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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엄마의 단 한 가지 소원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07 조회수1,570 추천수13 반대(0) 신고
 

12월 8일 수요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루가 1장 26-38절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엄마의 단 한 가지 소원>


아이들 자습실에 들렀을 때의 일입니다. 몇몇 아이가 머리를 거의 쥐어뜯으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봤더니, 학교에서 온 기말고사 시험지를 들고 씨름을 하고 있었습니다. 각자 ‘기말고사’를 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너무 많이 학교를 ‘땡땡이’ 친 아이들이었기에, 태어나서 처음 대하는 한자어 앞에서, 난해한 수학공식의 나열 앞에서 당연히 괴로울 수밖에 없었겠지요. 계속 연필을 굴려 답을 적고 있는 한 아이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정성껏 연필을 굴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웃음이 다 나왔습니다. 연필 굴리기에 지친 아이를 도와 저도 몇 번 연필을 굴려줬습니다. ‘아직도 이런 구석기 시대 방법이 통용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또 다른 한 아이는 단 한 문제라도 자기 힘으로 맞춰보겠다고 연필 굴리지 않고 낑낑대고 있었습니다. 안돌아가는 머리 굴리느라 머리 위로 김까지 풀풀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참으로 대견했습니다.


요즘 저희는 아이들과 함께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9일기도를 바치고 있습니다. 하루 일과가 모두 끝나는 저녁 9시, 아이들은 하나 둘 성당으로 몰려듭니다. 수사님들이 정성껏 준비한 9일기도 전례에 얼마나 열심히 참석하는지 모릅니다.


수사님들이 그날그날 아이들에게 건네는 영적 꽃다발(영적인 과제-욕 안하기, 인사 잘하기, 잠자기 전 성모송 3번 하기, 형들에게 ‘개기지’ 않기, 친구나 선생님들에게 기분 좋은 말 세 번 하기 등등)도 얼마나 잘 실천하는지 참으로 예뻐보입니다.


투박하지만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저 단순했던 시골처녀 마리아를 기억합니다. 너무도 평범했던 산골 아가씨, 사심이라곤 티끌만치도 없었던 순수 그 자체였던 마리아를 하느님께서 선택하셨다는 것은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티 없이 맑은 눈망울, 사심 없는 마음의 소유자였던 마리아, 질그릇같이 소박한 마리아의 삶에 직접 개입하십니다. 그 천진난만한 마리아를 당신 구원사업의 가장 큰 도구로 선택하십니다.


마리아의 언행 하나 하나를 따라가 보십시오. 얼마나 단순한지 모릅니다. 조금도 계산적이지 않습니다. 전혀 세상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천사의 알림 앞에,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 조금의 자만심도 우쭐거림도 없습니다. 그저 마음  속에 있는 그대로를 표현합니다-“보잘 것 없는 제게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천사의 설명에 일말의 의심도 없이 순순히 수락합니다-“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을 만큼 엄청나게 올라와버린 우리들, 이미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진 우리들이기에 이토록 하느님 체험이 어려운 것이 아닐까요? 가진 바가 너무 많은 우리들, 너무 많은 잡다한 지식들이 머릿속에 가득 찬 우리들이기에 그분께서 파고들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저희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산골 처녀 마리아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공부에 관심 없어도 좋다. 수학공식이 딸려도 좋다. 남들 다 신경 쓰는 외국어 뒷전이어도 좋다.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라고, 마리아처럼 늘 순수함과 단순성을 잃지 않고, 욕심 부리지 않고 늘 감사하면서 이 한 세상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욕심 부린다면 사회로부터, 부모로부터 받은 아이들의 상처가 저희의 사랑을 통해 빨리 아물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오늘 은혜로운 성모님 축일 한 어머니를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병원 24시’를 통해 알게 된 어머니입니다. 실제 육체적인 나이는 18세이지만 정신 연령이 단 한살 밖에 안 되는 신나라 양의 어머니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나라는 심한 간질증세로 인해 하루에도 몇 번씩 발작증세를 일으킵니다. 나라 부모님의 심성은 천사가 따로 없습니다. 나라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라가 하는 행동은 1살짜리와 똑같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디서든 드러누워 울고불고 떼를 씁니다. 나라의 아빠는 이제 자기 몸집만큼이나 커진 나라를 업고 병원이란 병원은 다 순례하면서도 끝까지 나라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라 부모님의 모습에서 부족한 우리 죄인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자비하신 성모님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라 엄마의 단 한 가지 소원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그리고 자녀들을 향한 우리의 기대치가 조금씩만 낮아지도록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제게 단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나라가 단 한살로 평생 살아도 좋으니 간질증세에서 회복되는 것입니다. 언제 어떻게 발작을 일으킬지 모르니 늘 가슴이 조마조마하지요. 불쌍해서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간질 증세만 낫는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또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지금 나라 정신연령이 한 살인데, 많이도 말고 두 살로 올라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더 이상 욕심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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