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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하느님나라 놀이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09 조회수1,148 추천수9 반대(0) 신고
 ◎ 2004년12월10일(금) - 대림 제2주간 금요일

    

[오늘의 복음]  마태 11,16-19

<그들은 요한의 말도 사람의 아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


  16)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길 수 있으랴? 마치 장터에서 아이들이 편 갈라 앉아 서로 소리 지르며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았다.’ 하며 노는 것과 같구나. 18) 요한이 나타나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니까 ‘저 사람은 미쳤다.’ 하더니 19)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까 ‘보아라, 저 사람은 즐겨 먹고 마시며 세리와 죄인하고만 어울리는구나.’ 하고 말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은 이미 나타난 결과로 알 수 있다.”◆


[복음산책]  하느님나라 놀이


  세례자 요한의 선구자적 역할과 메시아의 실제적 도래로 말미암아 이 땅위에 하느님나라가 시작되었다. 세례자 요한을 끝으로 더 이상의 메시아에 관한 예언은 있을 수 없다.(13절) 이미 이 세상에 메시아가 도래했고 하느님나라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자기 안에 도래한 하느님나라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의적으로 이를 배척하고 거부하고 있다. 하느님나라에 대한 고의적인 배척과 거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이미 역사 안에 사실로 드러났다. 이사야 예언자는 외친다. “주님인 내가 너의 하느님이다. 네가 잘 되도록 가르치는 너의 스승이요. 네가 걸어야 할 길로 인도하는 너의 길잡이다. 네가 만일 나의 명령을 마음에 두었더라면, 너의 평화는 강물처럼 넘쳐흐르고, 너의 정의는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으리라.”(이사 48,17b-18) 결국 이스라엘은 주님이신 스승을 외면하고 엉뚱한 길을 걸어갔고, 이스라엘의 바빌론 유배가 그 결과였던 것이다. 예수님 시대 사람들도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예수께서는 이러한 그들의 태도를 ‘잔치놀이’와 ‘장례놀이’에 함께 하지 않는 아이들에 비유하신다.

 

  예수께서는 선구자인 세례자 요한과 메시아이신 당신을 받아들여 이 땅위에 도래한 하느님나라를 깨닫고 이를 향하여 자신의 삶을 질서 지우는 태도를 ‘하느님나라 놀이’에 함께 노는 것으로 비유하신다. 장터에서 놀이하는 아이들의 비유에서 ‘피리와 춤’은 잔치놀이를, ‘곡과 울음’은 장례놀이를 의미한다.(15절) 그런데 편을 갈라 앉은 아이들이 서로 다른 편의 놀이에 같이 놀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놀이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다. 잔치놀이에는 술과 음식, 춤과 여흥이 필요하고, 장례놀이에는 금욕과 절제, 울음과 긴장이 필요하다. 따라서 장례놀이는 회개와 참회의 세례를 선포했던 금욕주의자 요한에 비유되고, 잔치놀이는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기뻐하고 식음(食飮)하시는 예수님에 비유되고 있다.


  ‘하느님나라 놀이’에 함께 놀아주지 않는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은 장터에서 편 갈라 앉은 아이들보다 더 나쁘다. 그들은 놀이를 함께 하지 않고 구경만 할뿐 아니라 놀이를 주관하는 주체를 야유하고 비난하여, 세례자 요한더러는 ‘미쳤다’(18절)고 하고, 예수를 두고는 ‘세리와 죄인들하고만 어울린다.’(19절)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 하느님의 지혜가 있다. 하느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은 이미 도래한 하느님나라에 의해 밝혀지겠지만 당장은 이 세대의 눈에 가려져 있음이 안타까운 것이다.


  하느님의 지혜는 스스로 자신을 찬미하고, 군중 속에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낸다. 하느님의 지혜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입으로부터 나왔으며, 안개와 같이 온 땅을 뒤덮었다. 하느님의 지혜는 높은 하늘을 두루 다니고, 심연의 밑바닥을 거닐면서 온 땅과 모든 민족과 나라를 지배하였다. 하느님의 지혜는 이 모든 것들 틈에서 안식처를 구했으며 어떤 곳에 정착할까 하고 찾아다녔다.(집회 24,1-7 참조) 하느님의 지혜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의 마음 안에 안식처를 구하여 정착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안에 먼저 하느님의 지혜가 잉태되어야 한다. 이 지혜가 시대의 징표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준다. 어느 때에 잔치놀이를 하여야하고, 또 어느 때에 장례놀이를 하여야하는지를 말이다. 그래서 주님의 성탄은 매년 오는 것이다. 내 안에 하느님의 지혜가 탄생할 때까지 말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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