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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대림시기의 독서와 복음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06 조회수1,527 추천수12 반대(0) 신고
 ◎ 2004년12월6일(월) - 대림 제2주간 월요일

 

[오늘의 복음]  루가 5,17-26

<우리는 오늘 참으로 신기한 일을 보았다.>


  17) 하루는 예수께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거기에 갈릴래아와 유다의 여러 마을과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앉아 있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병자들을 고쳐주기도 하셨는데 18) 그 때 사람들이 중풍 들린 사람을 침상에 눕혀가지고 와서 예수 앞에 데리고 가려 하였으나 19) 사람들이 많아서 병자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 구멍을 내고 병자를 요에 눕힌 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예수 앞에 내려 보냈다. 20)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21) 이 말을 들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저 사람이 누구인데 저런 말을 하여 하느님을 모독하는가? 하느님 말고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22)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알아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느냐? 23)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것과 어느 편이 더 쉽겠느냐? 24) 이제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사람의 아들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병자에게 “내가 말하는 대로 하여라. 일어나 요를 걷어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하셨다. 25) 그러자 병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떡 일어나 깔고 누웠던 요를 걷어들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26) 사람들은 모두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면서도 마음은 두려움에 싸여 “우리는 오늘 참으로 신기한 일을 보았다.” 하고 말하였다.◆


[복음산책]  대림시기의 독서와 복음


  대림시기 1주간 월요일부터 12월 16일까지의 복음은 어떤 기준에 의하여 선택 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겠다. 하지만 딱히 어떤 선택의 기준을 찾을 수가 없다. 확실한 것은 마태오와 루가복음에서만 선택된 부분이 장(章)의 순서에 따르지 않고 임의로 봉독된다는 것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연중 제10주간부터 34주간 사이에 봉독된 적이 없는 대목을 택한 경우가 많다. 굳이 대림시기에 봉독되는 복음의 내용을 말하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일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메시아의 도래와 현존이 가져오는 징표들에 관한 내용으로서 병자와 소경치유, 죄사함 등의 기적과 억눌린 백성들에 대한 배려와 위로를 들 수 있다. 둘째는 메시아적 징표들에 대한 인간의 태도로서 믿음과 불신을 대립시킴으로써 믿음이 하느님나라의 보장을 받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셋째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를 대조하여 세례자 요한이라는 인물과 그의 역할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 이상으로 메시아의 정체와 권위가 출중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대림시기의 복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복음을 항상 독서에 연결시켜 묵상하는 것이다. 사실 이 시기에 봉독되는 독서가 거의 이사야예언서에서 발췌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야 한다. 이사야예언서는 서로 다른 시기에 집필된 세 권의 예언서가 한데 묶여 있다. 제1이사야(1-39장)는 오직 하느님만이 절대자요 주님이시라는 주제를 가지고 하느님께 충실할 때 구원이 가능하며, 구원의 징조는 처녀가 잉태하여 낳은 아들이 임마누엘이 되어 메시아가 되리라는 것을 예언한다. 임마누엘이 곧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제2이사야(40-55장)는 이스라엘 백성의 바빌론 귀양살이(BC 587-538)를 배경으로 그들에게 희망과 위로, 해방과 자유를 제시한다. 특히 유명한 네 번의 “야훼의 종의 노래”를 통하여 야훼의 종이 바로 백성에게 해방과 자유를 선사할 고난과 죽음을 불사하는 메시아임을 밝혀준다. 이 또한 신약의 인자(人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고된 모습이다. 제3이사야(56-66장)는 이스라엘이 귀양살이를 끝내고 귀환하여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됨을 예언하면서 이로써 옛 것은 지나가고 새 세상, 곧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것을 선언한다. 이 또한 고난과 죽음을 불사한 신약의 메시아 그리스도를 통해 온 인류와 세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서(이사 35,1-10)를 주의 깊게 읽어볼 필요가 있다. 독서의 주제는 하느님께서 친히 오시어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구원이 무엇인가? 구원은 말이 아니라 실재(實在)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백성을 구원하러 오시는 그 때에 소경은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귀가 열리며, 절름발이가 사슴처럼 기뻐 뛰고, 벙어리도 혀가 풀려 노래하며, 사막에 샘이 터지고 황무지에 냇물이 흐른다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 뿐만이 아니다. 그곳에 크고 정결한 길이 환하게 트여, 그 길이 ‘거룩한 길’이라 불린다고 했다. 자, 이제 복음을 보자. 이사야의 예언이 그대로 복음 안에 성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임마누엘 하느님이 세상 안에 계시고 인간과 더불어 계시는데 중풍병자 하나 고치는 것이 뭐 그리 어렵겠는가.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거룩한 길’을 세우는 데 있다. 거룩한 길이란 곧 ‘죄의 용서’를 의미한다. 예수의 반대자들에게는 중풍병자가 단지 치유되어 ‘일어나 걸어가는 것’(24절)에 만족해야 했다. 그들은 메시아의 도래와 현존의 표징을 읽을 수도 없었고, 그에 대한 믿음의 태도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는 자는, 비록 그 믿음이 주위의 도움을 받은 믿음이라 할지라도, 육체의 병을 치유 받았음은 물론, 그 안에 죄사함을 통한 ‘정결하고 거룩한 길’을 닦고 그 길을 걸어가는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되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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