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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2월 15일 『야곱의 우물』- 갈등과 선택 ♣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15 조회수1,254 추천수5 반대(0) 신고
     
    ♣ 갈등과 선택 ♣ 
    
    [마태 11,2-11] 
    그때에 요한은 자기 제자 두 사람을 주님께 보내어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또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하고 묻게 하였다.
    
    그 두 사람이 예수께 가서 "세례자 요한이 저희를 선생님께 보내면서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또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하고 물어보라고 하십니다.
    바로 그때 예수께서는 온갖 질병과 고통과 마귀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소경들의 눈도 뜨게 해 주셨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대답 하셨다.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소경이 보게 되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 인생에는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때가 몇 번 있다고 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선택해야 하고 책임져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 했다.
    신앙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기준과 예수님의 모범 앞에서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세상을 따르자 니 예수님 말씀이 울고, 예수님을 따르자니 고생문이 활짝 열린다.
    혼자라면 그런대로 예수님을 따르겠지만 가족들은 영문도 모르는 것이고, 가족들을 설득할 능력도 없기에 무너져 버린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인가!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복음을 듣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복음적 가치에 대한 선택이 자유롭다. 걸리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부유한 사람들은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다.가끔은 예수님 을 그럴듯하게 왜곡시켜서라도 위안을 삼고자 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고 듣고 왜곡하지 않고 따라 나설 수 있 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가난해지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뵙고 싶은 열정도 생기지 않고, 예수님을 제대로 볼 수도 없다. 『야곱의 우물』 《매일성서묵상》에 나오는 12월 15일자 원주교구 주천 천주교회 고정배 신부님의 글입니다. *^^*
    【 묵 상 나 누 기 】

† 가난 †

가난해지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뵙고 싶은 열정도 생기지 않고, 
예수님을 제대로 볼 수도 없다.

가난이라는 단어가 나는 왜 그렇게 싫었는지 모른다. 
가난이라는 것은 곧 게으름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생활력이 강하신 친정어머님 덕분에 당신께서 활동하고 계실때에는
가난이라는 것이 내 삶에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어느날 내가 어른
이 되어서 또 당신께서 모든 일을 놓으시고 드러누우셨던 그날부터
나는 가난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언제나 이 세상에서 앗! 나가 제일 가난하고 제일 불행하고/그래서 누구를 돕는다는 것에 인색할 수 뿐이 없었다. 그렇게 가난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마음이 넉넉하지 못하였기에 가난 그 자체인것이다.
그래서 더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가난하기에... 있는 척하는 것으로 가난을 포장하고 싶었다. 없는 티를 내지 않는 것이 곧 내 자존심이라도 된듯.../
주머니는 텅텅 비어있어도 나는 제일 먼저 뛰어나가서 값을 치루는 일에 앞장 서곤했다.가난이라는 것을 포장하고픈 마음이었으리라..
가톨릭 안으로 들어와보니.../ 선종하신 김승훈 마티아 주임 신부님의 강론은 언제나 '가난한 이웃 과 함께' 이다. 짧은 강론이 말씀으로 목이 마르다. 그러나 남는 여 운 하나가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가운데 그 속에 예수님이 계시다 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알고 머물렀던 삶 속에서는 내가 제일 가난했었는데... 나는 결코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나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점점 내 마음이 부자가 되어가는 것이다.실제 생활은 점점 가난으로 찌들어가고 있지만 내 삶은 마냥 풍요롭기만했다.
그래도 놓지 못하는 끈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어떻게해서라도 노후를 위한 준비를 하고 싶었기에 직장을 열심히 다녔던 것이다.삶의 애착일 수도 있겠지만 물질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친정어머님이 돌아가시면서 그 끈을 놓게해주셨다. 육신은 훨~훨~타서 한 줌의 재로 남는 모습을 눈물콧물로 지켜보면서/삶이란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라는 것을 가슴으로 느낀 것이다. 아무리 더드리고 싶어도 만원짜리 지폐 한 장 가지고 갈 수 없는 나라로 훌훌 떠나시는 것이다.
지금은 리싸이클 박스에서 버려진 책상을 주어와도 마음이 뿌듯하다. 이웃은 버렸지만 앗! 나는 주어다 쓴다고해도 부끄럽지 않다.내가 필요 하다고 느끼면 어디선가 나타나는 것이 왠지 신기하기만 하다. *^^*
나는 이쁜 그릇 사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하지만 이제는 사지 않는다. 그 그릇 사가지고 몇 년이나 쓰겠다고.../있는 것이나 잘 간수해서 사 용하다가 가볍게 떠나자는 것이다.이 세상 것들에 대해서 너무나 애착 을 가지고 있으면 떠나는 날에 미련이 많이 남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만나면 음식을 부페로 만든다. 그 접시에 놓여진 젖가락이 아까워서 식사가 끝난 후에 모아서 비닐에 넣어온다. 버리라고들 하지 만 나는 먹었던 것이 아니라 음식을 날랐던 좋은 젖가락을 버리기에는 아깝다고 생각이 들기에/챙피해하지 않고 재활용하겠다고 한다.
사람들이 앗!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살아가는 방법이 있듯이 내가 살아가는 방법은 더욱 아끼고.. 아껴서 남은 것은 나눠야된다는 생각에 머물러있다.
가난하다는 것이 얼마나 편하지 모른다. 오늘 묵상글을 읽어보니 내가 가난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복음을 듣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복음적 가치에 대한 선택이 자유롭다. 걸리는 것이 없기때문이다. 가난. 가난이라는 단어가 사랑스럽다.주님께로 더 가까이 다가가 하고픈 말 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외치는 모습에 조금이나마 비슷하게 살아갈 수 있음이니 가난이라는 단어가 정겹게 삶으로 다가 온다. 아끼고 검소한데 익숙한 이북사람인 남편의 생활방식에도 이제 나는 많이 익숙해져간다.
더욱 가난을 사랑하고 싶다.가난 속으로 들어가 가난한 이웃과 삶을 마무리하고 싶어진다. 그 안에 내 사랑하는 주님이 계시기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멋지게 살며 길이 안보여도 두려움없이 걷고 있습니다.
의지할 아무것도 없지만 확신을 지니고 하느님을 의지하면서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것이고 그분은 예비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세속적인 성공으로의 삶이 아니라 신앙적인 믿음의 삶으로 불리움받았습니다.
- 마더 데레사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중에서 -
이 묵상글을 읽으면 많은 것들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자랑 스러워지기까지 하다. 가난하기에 이 말씀이 열린 눈으로 읽어지고 열린 귀로 들어지니.../오늘도 열린 입으로 나즈막히 읇조리는.... 삶에 더 이상 갈등이 없는... 안나가요*^^* 《소스 입니다》 <ul><img src=http://www.cdmb.co.kr/pds/004/10/j031.JPG>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 갈등과 선택 ♣</b> <FONT color=green style="FONT-SIZE: 11pt"> <b>[마태 11,2-11]</b><FONT color=red style="FONT-SIZE: 10pt"> 그때에 요한은 자기 제자 두 사람을 주님께 보내어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또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하고 묻게 하였다. <br> 그 두 사람이 예수께 가서 "세례자 요한이 저희를 선생님께 보내면서 <u>'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또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u> 하고 물어보라고 하십니다. <br> 바로 그때 예수께서는 온갖 질병과 고통과 마귀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또 많은 소경들의 눈도 뜨게 해 주셨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대답 하셨다. <br>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 소경이 보게 되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인생에는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때가 몇 번 있다고 한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선택해야 하고 책임져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 했다. <br> 신앙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기준과 예수님의 모범 앞에서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세상을 따르자 니 예수님 말씀이 울고, 예수님을 따르자니 고생문이 활짝 열린다. <br> 혼자라면 그런대로 예수님을 따르겠지만 가족들은 영문도 모르는 것이고, 가족들을 설득할 능력도 없기에 무너져 버린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인가! <br>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복음을 듣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복음적 가치에 대한 선택이 자유롭다. 걸리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br> 부유한 사람들은 지켜야 할 것이 너무 많다.가끔은 예수님 을 그럴듯하게 왜곡시켜서라도 위안을 삼고자 한다. <br> 그러나 예수님을 보고 듣고 왜곡하지 않고 따라 나설 수 있 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가난해지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뵙고 싶은 열정도 생기지 않고, 예수님을 제대로 볼 수도 없다.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야곱의 우물』 《매일성서묵상》에 나오는 12월 15일자 원주교구 주천 천주교회 고정배 신부님의 글입니다. *^^* </b> <br> <EMBED src=http://myhome.naver.com/pinokeeo1004/1/angel71.swf width=150 height=10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b>【 묵 상 나 누 기 】</b></ul> <pre><FONT color=#005e77 style="FONT-SIZE: 11pt"> † 가난 † <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가난해지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뵙고 싶은 열정도 생기지 않고, 예수님을 제대로 볼 수도 없다.</b>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가난이라는 단어가 나는 왜 그렇게 싫었는지 모른다. 가난이라는 것은 곧 게으름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생활력이 강하신 친정어머님 덕분에 당신께서 활동하고 계실때에는 가난이라는 것이 내 삶에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어느날 내가 어른 이 되어서 또 당신께서 모든 일을 놓으시고 드러누우셨던 그날부터 나는 가난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br> 언제나 이 세상에서 앗! 나가 제일 가난하고 제일 불행하고/그래서 누구를 돕는다는 것에 인색할 수 뿐이 없었다. 그렇게 가난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마음이 넉넉하지 못하였기에 가난 그 자체인것이다. <br> 그래서 더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가난하기에... 있는 척하는 것으로 가난을 포장하고 싶었다. 없는 티를 내지 않는 것이 곧 내 자존심이라도 된듯.../ <br> 주머니는 텅텅 비어있어도 나는 제일 먼저 뛰어나가서 값을 치루는 일에 앞장 서곤했다.가난이라는 것을 포장하고픈 마음이었으리라.. <br> 가톨릭 안으로 들어와보니.../ 선종하신 김승훈 마티아 주임 신부님의 강론은 언제나 '가난한 이웃 과 함께' 이다. 짧은 강론이 말씀으로 목이 마르다. 그러나 남는 여 운 하나가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가운데 그 속에 예수님이 계시다 는 것이다. <br> 그동안 내가 알고 머물렀던 삶 속에서는 내가 제일 가난했었는데... 나는 결코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나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점점 내 마음이 부자가 되어가는 것이다.실제 생활은 점점 가난으로 찌들어가고 있지만 내 삶은 마냥 풍요롭기만했다. <br> 그래도 놓지 못하는 끈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어떻게해서라도 노후를 위한 준비를 하고 싶었기에 직장을 열심히 다녔던 것이다.삶의 애착일 수도 있겠지만 물질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br> 친정어머님이 돌아가시면서 그 끈을 놓게해주셨다. 육신은 훨~훨~타서 한 줌의 재로 남는 모습을 눈물콧물로 지켜보면서/삶이란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라는 것을 가슴으로 느낀 것이다. 아무리 더드리고 싶어도 만원짜리 지폐 한 장 가지고 갈 수 없는 나라로 훌훌 떠나시는 것이다. <br> 지금은 리싸이클 박스에서 버려진 책상을 주어와도 마음이 뿌듯하다. 이웃은 버렸지만 앗! 나는 주어다 쓴다고해도 부끄럽지 않다.내가 필요 하다고 느끼면 어디선가 나타나는 것이 왠지 신기하기만 하다. *^^* <br> 나는 이쁜 그릇 사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하지만 이제는 사지 않는다. 그 그릇 사가지고 몇 년이나 쓰겠다고.../있는 것이나 잘 간수해서 사 용하다가 가볍게 떠나자는 것이다.이 세상 것들에 대해서 너무나 애착 을 가지고 있으면 떠나는 날에 미련이 많이 남을 것 같기 때문이다. <br> 한국인들이 만나면 음식을 부페로 만든다. 그 접시에 놓여진 젖가락이 아까워서 식사가 끝난 후에 모아서 비닐에 넣어온다. 버리라고들 하지 만 나는 먹었던 것이 아니라 음식을 날랐던 좋은 젖가락을 버리기에는 아깝다고 생각이 들기에/챙피해하지 않고 재활용하겠다고 한다. <br> 사람들이 앗!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살아가는 방법이 있듯이 내가 살아가는 방법은 더욱 아끼고.. 아껴서 남은 것은 나눠야된다는 생각에 머물러있다. <br> 가난하다는 것이 얼마나 편하지 모른다. 오늘 묵상글을 읽어보니 내가 가난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복음을 듣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복음적 가치에 대한 선택이 자유롭다. 걸리는 것이 없기때문이다.</b> <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b>가난.</b><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가난이라는 단어가 사랑스럽다.주님께로 더 가까이 다가가 하고픈 말 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외치는 모습에 조금이나마 비슷하게 살아갈 수 있음이니 가난이라는 단어가 정겹게 삶으로 다가 온다. 아끼고 검소한데 익숙한 이북사람인 남편의 생활방식에도 이제 나는 많이 익숙해져간다. <br> 더욱 가난을 사랑하고 싶다.가난 속으로 들어가 가난한 이웃과 삶을 마무리하고 싶어진다. 그 안에 내 사랑하는 주님이 계시기에... <FONT color=black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멋지게 살며 길이 안보여도 두려움없이 걷고 있습니다. <br> 의지할 아무것도 없지만 확신을 지니고 하느님을 의지하면서 가고 있습니다. <br> 우리는 그분의 것이고 그분은 예비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br> 우리는 세속적인 성공으로의 삶이 아니라 신앙적인 믿음의 삶으로 불리움받았습니다. <br> - 마더 데레사 『모든 것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중에서 -</b>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이 묵상글을 읽으면 많은 것들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자랑 스러워지기까지 하다. 가난하기에 이 말씀이 열린 눈으로 읽어지고 열린 귀로 들어지니.../오늘도 열린 입으로 나즈막히 &#51015;조리는....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삶에 더 이상 갈등이 없는...</b> <IMG src="http://ompcac.com.ne.kr/img/c6.jpg"> <b>안나가요*^^*</b> <EMBED src=http://www.onlymom.com/music/carino.asf width=200 height=70 showstatusbar="1" autostart="true" volume="0" loo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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