요*^^* 《소스 입니다》 <ul><img src="http://GodisLove.net//wwwb/data/picture/ 038_142416violet22_com.jpg" border="0" color="black">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 외적 무능 ♣</b> <FONT color=gree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b>[루가 5,17-26]</b><FONT color=red style="FONT-SIZE: 10pt"> 하루는 예수께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거기에 갈릴래아와 유다의 여러 마음과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 이 앉아 있었다. <br>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병자들을 고쳐주기도 하셨는데 그때 사람들이 중풍 들린 사람을 침상에 눕혀가지고 와서 예수 앞에 데리고 가려 하였으나 사람들이 많아서 병자를 안으로 데 리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br> 그래서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 구멍을 내고 병자를 요에 눕힌 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예수 앞에 내려보냈다. <br>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을 들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저 사람이 누구인데 저런 말을 하여 하느님을 모독하는가? 하느님 말고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수군거리기 시작 하였다. <br>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느냐? '너는 죄를 용서받 았다'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하는 것과 어느 편이 더 쉽겠 느냐? 이제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사람의 아들에게 있다 는 것을 보여 주겠다." <br> 그러고 나서 중풍병자에게 "내가 말하는 대로 하여라.일어나 요 를 걷어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 하셨다.그러자 <u>병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떡 일어나 깔고 누웠던 요를 걷어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u> <br> 사람들은 모두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면서도 마음은 두려움에 싸 여 "우리는 오늘 참으로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하였다.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중풍병자는 침상에 누운 채 예수님 앞에 옮겨져 왔다.한 인간이 그곳에 아무 능력도 없이 드러누워 있다. 산다는 것이 그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 <br> 저 자신에게는 짐이요, 주위 사람들에게도 짐이다. 그런 그가, 모여 있던 우리 모두가 지금 한 가지 희망을 품게 되었다.그리 스도께서 이 사람을 치료하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br> 그리스도를 찾음으로써 이 사람에게도 인생이 커다란 전환점이 될 줄 누가 알겠는가? <br> 이 중풍환자나 주위 사람들이 기대와 희망으로 이 순간을 지켜 보고 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어리둥절하게 한다. "안심하여라, 네가 죄를 용서받았다." 그는 죄 때문이 아니라 육신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인데 예수님은 전혀 다른 입장 에서 판단하신다. <br> 몸이 건강한지 병들었는지 하는 것보다는 우선 영혼이 건강한지 병들었는지, 영적으로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를 보신다. 육체 를 꿰뚫어 마음속을 보신다. <br> 그 중풍병자의 가장 큰 고통은 육신의 병이 아니라 그의 인생을 아무 의미도 없는 짐으로 만드는 하느님과의 격리였다. <br> 자기 힘으로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이 도와주더라도 그렇다. 중풍이나 외적 무능은 이렇듯 영적 비탄의 표시다. 눈으로 보는 사건의 외형 너머로 내적 사건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br>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짐스러운 존재였던 중풍병자가 무거운 침상을 가볍게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게 한다. <FONT color=purple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b>『야곱의 우물』 《매일성서묵상》에 나오는 12월 6일자 수원교구 성남동 천주교회 김양요님의 글입니다. *^^* </b> <br> <EMBED src=http://myhome.naver.com/pinokeeo1004/1/angel71.swf width=150 height=10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FONT color=#005e77 style="FONT-SIZE: 10pt"> <b>【 묵 상 나 누 기 】</b> <FONT color=#005e77 style="FONT-SIZE: 11pt"> † 전환점 †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오늘 복음에 나오는 중풍병자의 말씀를 읽을 때면 언제나 떠오 르는 돌아가신 친정어머님. 그리고 내 자신이다. 몇 달前 여름 방학 동안에 야곱의 우물을 나르면서 마지막 날인 8월 30일 야 곱의 우물을 올리며 [안나]의 오래된 영혼의 중풍병이 나음을 받았기에 오늘 묵상글을 나누는 느낌은 남다르다. <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루가 5,24] 그리고 나서 중풍병자에게 "내가 말하는 대로 하여라. 일어나 요를 걷어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 하셨다.그러자 병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떡 일어나 깔고 누웠던 요를 걷어 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앗!나는 사람들 앞에서 누웠던 요를 걷어 들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주님의 나즈막한 소리를 마음으로 알아들으면서 '주님, 사마리아 여인되어 물동이를 지고 나르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고국방문길에 올라서도 종종거리며 물동이를 날랐다.^^ <br> 지금은 나음을 받았던 그가 그랬듯이 앗! 나는 날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미사를 드리러 가는 기쁨으로 살아가고 있다.기쁘다. 미사의 의미를 깨달아가면서 미사를 드리니 삶의 의미가 새롭 게 다가온다. 중풍병자처럼 내 맘데로 할 수 없었던 묶인생활 을 살아보았기에/얼마나 갑갑했던가를 아직은 잊지 않았기에! <br> 성체를 모시지 않고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곤고한지를 느꼈기 때문에 <b>'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b>라는 사제의 기도 소리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울컥 뜨거운 눈물이 솟 구치는 것이다. 아파본 경험이 없다면 이 기쁨을 누리지 못한 체 그 날이 그 날인것처럼 미사를 드렸으리라... <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중풍이나 외적 무능은 이렇듯 영적비탄의 표시다...</b>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10 년 전에 처음으로 버스 운전을 배울 때의 일이다. 유럽베낭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리어커 끌고 배추장사라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다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러 돌아갔지만,보수 가 맞지를 않는다. 장비운전하면서 취득한 대형면허가 있으니/ 버스 운전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친구의 권유와 또 언젠가는 유치원을 경영하고픈 꿈이 남아 있었을 때였으니 맞춤&#51161;이었다. <br> 몇 일을 기사 뒤에 앉아서 노선을 익혀 두었다. 그리고 운전하 는 솜씨를 얼마나 눈여겨 보았던가. 하지만, 운전은 자신이 직 접 버스를 끌고 도로를 나와야 하는 것이다.아무리해도 용기가 나지를 않는다.일 주일 후에는 새벽시간에 직접 운전을 해야된 다고 하는데.../운전대를 잡아보니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다... <br> 일을 해야 먹고 사는데, 일을 해야 다음 꿈을 이룰 수 있는데/ 그 다음 날 아침 새벽기도회에 가서 엎드려졌다. 예배가 끝난후 모두가 돌아간 빈 자리에서 하느님과 앗! 나의 맞대결을 시작하 는 것이다. <br>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캄캄한 상태. 인생에 있어서 광야와 같은 곳에 섰을 때.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때... 나는 나의 죄를 들여다 보기 시작하였다. 단지 지금 무엇인가를 할 수 없다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 속에서 나와 주님 과의 해결해야 될 것을 짚고 넘어가야 되는 것이다. <br> 그랬다.나는 몇 일간을 주님과 마주 앉아서 죄에 대한 통회자복 을 하였다. 그렇게 많은 것들이 보일 줄이야.../하느님과 나의 관계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무엇을 해결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그 때 삶을 통해서 느꼈다. <br> 그리고 일주일 후, 나는 이른 새벽에 첫 차를 운전하였다. 전철 역으로 가는 몇 안되는 손님을 태우고 사수(운전을 가르친 기사) 를 뒤에 태우고 첫 길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내 무거운 죄 들을 고백하고나서야 삶의 힘을 얻은 것이다. 그런 후 5년 동안 무사고 영업용 운전을 할 수 있었다. <br> 그렇게 운전했던 일은 내 삶에 꼭 필요한 일이었다. 앞으로도 기 회가 되면 그 일은 나에게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 믿는다. 여리딘 내가 할 수 있었기에 나는 누구라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묵상글로 돌아간다. <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그는 죄 때문이 아니라 육신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인데 예수님은 전혀 다른 입장에서 판단하신다. 몸이 건강한지 병 들었는지 하는 것보다는 우선 영혼이 건강한지 병들었는지, 영적으로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를 보신다. 육체를 꿰뚫어 마음속을 보신다.</b>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내가 주님 앞에 가지고 나온 삶의 모든 '꺼리'들은 그 문제를 통하여 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줄을 깨달으면 해결된다고 나는 늘 생각한다. 언제나 '죄'의 문제를 해결하 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짐스러운 존재였던 중풍병자가 무거운 침상을 가볍게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게 한다.</b>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나는 누구보다 이 말씀이 가슴으로 이해가 간다. 내가 부름을 받았을 때 그 때도 느꼈지만, 살아가면서 내내 삶의 굽이들을 만날 때면 나음이 무엇인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 것 인지를 알고 있는... <FONT color=gree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IMG height=150 src="http://www.imagestation.com/picture/sraid53/ p1267c37ffdbfe50aca62ebc9cb2ddfb0/fc8b9715.gif"width=150> <b>안나가요*^^*</b> <EMBED src=http://mx.inlive.co.kr/msd.mx?mx=63303 width=200 height=25 type=audio/x-ms-wax volume="0" autostart="true" loo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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