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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19) 어머니는 죄 없습니다.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08 조회수857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4년12월8일 수요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ㅡ창세기 3,9-15.20;에페소서1,3-6.11-12;루가1,26-38ㅡ

 

                   어머니는 죄 없습니다.

                                                   이순의

 

 

성모 마리아께서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분이라고 교회는 믿을 교리를 선언하고 있다. 나 또한 성 마리아의 원죄 없이 복되신 분이라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다. 그럼에도 고통을 살으신 분! 모성의 지극함이 갈기갈기 찟기신 분! 신이며 왕이신 아들을 두고도 호강이 아니라 고통을 살으신 분! 그것도 모자라 자식이 어미 앞에서 죽어버리는 험악한 인생의 비참한 여인! 교회가 원죄없이 잉태 했다고 한 들 그분의 삶이 돌이킬 수 있지도 않다. 이미 고통으로 장식된 처절한 운명의 마리아가 아니던가?

 

섬마을에 살을 적에 열다섯 살 소년 신랑에게 열일곱 처녀로 시집을 가서 자식을 아홉 남매를 둔 아짐이 있었다. 큰아들하고 영감님하고 부자간으로 보이지를 않고 형제간으로 보였다. 영감님은 아홉 남매를 먹여살리느라고 열심히 일을 한 탓에 건강하고 탄력이 있는 반면에 큰아들은 술에 쩔어서 맨날 취해 있었으니 아버지께서 더 젊어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부모는 그 아들을 거두면서 열심히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영감님께서 염전으로 소금을 실러 가신다는 것이다. 나도 동네 사람들도 기왕이면 우리 것도 좀 사 오시라고 부탁을 했다. 그렇게 해서 한 경운기가 맞춰졌다. 그런데 소금은 오지 않고 영감님이 경운기 사고로 갑자기 요절을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모두들 뛰어 나가 보았다. 항상 다니던 길이었고 경운기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 사고가 났다. 그때 아짐은 동네가 떠나갈 듯이 곡을 했었다. 어린 소년으로 살아온 동반자가 유언 한마디 없이 요절을 했으니 남은자의 억울함이란 이루 다 형언 할 수가 없었다.

 

모두들 그만 울으라고, 목 쉰다고, 까무러친다고, 말리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소금은 열흘쯤 후에 가서 찾아왔다. 영감님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며 소금을 퍼낼때 마다 감사 드리면서 먹었다. 또 산자는 살게 되어있다. 아홉남매가 있었으니 아짐은 대처로 나간 자식들에게 콩 한 주먹이라도, 쌀 한 톨이라도 더 보내주려고 바쁜 일상을 살았다. 밤에는 술 고래 된 아들을 찾아다가 둡혀야 당신도 입에 밥 한 숫가락 넣고..... 그렇게 시간이 갔다.

 

그런데 한 달이 안 되어 갑자기 그 술 고래 아들이 죽었다. 마을에서는 한 집에 두 번을 이어서 초상을 치르게 되었다. 섬에서는 죽은 사람을 호강을 시켜준다고 상여에 바퀴를 달아서 하루종일 들로 산으로 마을로 돌아 다닌다. 그런데 한 집에 연초상이 났으니 그 비통함과 고단함은 말할 수 없었다. 저승사자가 아들을 데리러 왔다가 잘 못 알고 젊어보이는 아버지를 잡아다가 염라대왕 앞에 놓고 보니 잘 못 데려 왔다고 혼구녕을 맞고 다시 와서 아들을 데려 갔다고도 했고, 아들이나 잡아가지 뭐 하러 멀쩡헌 영감님을 잡아 갔느냐고도 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아짐이 감당할 고통이 감히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멀쩡한 영감님이 유언 한마디 없이 갔다고 그렇게 억울하다고 하시더니 아들을 잃었으니 이 억울함은 또 어찌께 헐끄나? 그런데 자식이 죽었는데 아짐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의연 하였다. 영감님이 죽었을 때는 못 울게 할라고 말리느라고 진을 뺐는데 안울어서 더 이상했다. 너무 이상했다. 오히려 표정도 좋고 늠름한 것이다. 내 마음 속으로 자식이 죽었는데 저럴 수 있을까? 의아해 했다. 너무 술만 먹고 속을 썩여서 시원하신가 보다고 젊은 아낙의 심정으로 짐작을 했다.

 

그런데 일손을 도와 바쁘던 중에 뒤곁으로 돌아갈 심부름이 있어서 한적한 모퉁이를 막 돌려고 하는데 거기서 아짐이 울고 있었다. 영감님 가실적에는 그렇게 동네가 떠나갈 듯이 울더니 아무도 보지 않는 뒤곁에서 흐느끼느라고 눈물을 삼키고 계셨다. 젊은 아낙인 내 눈으로 보아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던 모습보다 더 슬프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아짐을 안아드렸다. 그리고 아재 돌아가실 때 처럼 울으시라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런데 아짐은 가슴이 애려서 고체가 되어버릴 소리를 뱉었다.

 

"나는 챙피해서 못 운다. 영감이 죽는 것은 떳떳해서 울지만 자식 앞세운 년이 세상에 무슨 얼굴을 들고 산다고 곡을 한다냐? 나는 못 운다. 자식 앞세운 죄인이 무슨 염치로 운다냐? 동네 사람들 챙피하다. 자식 앞세우고 어떻게 얼굴을 들고 살은다냐? 불쌍한 내 새끼!"

그 모퉁이에서 젊은 내가 어야태야 울고 말았다. 초상집에 일 거들러 갔다가 내가 일도 못하고 얼마나 얼마나 울었다. 자식은 그 죽음 조차도 어미에게 고통인 것이다. 아무리 술을 먹고 개망나니로 살았어도,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저놈이 죽고 영감님이 살아 있어야 한다고 해도 어머니는 영감은 죽어도 자식은 살아있어야 한다. (다시 그 때 생각 나서 눈물이 비가 와뿌린당께요. 흐흐흑!)

 

그런데 무염시태의 어머니 마리아라고 해도 그 고통이 어째부렀것는가?

마리아 처럼 어머니는 자식을 조건없이 허락한다. 인물이 어떨지? 태어나서 내 속을 얼마나 썩힐지? 늙으면 나를 얼마나 구박할지? 심지어 십자가에 못난이로 죽을지 따지지 않고 그냥 낳는다. 그 탄생의 기쁨이 먼저고 고통은 나중이다. 그게 엄마다.

 

나는 홀 시어머니에 홀 친정어머니가 계신다.

친정 어머니야 오라버님이 나 보다 훨씬 많이 든든 하시고 올케언니가 잘 하셔서 아예 담을 쌓고 산다. 친정 어머니는 야속해 하시지만 내 삶이 그것 뿐이라서 친정 어머니쪽은 선택에서 제외 시켜 놓았다.

내 시어머니는 분명히 친정 어머니와 비교도 안되시는 분이다. 나쁘게 말 하면 무능의 극치라고 할 수 있고 좋게 말 하면 불쌍함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출발은 내 친정 부모님들 보다 더 나은 출발을 하신 것 같다. 친정 아버지께서 유년에 부모잃고 형님 밑에서 떨어져 나온 반면에 시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그래도 소작농은 하신 것 같으니 시어머니의 출발이 친정 어머니의 출발 보다는 나았으리라고 짐작을 해 본다.

 

간혹 나는 두 어머니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나의 존재를 생각해 본다.

친정어머니께는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불효자고, 시어머니께는 해 드리면 서도 불효자가 나다. 효부란 무엇인가? 자신이 진짜 효부라고 자청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딸로 며느리로 살아오면서 느끼는 것은 효부란 가슴으로 죄가 많을 것이다고 생각했다. 내 친정어머니는 고구마 한 꼬쟁이로 끼니를 때우며 5남매를 가르쳐 놓으셨다.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 만큼을 부모가 가르쳐 준 은헤만으로도 어머니께 우리 5남매는 어떠한 불평도 요구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나의 척박한 운명 탓을 늙으신 어머니께 혹시라도 뱉어 버릴까봐 친정어머니와는 멀리하고 산다.

 

대조적으로 시어머니는 사회가 요구하는 기본은 커녕 어느 자식도 책임을 지지 못 하고 그냥 밥만 먹고 살아오신 분이시다.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하는 운명들! 큰며느리를 본다고 무국 한 그릇도 끓이지 않았고, 가락지 하나도 마련하지 않았고, 아기를 낳아서 온다고 해도 미역국 한 그릇을 끓이지도 않았다. 어머니의 무지한 몫을 동서들에게 그대로는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단지 먼저 시집 온 죄로 며느리인 내 허리가 휘고 골병이 들어야 했던 분이시다. 그리고 두 어머니는 늙으셨다. 아들을 잘 두신 친정어머니는 회갑도 지냈고 칠순도 지냈다. 아들을 잘 못 둔 시어머니는 회갑때는 내 손으로 상차려서 밥은 해 드렸다. 물론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금패물도 해 드렸다. 그러나 잔치를 못 했다. 어머니의 큰아들 짝궁이 동생들이 어렵다고 못 하게 했다. 동생들도 어머니 회갑하자는 동생이 없었다. 그래서 나 혼자 마련한 잔치로 끝났다.

 

칠순은 작년이었다. 잔치를 하기로 했다. 어머니께서 거절 했다. 불상 시동생(나에게는 거지 시작은 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싫다고 거절 하셨다. 그래서 못 했다. 그렇다면 요즘말로 저런 시댁 구조에 살아주는 것만도 나는 영웅이 되어야 한다. 저런 며느리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시댁식구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나도 마음은 왜 이렇게 괴로운가? 왜 이렇게도 힘이든가? 어서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변변한 집이라도 이사를 하려는데 뜻대로 되는 것은 없고, 생활비를 드려도 누구를 주려고 안쓰시고 마르시는지? 잡술 것을 해다 드려도 혼자 드실 고적함이 가슴이 쓰리고...... 어머니가 나에게 해 준 것이 없다. 진짜로 없다. 남편을 가르쳐 주었는가? 동생들을 짐으로 주지를 않았는가? 일생에 한 번 뿐일 밥 한 그릇을 국도 없이 김치에 주신 어머니가 아니던가? 살아올 수록 짐이셨던 어머니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어머니 때문에 요즘은 가슴이 너무 아프다. 지금쯤은 평수 큰 아파트에 침대는 못 놓아드려도 작은 방에라도 솜요라도 깔아드릴 공간이 있어야 하지를 않는가? 자식은 내 품에 품고 사는데 어머니는 같이 살 수 없는 현실! 그렇다고 자식을 팽개칠 수는 더욱 없지를 않는가?! 그것이 내 가슴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모른다. 내가 더 고통스러운 것은 내가 아무리 어려워도 내 자식은 이렇게 살뜰히 살리는데(자식놈은 부족한게 더 많다고 하겠지만!) 어머니께는 그 몇 %도 못해 드린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부모가 가진 재산만 뺏고 부모를 우숩게 아는 자식도 많다고 들었다. 부모가 가르쳐주고 장가보내주고 했어도 해 준 것이 뭐냐고 하는 자식도 많다고 들었다. 짝궁은 단 한 번도 어머니께 그런 마음을 가진적이 없는 아들이다.

 

나는 요즘 어떤 사람이 효부일까? 생각해 본다. 진짜 효부란 자기 마음 가운데 죄책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자식에게 하는 것과 어머니께 하는 것을 비교하면 한 없이 한 없이 내 자신이 불효 막심한 며느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을 향해 누군가에게 물어 보고 싶은 말이 떠 오를 때가 있다.

"내가 어머니께 잘한다고 생각합니까? 못 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런데 이 말은 내 양심의 죄책감에서 빚어진 의문일 뿐, 감히 말이 되어 세상에 존재 해서는 안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양심이 이미 답을 알고 있는데 그 답을 남에게 구한다는 것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질문이 될 것 같다. 나는 내 시모님께 내 자식에게 하는 것의 어느 만큼도 따르지 못 하고 있기에 나는 세상을 향해 이런 질문을 할 수 없다.

 

오늘은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축일이다.

어머니인 모든 분들도 성모님처럼 죄 없다고 알려드리고 싶다.

 

자식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 보아야 제 자식한테나 잘난 것이지 어머니한테 까지 잘난 자식은 없을 것이다. 어머니 한테 잘 났다고 하는 자식은 스스로 원죄와 본죄 뿐만 아니라 억겁의 죄를 부르는 짓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분명히 내 시모님의 몫은 친정어머니의 몫보다 형편이 없다. 그래서 말년조차 자식과 살지 못하고 폐지를 줍는다. 그래도 친정 어머니보다 시모님의 어머니됨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분명히 지금도 어떤 어머니는 나 보다 훨씬 많은 것을 제 자식에게 주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어머니보다 내 사랑이 내 자식에게 덜 간다는 말은 절대로 하기 싫다. 내가 내 자식에게 주는 또 다른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내 자식에게나 내가 훌륭할지는 모르나 또 내 자식이 늙어진 후에 인정해 줄지 말지는 모르나 나도 어머니에게는 절대로 훌륭할 수 없는 자식이다. 스스로 어머니께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억겁의 죄인지 모른다. 그래서 세상이 말하는 효부란 우리네 무지랭이같은 자식보다 가슴이 갈기갈기 찟어져 산발한 상처뿐일거 같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죄 없습니다.

자식들이여! 

아무리 잘나 봤자 제 자식한테나 잘났지 어머니께 잘난척 하지 맙시다.

어머니!

이 불효한 며느리를 용서 하소서! 불쌍한 우리 어머니!

 

ㅡ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1,38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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