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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믿음과 불신의 대결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10 조회수918 추천수9 반대(0) 신고
 

◎ 2004년12월11일(토) - 대림 제2주간 토요일

[오늘의 복음]  마태 17,10-13

<엘리야는 벌써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10) 그 때에 제자들이 “율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고 물었다. 11) 예수께서는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준비를 갖추어 놓을 것이다. 12) 그런데 실상 엘리야는 벌써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사람의 아들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13) 그제야 비로소 제자들은 이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복음산책]  믿음과 불신의 대결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높은 산으로 데려가 자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체험하게 한 뒤(마태 17,1-9) 산을 내려오면서 제자들과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이다. 대화내용의 핵심은 물론 엘리야와 메시아, 세례자 요한과 예수와의 관계이다. 대화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는 제자들에게 요한과 예수님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염두에 두어야 할 내용은 지난 목요일의 복음이다.(마태 11,11-15) 예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두고 모든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하셨고, 말라기 예언자가 특정한 때에 올 것으로 예언한 ‘특사’와 ‘엘리야’가 바로 세례자 요한임을 증언하셨다.


  말라기 예언자는 “보아라, 나 이제 특사를 보내어 나의 행차 길을 닦으리라”(말라 3,1), 그리고 “야훼가 나타날 날, 그 무서운 날을 앞두고 내가 틀림없이 예언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낸다.”(말라 3,23)고 하였다. 실제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메시아가 오기 직전에 그 길을 닦을 야훼의 특사가 먼저 올 것이며, 세상 종말에 야훼의 심판이 있기 전에 불수레를 타고 승천했던(2열왕 2,11) 엘리야가 다시 와서 이스라엘의 화해와 재건을 도모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이 부분은 오늘 독서의 집회서(집회 48,1-4.9-11)가 재삼 확인하고 있다. ‘집회서’는 이를 성서로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들에 대한 반대 입장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집회서는 기원전 132년경 예수 벤 시라에 의해 집필된 책으로서 자기 손자를 위해 희랍어로 번역해 둔 덕분에 우리에게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벤 시라는 역사적 인물들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난 것을 찬양하면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여호수아, 판관들, 다윗, 솔로몬 등 역대 선조들을 열거하는 가운데 기원전 850년경 북왕조에서 활동했던 엘리야와 엘리사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벤 시라는 불마차를 타고 불 소용돌이 속 하늘로 올라갔던 엘리야가 주님의 심판 날에 다시 와서, 하느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 분노의 불을 끄고 아비들의 마음을 자식에게로 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하면서, 재림하는 엘리야를 볼 수 있고 그와 사랑으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을 노래하고 있다.(집회 48,9-11)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야훼의 종말심판은 메시아에 의한 새로운 세상의 개벽(開闢)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예언이 세례자 요한과 메시아이신 자신을 통하여 이루어졌음을 선포하고 계시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이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에 대한 단순한 불신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예수의 제자들도 세례자 요한의 정체성에 대하여 정확한 지식을 갖지 못하고 있다.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이 볼 때,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사명, 즉 이스라엘의 화해와 재건도모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 채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 참수된 까닭에 ‘재림한 엘리야’가 될 수 없고, 따라서 메시아의 도래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예수가 메시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제자들의 의심은 예수님의 증언에 의해 차차 풀려가지만, 정작 해답은 예수님의 수난 예고 속에 들어 있다. 사람의 아들도 세례자 요한과 같은 대접을 받아 고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세 차례나 계속되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예고를 통하여 제자들은 차츰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참된 정체를 깨달아 간다. 이제 선구자와 메시아에 대한 제자들의 수용과 믿음은 바리사이와 율사들의 배척과 불신의 대결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허락된 은총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도 얻지 못하고, 그분의 부활 후에야 얻었던 믿음을 예수님 성탄의 구유에서 앞당겨 갖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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