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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20) 보물 성탄카드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11 조회수1,302 추천수7 반대(0) 신고

2004년12월11일 대림 제2주간 토요일 성 다마소 1세 교황 기념ㅡ 집회서48,1-4.9-11;마태오17,10-13ㅡ

 

       보물 성탄카드

                            이순의

 

 

요즈음 근사할 것도 없는 성탄카드에 색칠을 하고 있다.

예전처럼 두꺼운 도화지를 오려서 접고 안에 속지를 넣어 글을 쓰는 그런 카드는 아니다. 컴퓨터 프린터용 A4지에 그림을 그리고 메세지를 컴퓨터로 쓴다. 유명한 악필이다 보니 늘 그 고약한 필체 때문에 홀대를 받는 카드 보다는 컴퓨터로 글을 쓴다는 것은 너무 기쁜일이다. 그런데 매년 성탄때마다 꺼내서 보는 한 뭉치의 카드가 있다.

 

우리 집의 좁은 공간에는 보따리 봉투가 쌓이고 쌓여 있다. 습작도 있고, 스크랩도 있고, 각종 그림과 포스터들 그리고 받은 편지들과 카드도 있다. 그 중에 해 마다 꺼내보는 한 뭉치의 봉지가 있다. 섬에 살을 적에 공소에서 성탄을 지내고 주일학생들에게 받은 카드들이다. 아무 것도 없는 섬마을의 공소는 교회가 제시하는 어떠한 자료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시위주의 사목자료이거나 학생 수가 제법 있는 본당차원의 대안들이기 때문이다. 

 

한 학년에 두세 명도 되지 않는 섬마을! 그것도 유치원생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현격한 연령대를 구성하고 있는 주일학교! 초등부 저학년으로 맞출 수도 없고, 고학년으로 맞출 수도 없다. 학생 수가 너무 적거나 남매나 자매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먼 길을 걸어서 같이 다녀야 안전하기도 하고 덜 심심하기 때문에 따로따로 주일학교에 올 수가 없다. 그래서 중등부와 초등부로만 나누어서 주일학교를 열었다. 

 

그러다 보니 9월부터 성탄 준비를 했었다. 실정과 연령에 맞게 연극 대본을 쓰는 것으로 시작을 한다. 한 명도 빠지지 않고 공소의 생활에 맞는 내용으로 작업을 했다. ㅡ성탄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있을 때 하기로 하고ㅡ 성탄이 끝난 뒤로 나는 아이들에게 감사와 축하를 전하는 카드를 받았다. 변변한 상점이 없는 섬마을에서 모두들 정성들여 만들어준 카드들이다. 이 모두를 나는 해마다 대림시기가 오면 꺼내서 만저보고 읽어보고 추억을 삼는다. 그 중에 아주 특이한 카드 하나를 소개 하기로 한다.

 

12월 한 달 짜리 달력이다. 머리에 뿔 달린 루돌프 사슴이 아니라 뿔도 달리고 코도 빨간데 곰돌이다. 알몸뗑이의 곰돌이가 12월 한 달 안에서 설흔 한 가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을 볼펜으로 그려서 미술시간에 쓰는 물감과 색연필을 이용해서 최대한으로 정성을 들여 색칠을 했다. 그리고 겉에 표지에는 커다란 사각의 하얀 표지판 주위에 18마리의 뿔달리고 빨간코의 곰돌이들이 각각의 재미있는 얼굴을 하고 서 있거나 붙어있다. 그런데 그 표지판에는 아무 말도 써지지 않고 바탕이 그대로이다. 지금도 카드를 보면 Merry Christmas 라고 쓰려다가 그만 두었는지 아니면 축 성탄이라고 쓰려다가 아까워서 그냥 두었는지 궁금한 마음으로 하얀 벽판을 바라 본다.

 

카드를 열면 맨 위에 영어로 요일이 적혀있다. 그리고 요일 밑으로 일요일 부터 1일이 시작 되었다. 그러니까 이 카드는 받는 사람의 달에 맞춰서 날자가 있지 않다. 그 일요일이 1일인 12월치 달력이다. 그리고 날자 위에는 벌거숭이 빨간뿔이 달린 빨간코의 곰돌이가 있다.

 

1일 벌거숭이 곰- 왼손 내리고 오른 손 들고, 하얀 이가 드러나 어설프게 입을 벌리고, 마치 아침 기상을 졸리운 얼굴로 알리는 표정이다. 너무 귀엽다. 주황색 장화를 신었다. 

 

2일 벌거숭이 곰- 짙은 검정색 나비 안경을 쓰고 써핑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달려간다. 입과 발에는 헉헉 달리는 뭉개표시가 있다. 발은 맨발이다. 세련미가 좔좔 흐른다.

 

3일 벌거숭이 곰- 주황색 비키니를 입은 여자 곰돌이가 동그라미 검정 썬그라스를 썼다. 왼손은 입에 대고 수줍어하고 오른 손에는 투명 튜브를 들었다. 한 발은 섹시하게 벌리고 섰다. 맨발이다.

 

4일 5일 6일은 못난이 3형제의 벌거숭이 곰 얼굴이다. 나체의 몸매에 4일 벌거숭이 곰은 눈이 탱글탱글하고 볼에 달팽이가 그려져 있다. 웃음이 날 만큼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신발은 검정색 장화를 신고 한 발을 들어 요망스럽게 앞꿈치를 세웠다.

 

5일 벌거숭이 곰은 볼에 줄무늬가 있고 이마가 살짝 찡그려져 있다. 역시 검정색 장화를 신었다.

 

6일 벌거숭이 곰은 입과 이마에 꼬부랑이로 신경질을 그려 놓았다. 입술이 쪼다 같이 찌그러져 있다. 발에는 연두색 장화를 신었으나 왼발은 발길질을 심하게 표현을 해서 보기에도 신경질이 난다.

 

7일 벌거숭이 곰에는 구리빛 몸통이 잘 어울리는 테니스체와 공을 가졌는데 공을 머리 위로 올려서 공중에 떠 있고 오른 손은 그 공을 받으려고 한다. 왼손은 준비 자세로 체를 들었다. 장화는 구리빛 피부와 어울리는 빨강색 장화를 신었다.

 

8일 벌거숭이 곰- 가수 전인권이나 윤도현 같은 폼이다. 입이 하얀색으로 쫙 찢어져 있는데 얼굴의 반 만큼 찟어져 전자기타 반주를 하고 있다. 치고있는 기타의 색깔은 하늘색이다. 그런데 너무 열심히 연주를 해서인지는 모르나 기타의 줄 감는 머리부분이 빠지직 하고 동강이 나있다. 그 느낌이 더 강렬하다. 주황색 장화를 신었다.

 

9일 벌거숭이 곰- 역시 하얀 입을 얼굴의 반 만큼 찟어지게 벌렸는데 가랑이도 그만큼 벌렸다. 손에는 예쁜 연두색 장미꽃 다발이 들려있고 마치 전인권 오빠나 윤도현 오빠 한테 미친 곰순이 같다. 이 카드 전체에서 유일하게 빨강색 하이힐 구두를 신었다.

 

10일 벌거숭이 곰- 몸에 얼룩이 묻어있고 오른손은 허리를 짚어서 비장하고, 왼손에는 짙은 파랑색의 삽이 세워져 버티고 있다. 옆에는 성탄 트리용 전나무인지 소나무인지가 서 있다. 검정색 장화를 신었다. 몹시 단단한 정원사의 인상이다.

 

11일 벌거숭이 곰- 빨강 산타 모자를 쓰고 빨강 산타 목도리를 두른 곰돌이 눈사람이 있고 하늘에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다. 숯검뎅이 눈썹에 숯검뎅이 코에 숯검뎅이 입술이다.

 

12일벌거숭이 곰- 뒤로 돌아서 엉덩이를 보이고 얼굴은 돌아 본다. 입이 댓발이나 나와서 눈동자는 바라보는 나를 훔쳐보고 있다. 오줌을 싸서 그 오줌 줄이 18일의 곰돌이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다. 발은 연두색 장화인데 깨금발을 하고 있다. 너무 얄궂은 표정이다.

 

13일벌거숭이 곰- 오른쪽 눈텡이를 누구에게 맞았는지 푸른 멍이 들었다. 바닥에 털퍽하니 가랭이를 있는대로 벌리고 앉아 있는데 사지육신은 붕대로 칭칭 감고 있다. 표정은 불상해서 못 볼 지경이다.

 

14일벌거숭이 곰- 여닫이용 창문을 열고 쥴리엣 처럼 밖을 내다보고 있다. 온통 얼굴이 불덩이 처럼 붉고 창문 위로 사랑의 하트그림이 피어 오르고 있다. 몹시 행복하다.

 

15일 벌거숭이 곰- 빨간 리본을 매고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허리에는 빨간 벨트를 차고 장화에도 빨간 줄이 있다. 표정은 심각한데 몸은 살짝 옆으로 꼬고 서있다. 오른 손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제일 이해하기 힘든 그림이다.)

 

16일 벌거숭이 곰- 입은 빨갛게 옆으로 쫚 찢어져 있고 오른 손은 허리에 걸쳐져 있다. 왼손은 벌려서 마치 "어서옵쇼~!"하는 것 같다. 들어 가고 싶으다.

 

17일 벌거숭이 곰- 두 손을 턱 밑에 합장을 하고 혓바닥을 메롱 하고 내밀며 눈썹은 양쪽으로 처져서 순둥이 처럼 웃는다. 허리 밑으로 골반 부분이 엄청 부풀어있고 뒤로 뭉개 표시가 있다. 그 아래로 뿡 이라고 써져 있다 구두는 빨강색이고 아마 수줍은 방구쟁이 곰순이 같다. 히히히~~!

 

18일 벌거숭이 곰- 수요일인데  12일 목요일이란 놈이 자기 머리에 오줌을 갈겨서 주황색 바탕에 빨강색 물방울 무늬의 우산을 그쪽으로 받쳐 들고 오만 인상을 다 찡그리고 씩씩 거리고 있다. 우산과 셑트인 주황색 장화를 신었는데 그 오줌을 피하는 지혜가 탁월하다. 이그~! 더러워!

 

19일 벌거숭이 곰- 이빨에 십자 표시가 많다. 목에는 빨강색 수건을 둘렀는데 마치 아침 달리기를 하는 것 같다. 같이 달리던 사람들이 몽땅 먼저 달려가 버려서 안절부절한 엉거주춤 몸매에 황당한 표정을 하고 있다. 약오른 표정이다. 유일하게 운동화를 신었다.

 

20일 벌거숭이 곰- 목욕탕 안에서 때를 미는 것이 아니고 탕에 수건을 걸쳐 놓고 턱을 고인체로 완전히 골아 떨어졌다. 머리 위로 Z표시가 세 개나 있다. 코에는 콧물이 댓발이나 흘러나와 숨을 쉴때마다 풍선이 되는 그림이다. 기가 막힌 표현력이다.

 

21일 벌거숭이 곰- 짙은 갈색 피부의 흑인 천사가 머리에는 리본을 어깨에는 날개를 달고 뒤돌아 서 있다.수건을 받치고 골아 떨어진 20일 친구의 얼굴에 낙서를 한다. 너무나 표정이 고소하다. 히히히~!

 

22일 벌거숭이 곰- 바닥에 오줌이 흥건하고 그 우줌물 위에 질퍽하니 다리 뻗고 앉아서 입을 있는 대로 벌리고 운다. 머리에는 별이 떠서 꼭지가 팽글팽글 돌고 있다. 어짜까잉?

 

23일 벌거숭이 곰- 외꾸눈이 카우보이가 오른 쪽 눈은 후크 선장처럼 가리고 오른 손에는 권총을 들고 하늘을 향해 공포탄을 한 방 쐈다. 얼굴에는 문신 같은 흉터가 있고 입술은 사정없이 삐뚤어져 험상궂게 생겼다. 왼손에는 탄창이 들려있고 검정색 장화를 신었다. 지가 무슨 서부의 무법자라고? 크크크!

 

24일 벌거숭이 곰- 아주 점쟎고 바르게 서서 깃대를 들고 서 있다. 하늘색 장화를 신었다. 깃대에는 연두색 바탕에 빨강 정체로 MERRY' MAS 라고 써져있다.

 

25일은 하이라이트다. 이 그림에서 유일하게 옷을 입은 곰돌이인데 산타다. 다른 종이에 산타를 그려서 빨강색 칠을 했다. 오려서 위쪽 가장자리에는 <나 없는 12월은 앙코 없는 호빵이다.> 라고 둥근 지붕 모양으로 써져 있다. 산타는 손과 발 모두를 쫙 벌리고 있는데 표정은 더 만족스럽다. 그리고 모나미 볼펜 심지에 들어있는 스프링을 빼서 반도막으로 잘라서 본드로 붙였는데 종이라서 약하니까 스카치 테잎으로 종이를 단단하게 만든 다음에 강력 본드를 칠 한 것 같다. 그래서 이 카드를 펴면 산타 곰돌이가 흔들흔들 움직이는 기막힌 멋이 있다.  

 

26일 벌거숭이 곰- 산타한테 선물 받으려고 걸어두는 양말이있다. 주항색 바탕에 뒤꿈치와 앞볼에 연두색을 대서 꼬맨자국이 더 화려한 커다란 양말이다. 그런데 그 속에 선물을 찾다가 실망한 표정의 곰돌이가 들어가 양말 목에 두 손을 걸쳐 턱을 고이고 고개를 내밀고 있다. 너무 귀엽다.

 

27일 벌거숭이 곰- 방구 냄새를 맡기 싫다고 뒤돌아서 도망을 가는 곰돌이다. 뭐라고 욕하는 표정에 눈도 감아 버렸다. 왼손으로 콧구멍도 막았다. 주황색 장화를 신었다.

 

28일 벌거숭이 곰- 17일에 수줍게 방구를 끼는 아가씨와는 대조적으로 27일 친구에게 엉덩이를 두르고 손도 흔들면서 냄새야 퍼져라 하는 동작을 하고 있다. 온 몸은 힘을 주어서 풍선 같고 붉은 색이 연연하다. 고소해서 재미있어서 어쩔줄 모르는 표정이다. 하하하하! 하늘색 장화를 신었다.

 

29일 벌거숭이 곰- 열중 쉬었 자세다. 토끼처럼 앞에 떡니 두개가 꼭 다문 입술 위로 나와있다. 상당히 꺼벙하다. 주황색 장화를 반듯하게 신었다.

 

30일 벌거숭이 곰- 두 손을 배 앞으로 모으고 다리는 조금 벌리고 온 몸에 힘을 실었다. 입은 쩍 벌리고 노래를 한다. 음표가 곱게 그려져 있다. 마지막 휘날래인지도 모른다. 주황색 장화를 신었다.

 

31일 벌거숭이 곰- 그동안의 수고가 아쉬웠을까? 두 손을 목 뒤로 모아서 아쉬움을 달래지 못하는 표정이다. 하늘색 장화를 신었다. 나도 아쉽다.

 

그리고 맨 아래에 영어로 MEMO 라고 써져 있고 노랑색 초승달이 그 글씨를 떠 받치고 있다. 메모는 다음과 같이 써져있다.

 

선생님;

그동안 즐거웠어요.

고마운 적도 많이 있었고

목포 가면 선생님이 그리워 질거예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몸 건강하세요.

가끔 연락 드릴께요.

 

P.S 이 카드요 3년 전부터 만든거라 달력이 안 맞죠?

     꼭 몸 건강하세요. ㅡ선ㅡ

 

요 몇일 카드에 색칠을 하다가 또 그 때 그 뭉치를 꺼내 보았다.

주님으로 인해 얻은 고결한 추억이다.

그래도 나는 어른이 되어있을 그 친구들에게 안부 인사를 전하지 못한다.

그 중에 한 친구를가 이 하늘 아래서 숨을 쉬지 않기 때문이다.

그 친구들 모두에게 카드를 보낸다.

마음으로 그리는 카드를!

 

ㅡ당신을 본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하며, 당신과 사랑으로 맺어진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합니까?집회서 48,11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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