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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윗물이 맑아야...(12/14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학자 기념일)
작성자이현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13 조회수1,083 추천수5 반대(0) 신고
 

                   윗물이 맑아야...(12/14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학자 기념일)


    얼마 전에 충격적인 밀양 여중생 성폭행사건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경찰이 그 수사과정과 보도과정에서 피해자, 가해자들의 인권을 유린했다고 하여 그 파문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어느 경찰이 학생들에게, “너희가 밀양물을 흐려놓았다...”라고 꾸지람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그 학생들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요? 오히려 그 학생들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지요!” 하고 반문할 지도 모릅니다.


  오늘 복음(마태 21, 28- 32)에서 예수님께서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이런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 라고 하시며, 세리와 창녀들은 세례자 요한의 말을 믿고 회개를 하였지만 오히려 요한의 목을 베게 한 소위 지도자들의 교만과 죄를 고발하십니다. 그들은 세리와 창녀들이 예루살렘의 물을 흐려놓았다고 걱정했지만 실상 하느님의 나라의 물을 흐려놓고 있는 것이 정작 자신들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민신부님의 저서인 일상의 아름다움 즉 ‘일상의 신화’에서 발췌한 ‘학이야기’를 퍼드립니다. 이 학이라는 새는 아주 깨끗한 물이 흐르고 공기가 맑은 곳에만 산다고 하는데, 우리의 청소년들도 이러한 백학, 현학, 금학의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혹시 우리가 물을 흐려놓아 그들을 까마귀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의 마음에서 말입니다.


  <정화-조명-일치의 단계를 살아가는 영적성숙의 관점에서 학의 유형을 말한다면 백학-현학-금학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백학은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학입니다. 그러나 현학을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흔히 볼 수 없는 학이기에 현학은 백학과 차원이 다른 삶을 사는 학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영적 성숙의 과정에서 정화를 거쳐 조명의 단계에 이른 사람을 현학에 비유합니다. 그만큼 영적 성숙의 과정인 첫 단계인 정화의 단계조차도 사실 살기는 어렵습니다...

  수도생활을 하거나 성직생활을 한다고 해서 다 영적 성숙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백학으로서의 정화의 단계를 살아가는 사람이 우리 그리스도인 가운데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물며 백학으로 이야기되는 정화의 단계를 거쳐 현학의 단계인 조명의 단계를 사는 사람도...

  ‘아는 만큼 보인다’고 현학의 삶을 알아야 합니다.  결국 십자가의 성요한이 ‘어둔 밤’이라고 일컬었던 조명의 단계를 사는 사람만이 현학을 넘어 금학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금학이라? 세속적인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금학, 아니 우리 주변에 살고 있으면서도 전혀 눈에 띠지 않는 신비의 학인 금학, 결국 하느님과의 일치를 이루는 사람만이 금학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영적 성숙의 길에서 하느님과의 합일, 즉 일치의 삶을 사는 사람을 일컬어 금학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학마을을 다녀왔습니다.>


                               (‘일상의 신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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