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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불신자에게 유보된 예수의 정체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13 조회수994 추천수7 반대(0) 신고
 

◎ 2004년12월13일(월) -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 성녀 루치아 (286년경-305) 동정 순교자


  성녀 루치아의 세례명을 가진 자매들이 성녀에 대하여 알고자 노력할 때에 성녀의 삶에 대한 전승과 역사적 근거가 거의 없다는 점에 실망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성체성사가 집전되는 미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성찬의 전례를 이루는 감사기도이다. 통상 감사기도에는 네 가지의 양식이 있다. 이 중에 제일 많이 사용되는 것은 감사기도 제2양식이다. 하지만 감사기도 제1양식을 보면, 그리스도의 성체성사 제정말씀 전․후에 성인들을 기억하는 기도부분이 있다. 전반부에는 천주의 모친 동정 성 마리아와 성 요셉을 비롯하여 11사도 및 12명의 성인들이 호칭되고, 후반부에는 마티아를 비롯하여 14명의 성인․성녀들이 호칭된다. 여기에 호칭된 성녀는 모두 7명인데 영광스럽게도 성녀 아가타와 함께 성녀 루치아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성녀 루치아가 동정 순교자로서 일찍부터 로마교회의 공경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승에 의하면 루치아는 286년경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에서 태어났다. 홀로 세례를 받은 소녀 루치아는 어머니 오이티키아의 혼인요청을 만류하고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결국 병이 난 어머니를 모시고 루치아가 찾아간 곳은 카타니아에 있는 성녀 아가타(225-250년경)의 무덤이었다. 루치아의 간절한 기도는 어머니를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였고, 그녀의 병을 낫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루치아의 꿈속에 나타난 성녀 아가타는 자신과 같은 루치아의 운명을 예견하였다고 한다. 시라쿠사로 돌아온 루치아는 어머니와 함께 가산을 모두 팔아 빈민병자구호소를 설치하여 이웃사랑을 실천하였다. 동시에 삼엄한 박해상황에서 신자들의 은닉과 식음(食飮)을 도모하였고, 어둠 속에서도 두 손으로 일하기 위하여 머리 위에 촛불을 묶어 밝혔다고 한다.


  결국 루치아와 혼담이 있었던 청년이 화가 치밀어 시라쿠사의 관리에게 루치아를 고발하여 넘겨버린다. 광장에서 루치아의 참형이 시작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관리들이 황소를 동원해 성녀를 찢어 죽이려하였으나 불가능했고, 펄펄 끓인 기름을 갖다 부었어도 끄떡없었다고 한다. 그날 밤 광장에 묶인 채로 성체를 받아 모신 성녀 루치아는 다음 날 참수를 당하였다. 관리들이 긴 칼로 성녀의 목을 난자하고 결국은 잘랐다. 성녀는 목이 붙어 있는 동안 큰 소리로 기도하면서,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의 최후와 머지않아 얻게 될 그리스도교의 평화와 자유를 예언하였다고 한다. 성녀가 순교의 월계관을 받은 날은 305년 12월 13일, 디오클레시아누스 황제(284-305)의 박해 때였다. 성녀 루치아는 성녀 아가타와 함께 시칠리아뿐 아니라 베니스와 로마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녀들 중의 한 분이시다.◆


[오늘의 복음]  마태 21,23-27

<요한은 누구에게서 권한을 받아 세례를 베풀었느냐?>


  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에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와서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들을 합니까? 누가 이런 권한을 주었습니까?” 하고 물었다. 24) “나도 한 가지 물어 보겠다.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 일을 하는지 말하겠다. 25) 요한은 누구에게서 권한을 받아 세례를 베풀었느냐? 하늘이 준 것이냐? 사람이 준 것이냐?” 하고 반문하시자 그들은 자기들끼리 “그 권한을 하늘이 주었다고 하면 왜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할 것이고 26) 사람이 주었다고 하면 모두들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으니 군중이 가만있지 않을 테지?” 하고 의논한 끝에 27) “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복음산책]  불신자에게 유보된 예수의 정체


  대림시기에 봉독되는 복음의 주요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고 했다. 첫째는 메시아의 도래와 현존이 가져오는 징표들에 관한 내용으로서 예수께서 메시아로서 병자와 소경을 치유하고, 죄인의 죄를 사하며, 억눌린 백성들을 배려하고 위로하는 내용이다. 둘째는 메시아적 징표들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요구하는 내용으로서 그 태도는 믿음과 불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을 선택할 경우 하느님나라의 보장을 받는다. 셋째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를 대조하는 내용이다. 둘 다 구약성서에 계시된 자들로서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를 위한 특사요 선구자로, 예수는 야훼의 고난 받는 종이요 메시아로 예언되었다. 이들 주요내용을 잘 이해하는 방법으로 그 날의 독서로 대부분 봉독되는 이사야예언서와의 연결을 도모하도록 권유하였다. 이제 대림 제3주간의 복음(12월 16일까지)은 모두가 세례자 요한과 관련된 것이다.


  복음은 메시아의 도래를 위한 선구자로 세례자 요한을 등장시키고 그의 정체성을 밝히면서 광야와 요르단강에서 회개의 설교와 세례를 베풀게 한다. 그러나 복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따라서 복음은 선구자의 중요한 역할을 부각시키면서 그 이상으로 메시아의 정체와 권위가 출중함을 보여준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복음이 우선 메시아를 준비하는 요한의 선구자적 역할을 보도하고, 그 다음에 메시아의 역사적 도래, 그리고 메시아의 활동을 단순히 시간상의 순서로 열거하려는 목적만 가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복음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언제나 영향력을 가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메시아 예수의 ‘이미 오심’을 준비하는 세례자 요한의 선구자적 역할은 인자(人子)의 ‘다시 오심’에로 연장될 수 있는 것이다.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해 보자. 역사적 사건의 측면에서 볼 때, 세례자 요한의 선구자적 역할은 메시아 예수의 공생활로 말미암은 신약의 시작으로 끝나며, 신약은 그리스도 예수의 메시아적 역할, 즉 공생활, 수난, 죽음, 부활로 끝난다. 그러나 구세사적 측면에서 볼 때, 요한과 예수의 역할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지속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공을 초월할 수 있는 두 분의 역할은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경륜 속에 하느님 스스로가 세례자 요한과 아들 예수에게 부여한 사명과 권한 때문이다. 이 사명과 권한이 두 분의 역할과 활동을 인간구원과 관련하여 정당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복음이 바로 그 권위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예수의 권위에 대한 예수와 백성의 지도자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정확한 시점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후 이틀째 되는 날이다. 마르코복음에서는 사흘째 되는 날로 편집되었다.(마르 11,1-33) 논쟁의 원인이 되는 ‘이런 일’이란 예수께서 입성 직후 행하신 성전정화사건을 말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행하신 예수님의 전체 행적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예수님의 권한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하느님으로부터의 권한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직접적인 답변을 회피하시고, 그들이 알아듣기 훨씬 쉬운 방법을 택하신다. 그것은 바로 세례자 요한의 권한에 대한 반문(反問)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을 믿고 회개의 세례를 받았지만 백성의 지도자들과 대사제들은 세례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예수님의 반문이 그들을 진퇴양난에 빠트려 ‘모르겠다.’는 대답을 얻어냈지만, 사실상 그들은 속으로 세례자 요한을 불신함으로써 예수까지도 불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르겠다.’는 대답은 사실상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대사제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무엇이 하느님의 일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분별하여 백성들에게 제시해야 하는 임무를 가진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세례자 요한의 권한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함으로써 자신들의 직무를 다하지 못함은 물론, 예수가 누구이며, 어떤 권한으로 지금까지 놀라운 행적을 해왔는지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된다. 이렇듯 불신자에게 예수님의 참된 정체성은 유보된다. 예수님의 대답은 적어도 말씀을 들으려 하고 받아들이려 하는 자에게만 주어진다. 이에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세례자 요한에 대한 신뢰이다. 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일어나는 하느님의 사건에 대한 믿음 없이 예수께 대한 믿음을 얻기란 힘들다. 우리 중에 세례자 요한에 대하여 모른다고 말할 사람은 없다. 오늘날 세례자 요한이라는 인물과 그의 선구자적 역할과 활동을 신뢰한다는 것은 곧 메시아의 탄생을 준비하는 회개와 쇄신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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