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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감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의 갈등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12 조회수1,337 추천수7 반대(0) 신고
 

◎ 2004년12월12일(일) - 대림 제3주일 (가해)

▣ 자선주일


[오늘의 복음]  마태 11,2-11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2) 그런데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3)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하고 묻게 하였다. 4)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5)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하여진다. 6)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 7) 요한의 제자들이 물러 간 뒤에 예수께서 군중에게 요한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은 왕궁에 있다. 9) 그렇다면 너희는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그런데 사실은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보았다. 성서에, 10) ‘너보다 앞서 내 사자를 보내니 그가 네 갈 길을 미리 닦아 놓으리라.’ 하신 말씀은 바로 이 사람을 가리킨 것이다. 11)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일찍이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이라도 그 사람보다는 크다.”◆


[복음산책]  감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의 갈등


  대림환의 세 번째 촛불이 환히 타올랐다. 대림환에 꽂혀있는 분홍색 초에 불을 붙인 것이다. 대림환을 자세히 살펴보면 네 개의 초 가운데 두 개는 보라색, 하나는 분홍색, 나머지 하나는 흰색이다. 오늘 대림 제3주일에 기쁨을 상징하는 분홍색 초를 켠 이유는 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라 대림 제3주일을 “가우데떼”(Gaudete, 기뻐하여라) 주일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이 명칭은 오늘 미사의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으니, 주님과 함께 언제나 기뻐하여라.”(필립 4,4-5)라는 입당송에서 따온 것으로서 성탄의 기쁨을 미리 맛보자는 전례적 의도와 배려에서 기인한다. 사제는 오늘 자주색 제의 대신에 장미색 제의를 입고 미사를 봉헌함으로써 ‘가우데떼’의 전례적 의미를 살릴 수도 있다.


  오늘 복음은 기뻐하라는 ‘가우데떼 주일’의 전례적 의미와는 달리 다소 무겁게 시작한다. 시커먼 벽에 촘촘한 창살과 어둡고 칙칙한 공간, 사해 동쪽 마캐루스 요새의 감옥에 세례자 요한이 갇혀있다.(플라비우스, 유대고사 18,116-119)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과 자유, 자기 삶의 모든 것을 광야에 쏟아 부은 사람, 오직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태어난 사람, 세례자 요한이 이제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된 것이다. 아무도 그를 구해주지 않고, 하늘나라가 도래한 표징도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감옥은 광야에서만큼 생각하기에 좋은 곳이다. 감옥은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꿈꾸며, 질문을 던지고 의문도 가질 수 있는 곳이다. 메시아를 위한 선구자로서 그 길을 닦고 밝히며, 회개의 설교와 세례를 베풀던 일이 다 무엇인가? 감옥이라는 거동의 제한을 받는 공간에서 세례자 요한은 자기 제자들을 시켜 예수께 반신반의(半信半疑)의 질문을 던진다.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3절) 우리는 선구자의 의심과 의문을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 또한 삶의 기로에서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또 선택한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의문을 던지며 의심을 품는가? 이것일까, 아니면 저것일까 하는 갈등 말이다.


  세례자 요한만큼 그 제자들도 의심과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3절) 이 질문은 우선 세례자 요한의 질문이었고, 동시에 그 제자들의 질문이며, 나아가 이스라엘 전체의 질문이며, 오늘날 현대인의 질문이기도 하다. 질문이 이렀다면 대답은 통상 “맞다-아니다”라는 둘 중 하나다. 그러나 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그런 모양이 아니다.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4절)는 것이다. 그들이 예수에게서 본 것이 무엇인가? 그들은 자기들 눈으로 마귀 들린 사람들이 멀쩡해지고 소경이 보고 벙어리가 말을 하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이 전하여지는 것을 보지 않았는가.(이사 29,18; 36,5-6; 61,1 참조) 예수님의 참된 대답은 곧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6절)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본 대로 생각하고, 배운 대로 행동한다.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는 각자 자신의 몫이다. 도래한 메시아에 대한 불신과 믿음은 강요되거나 한 마디의 대답 속에 들어 있지 않다. 각자 스스로가 결단해야 함이다. 


  한국교회는 1984년부터 오늘 대림 제3주일을 자선주일로 정하여 모든 신자들이 자신의 가진 바를 나눔으로써 구세주의 탄생을 준비하고 또한 이로써 기쁨의 성탄이 되기를 촉구한다. 우리는 자신의 전 생애와 마지막 목숨까지도 우리 인간에게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성체성사의 신비를 깊이 깨닫고, 가난한 이를 위해 서로 나누자는 자선의 종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요즘 조국의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어려운 이유가 다 다르다. 손바닥만한 밥그릇 채우기가 어려운 사람들도 있고, 밥솥만한 밥그릇을 채우려고 안간힘을 쓰며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불법과 편법은 용납될 수 없다. 속임수와 부정은 가난한 서민들을 더 어렵게 만들뿐 아니라 서민의 희망을 앗아가는 죄악이다. 희망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제발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나의 가진 것을 나누자. 없다면 빈손으로라도 악수를 청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며, 따뜻한 삶의 온정과 격려를 나누도록 하자.◆[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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