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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21) 단절이었는가? 수행이었는가?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13 조회수1,061 추천수11 반대(0) 신고

2004년12월13일월요일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ㅡ민수기24,2-7.15-17;마태오21,23-27ㅡ

 

        단절이었는가? 수행이었는가?

                                                이순의

 

 

매월 한 번씩은 고해성사를 보아왔던 생활을 청산해 버린지가 2년이 되었다. 그리고 벌써 네다섯 번의 판공성사 기간을 그저 생각만 하다가 시간을 좀 먹고 있다. 그저 신앙이라는 것이 믿음의 관점에서 보면 신께서 사람의 죄쯤이야 사랑의 재롱으로 보아 주실 것 같기도 하고, 범죄의 관점에서 보면 죄의 형틀에 갖혀 굴레를 족쇠처럼 두르고 사는 행위 같기도 하다.

 

나 한 사람 발 끊어 버리면 나 라는 존재에서 종교는 없어지는 것이고, 나 한 사람 발 딛으면 내가 속한 세상이 종교가 되는 어마어마한 힘의 산실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종교는 내가 가면 있고 내가 가지 않으면 없는 선택이다. 또한 세상에는 종교를 가진 사람도 있지만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도 별로 다를 바 없이 잘 살고있다. 인간이 존재 하는데는 종교가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도 나는 종교인이고 신앙을 살고 있으며 굳은 믿음 또한 얻고자 무한한 노력을 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나는 2년이라는 시간동안을 내 인생의 또다른 경지를 얻지 못 해서 방황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너무 편해서 때로는 내 감정이 사라지는 백치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자아를 건드려야 하는 교류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난 2년 동안 내가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 본다.

 

나는 단절하느라고 2년을 살았는가? 수행하느라고 2년을 살았는가?

 

마지막 남은 친구를 단절하느라고 관련된 글을 대빵으로 힘을 실어 묵상을 쓰기도 했다. 그랬더니 확실하게 끊어지는 행운(?)이 있었다. 물론 모두가 생각해 볼 몫이지만 그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야 그것이 뜨거운 감자임에는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석 자리 반도 더 넘고넘어서 나를 지치게 하고 지겹게 하던 친구는 근일간에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이사를 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 복잡한 심정이 오죽 했겠는가?

 

나 경매에 처했다는 한마디면 될 것을 그 한마디 하기가 자존심이라서 세상에 자기가 경험한 일대기를 다 나열하고도 본심이 빠져있었다. 돌리고 또 돌리고 또 돌려서 이야기에 복사를 하고 또 한들 본인의 맺힌 가슴이 뚤리겠는가?! 듣는 사람은 지겹고 짜증나고 지치고 그렇다고 내 인생도 수월치가 않다. 사람이라는 자체가 이기적 자아 맹종주의자로 보여버렸다.

 

내가 2년의 공백동안에 한 일이 바로 그것이다. 이기적 자아 맹종주의자들의 하소연을 절대로 들어주지 않는 것이다. 내 인생이 사연이 많다보니 설음도 많았고 맺힘도 많았다. 그래서 한 때 잠깐 나도 내 삶의 질곡들을 나도 모르게 입밖으로 열었던 새댁시절이 있었다. 그 푸념들을 차단시켜주신 분이 계시다. 내 아이가 어려서 등에 업었을 때니까 10여년도 더 지났다.

 

그때는 새댁시절이라서 친정엄마의 호출이 떨어지면 간혹 친정에를 가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때는 지금 보다 더 가난했다. 지금도 도시 빈민에 속하지만 그때는 도시 쓰레기에 속하기도 면목이 없을 만큼 가난했다. (참! 그렇게 가난하고 힘든 우리부부를 시댁식구들은 그렇게 보지 않았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든 결혼생활이었겠는가?) 그래서 나도 모르게 불평을 하곤 했었다.

 

그날도 그랬었다. 부엌도 없이 남의 계단밑에 연탄화덕 하나 놓고 영등포 쪽방 같은데 살으시던 어머니께서 보증금 40만원짜리 방을 한 달 말미도 없이 열흘 남겨 놓고 집을 내 놓아버렸다. 길에 보잘 것도 없는 세간살이를 쌓아 두어야 하는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나는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많지만 그걸 다 탓 하려고 하면 화병이 나니까 그만 두기로 하고...! 일금200만원 보증금에 월세를 마련하는데 적금이라고 해약을 해서 150만원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40만원을 합해서 190만원이 되었는데 10만원이 모자라서 동생들에게 채우라고 했었다. 역시 어머니는 무일푼이셨다. 그때 남의 베란다방 한칸에 사는 나는 지금의 송파동 성당옆 공원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자식이 넷씩이나 가진 어머니는 쉬면 안되는 거예요. 어떻게 몇 달 일 하시고 돈을 장판 밑에 깔아 놓고 그 돈 떨어질 때까지 손을 놓을 수가 있어요? 내일 일할 자리가 있을 때 오늘 식당일이라도 그만 두는 것이지 자식이 넷 인데 어떻게 몇달 일 하고 몇달 쉬고 그러시냐구요? 그런 인생을 살으셨으니 자식 하나를 못 가르치셨지요." 그때 어머니께서 소리지르신 대답은 "돈 벌면 뭐 한다냐? 도둑놈 좋은일 시키는디." 였다. 그러니까 변변한 방 한 칸을 살 수 없었던 어머니께서 돈을 모으면 도둑이 그 서푼 벌이를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문맹이신 어머니는 돈을 장판 밑에 깔으셨던 것이고 어느정도 두둑해지면 더 이상 벌지 않고 다 쓰셔야만 했던 것이다.

 

다시 소리친 나의 말은 "은행에 가면 권총찬 아저씨 한테 써 달라고 하면 다 써 줘요. 어머니돈 누구도 안 뺏어가요. 동생들 장가 보내려면 금가락지는 하나씩 해 줘야 어머니지요. 저는 어머니 돈에 관심도 없으니까 은행에 권총든 아저씨한테 부탁하시면 비밀 보장도 된다구요. 어떻게 베란다 방 한 칸 사는 자식에게 돈 한 푼 없이 짐을 지우시냐구요?" 그날 이후로 어머니는 퇴직하실 때까지 직장을 쉬신적이 없었다. 그래서 단칸 월세를 전세로 돌려 놓으셨다. 물론 동생들은 금가락지라도 해서 장가를 보냈다. 물론 진수성찬에 밥상도 해 주었고 당연히 나 보다는 나은 삶을 시작했다.

 

그런 어려움을 친정에 가서 말 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가만히 듣고 계시던 큰 오라버니께서 일침을 놓으셨다. "네 시집이야기 친정에 와서 하지 마라. 듣기 싫다. 네 새언니도 산다." 그날은 너무 서운했었다. 그날 오빠가 그렇게 야속했었다. 새언니가 나 처럼 사나? 싶은 야속함이 아버지가 살아있었어도 나를 이렇게 살게 했을까? 라고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때 오라버니께 대꾸하지도 않았다. 그 날 이후 나는 친정에 가서 내 사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남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들어주며 살았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신앙법이었다. 그래서 도와드린 사람도 많았고, 가슴아픈 일도 많았으며, 침묵의 중요성도 알았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관계이고, 그 관계는 서로에게 바람이 되고, 그 바람은 결국 짐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자기의 바람은 줄이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요구하는 몫은 커진다는 것도 깨달았다.

 

바람을 줄이면 요구가 작아지고, 요구가 작아진다는 것은 곧 실망이나 상처도 줄어든다는 결론이었다. 그런데 내가 상담한 사람들중에 단 한 사람도 바람을 줄인 사람이 없었다. 단지 삶이 그들을 굴복시켰고 그들은 그것이 굴복인지를 모르고 또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도 하지만 환경의 동물이기도 했다. 고통과 비극의 연장선상에서 회생의 기미라고는 티끌만큼도 없어 보이던 사람들도 삶이라는 생존 원칙에 굴복되고 나면 그 굴복의 시점이 새 삶의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극에 달한 고통이 와도 주변에 그 사실을 알리거나 토론하지 않는다. 간혹 큰 언니가 전화를 하거나 방문을 해서 동향을 살펴주시는 것을 제외하고는 혼자서 견디고 극복하는 선택을 한다. 그 시점을 빨리인정하는 길이 곧 새 출발이더라는 것을 많은 경험을 통해 익혀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10여년 동안의 나의 사목(?)방향을 중단해 버린 것이다. 벌써 2년이 되었다. 그것을 청산하는데 2년이 걸렸다. 근 한 3년여를 주변정리 하는데 시간을 쏟아버린 셈이다. 그리고 성사를 거른지가 함께 2년이다.

 

어떤면으로는 오라버니로 인해 시작된 사도직이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참으로 많은 보람과 경험을 주었고, 그로인해서 나는 인생이라는 경지를 어느만큼은 달리 바라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글로 쓰자면 무한히 풍부한 자료가 되어있기도 하고, 마음으로 보면은 손오공을 처다보는 부처님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은 시간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모든 관계를 청산해버린 지금 나는 새로운 성찰을 하고 있다. 지금 나는 내가 무엇을 잘 하고 있는지 못 하고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혹자는 다시 열심히 하라고 한다. 그럼 내가 지금 엉터리 신앙인인가? 또 다른이는 당신을 능가할 신자가 누구인가 라고 치하를 한다. 그럼 나는 지금 천국으로 직행 할 수 있는가? 분명히 지난 2년의 세월은 나 홀로 지낸 시간이었다. 사람이 사람과 사는 관계를 청산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이렇게 묵상이라는 봉헌을 통해 일방적인 관계를 선택하고 있다. 관계는 절단했으나 종교는 지탱하고 있으며 더욱 중요한 사실은 가슴 깊이에 신앙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을 차단한 신앙을 신앙이라고 할 것인가? 주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친히 사람 가운데 오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주님께 반역하는 2년을 살고있다. 그렇다고 하더라고 나는 지금 내 스스로에게 주님께 반역한 점수를 매기고 싶지는 않다. 

 

나는 지금 단절과 수행을 저울위에 올려놓고 있다.

단절이었다면 범죄의 관점이 되어 억겁의 죄목이 클 것이고, 수행이었다면 믿음의 관점이 되어 관상의 표본이 될 것이다. 고해성사를 한다면 전자는 다시 관계를 회복 시킬 의지가 있어야 통회가 이루어 질 것이고, 후자는 생활하는 은수자의 모습을 상실하지 않을 결심이 서야 할 것이다. 고해란 통회와 결심이 우선이고 사함과 보속은 나중이기 때문이다. 이번 성탄 판공성사가 종료되기 전에 그 저울의 눈금이 정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대림시기가 너무 힘들다. 진짜 너무 힘들다.

 

이제는 나도 성체를 영하고 싶음이 간절하다.

 

ㅡ"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 하였다. 예수께서 말씀 하셨다."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겠다. 마태오21,27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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