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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위해...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07 조회수1,280 추천수8 반대(0) 신고
 ◎ 2004년12월7일(화) -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 성 암브로시오 (340-397)

 

  암브로시오 성인은 340년경 현 독일의 트리어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당시 로마제국에 속한 갈리아 지방을 다스리던 행정장관 아우렐리우스였고, 어머니는 아주 열심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구전에 의하면 성인이 갓난아기로 요람에 누워있을 때 수백의 벌 떼가 날아와 성인을 헤치지 않고 그 입에 꿀을 떨어뜨리고 갔다한다. 그래서 암브로시오 성인은 후일 벌꿀처럼 달콤한 설교를 하였다는 것이다. 나중에 성인이 손수 지은 “암브로시오 찬가”(Ambrosian Chant)가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가족은 모두 로마로 이사를 했다. 로마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등 여러 분야의 학문을 골고루 겸비한 암브로시오 성인은 저명한 정치가로 커가고 있었다. 성인은 373년 발렌티니아노 황제에 의해 당시 밀라노가 수도였던 북부 이탈리아 지방의 행정장관으로 임명된다. 성인은 정의와 자비로 지방을 다스렸고, 그래서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주님의 섭리는 참으로 묘하다. 374년 당시 이단이었던 아리우스파를 추종하던 밀라노의 주교가 서거하자, 후임주교를 선출하는 자리에 암브로시오는 행정의 수반으로 참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암브로시오가 지목되었고,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그 때 성인은 세례도 받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어머니의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근거로 여러 번 교리를 받기는 했었다. 이에 암브로시오는 세례를 받고, 그 해 12월 7일 주교에 서품되었다.


  성인은 복음의 말씀대로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는 수도자와 같이 청빈과 극기와 헌신과 정열의 생활로 교구를 사목하였다. 성인은 희랍교부들을 연구하여 신학과 성서에 출중함을 보였고, 이를 자신의 라틴적 학식에 접목시켰다. 그는 많은 찬가를 지어 라틴전례에 도입하였다. 성인은 당시 아리우스파에 빠져있던 황후 유스티나를 경계하여 “황후가 교회 안에 있지, 교회 위에 있지 않다.”고 했다. 이렇게 성인은 세속의 권위로부터 교회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옹호하였고 세속 위에 교회를 굳건히 하였다. 그의 설교는 벌처럼 날카로우면서도 꿀과 같이 달콤한 신비주의적이었다. 그래서 성인은 당시 이단과 오류에 빠져 허덕이던 아우구스티누스를 가톨릭 신앙으로 이끌었고, 387년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이는 성인과 영적 친구로 지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어머니 모니카의 소원이기도 했다. 이 사건은 당신 사회를 온통 뒤흔들어 놓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 후 교구의 사목에 열과 정을 다 쏟아 부은 성인은 57세의 일기로 397년 4월 4일 성금요일에 노자성체를 모신 뒤 세상을 떠났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아우구스티노, 히에로니모, 대 레오 교황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신학자였다. 1298년 성인은 교회학자 반열에 올랐다.◆

 

[오늘의 복음]  마태 18,12-14

<하느님께서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12) “너희의 생각은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고 하자. 그 사람은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그대로 둔 채 그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겠느냐? 13)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 양을 찾게 되면 그는 길을 잃지 않은 아흔 아홉 마리 양보다 오히려 그 한 마리 양 때문에 거 기뻐할 것이다. 14) 이와 같이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라도 망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복음산책]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위해...


  제2이사야서(40-55장)가 달리 ‘위로의 책’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 책이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40,1) 하고 시작하기 때문이다. 예언자는 바빌론의 귀양살이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고 예루살렘의 기쁨을 미리 내다본다.(40,9) 유배기간은 그들에게 복역기간이었고, 죄벌을 받는 기간이었으며, ‘잃어버린 기간’이었다. 이제 그 기간이 끝난다.(40,2) 예언자는 외친다. “야훼께서 오신다. 사막에 길을 내어라. 벌판에 큰 길을 훤히 닦아라. 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깎아 내려라. 절벽은 평지를 만들고 비탈진 산골길은 넓혀라.”(40,3-4) 목자가 양떼에게 풀을 뜯기고, 새끼 양들을 두 팔로 안아 가슴에 품으며, 젖먹이 딸린 어미 양을 곱게 몰고 오듯이, 야훼께서 팔을 휘둘러 원수를 정복하시고 승리하신 보람으로 찾은 백성을 친히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오신다는 것이다.(40,10-11)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요르단강으로, 요르단강에서 예수에게로 구원의 길을 닦고 예수를 예언된 메시아요 구원자로 계시하였던 것이다.(마태 3,1-17; 요한 1,35-36) 예수는 곧 100마리 양 중에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목자이시다. 오늘 복음이 바로 이 사실을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마태오복음 18장은 믿음의 공동체에 대한 설교로서, 구성원 상호간의 형제애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담겨있다. 그 주제들을 요약하면, 겸손, 선도(善導), 상호존중, 자비와 용서 등이다. 가르침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어라(1-5절), 작은이들을 죄짓게 하지 말라(6-9절), 작은이들을 업신여기지 말라(10-14), 형제가 죄를 짓거든 바로잡아 주어라(15-18절), 둘이 함께 내 이름으로 청하면 아버지께서 다 이루어주신다(19-20절), 몇 번이고 용서하라(21-22절), 무자비한 종의 비유(23-34절), 그러므로 진심으로 용서하라(35절)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작은이들을 업신여기지 말라.”(10-14절)는 대목에서 ‘길 잃은 한 마리 양의 비유’(12-14절)만 들려준다. ‘길 잃은 양의 비유’는 ‘잃은 은전의 비유’와 ‘잃은 아들의 비유’와 함께 루가복음에서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에 관한 주제로 다루어진다.(루가 15,4-32) 루가는 이 비유를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에도 복음을 전하시고, 그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는 일을 못마땅해 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들려주신 것으로 소개한다. 그러므로 루가의 비유에서 ‘잃은 것’은 세리와 죄인들을 의미하며, 이들의 회개를 ‘다시 찾은 것’에 비유하면서 이 사실을 두고 하늘전체가 기뻐한다는 것이다. 물론 비유의 맥(脈)은 잃은 것에 대한 하느님의 끈질긴 관심과 사랑과 자비이다. 마태오복음에서는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이 공동체에 속해있는 ‘보잘것없는 작은이’에 비유된다. 비유의 결론은 100마리의 양들 중에 아흔 아홉 마리를 그대로 두고 잃은 양 한 마리를 끝까지 가서 찾아내시고 기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본받아 작은이들에 대한 공동체 전체의 각별한 관심과 배려를 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가난하고 보잘것없고 무능한 이들은 교회 밖에서는 물론이고 교회 안에서도 종종 설자리를 잃는다. 이들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예수께서 간절히 권고하시건만, 교회 안에도 늘 업신여김과 차등과 차별이 존재한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세상에 대하여 가난하고 보잘것없고 무능한 자가 되셨다. 얼마 있지 않아 우리는 이 사실을 구유에서 목격하게 될 것이다. 우리 공동체는 다시금 마음을 모아 하느님의 사랑을 배워야 한다. 하느님의 열외(列外) 없는 사랑, 잃은 것, 상한 것, 구석에 있는 것에 대한 끈질기고 인내하는 사랑, 큰 것보다 작은 것에 더 기뻐하는 사랑, 어떠한 질책이나 책임추궁 없이 다시 찾은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사랑을 말이다. 이것이 하느님의 ‘이유와 조건 없는’ 사랑이며, 구원자 예수께서 못난 우리에게 베푸실 사랑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바로 나일 수 있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세상에 오시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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