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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펄펄 끓는 미움의 감옥에서...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15 조회수1,025 추천수2 반대(0) 신고
대림 제3주간수요일(12/15)






    독서: 이사 45,6ㄴ-8.18.21ㄴ-25 복음: 루가 7,18ㄴ-23 "나는 주님이다. 누가 또 있느냐? 빛을 만든 것도 나요, 어둠을 지은 것도 나다. 행복을 주는 것도 나요, 불행을 조장하는 것도 나다." 오늘 독서의 말씀이다. 빛을 만들고 행복을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어둠을 만들고 불행을 조장하는 것도 하느님이셨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오늘 복음에서는 요한이 예수께 제자들을 보내 그분이 정말 누구신지 알아보려한다.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또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하고 요한의 제자들은 와서 물었다.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은 물론 백성들이 수백년동안 고대하던 그리스도(3,15)를 말한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에 대한 像이 각각이라는 것이 문제다. 세례자 요한이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그의 설교에 잘 나타나있다. "나보다 더 훌륭한 분",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하면서 '그분은 여러분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입니다'(3,16) "그분은 손에 키를 들고 당신 타작마당의 곡식을 깨끗이 가려 밀은 당신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입니다."(3,17) 바로 그 심판의 불을 염두에 두고, 회개하지 않는 군중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독사의 족속들아, 닥쳐올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주더냐?"(3,7)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닿았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진다."(3,9) 그리스도의 도래가 임박했다는 것을 예감한 예언자 요한의 말이다. 그분이 이미 오셨음은 맞혔으나 그분이 와서 무엇을 하실지는 잘 몰랐다. 그는 그리스도가 오시면 불의 심판이 곧 이루어지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더구나 죄도 없이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그가 생각했던 심판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간절히 불타 올랐을지는 쉽게 추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오셔서 한 일들은 무엇인가? "소경이 보게 되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7,22)... 말하자면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일들이 눈 앞에서 실현되고 있었다. (이사29,18;35,5-6; 42,18; 26,19; 61,1: 메시아가 오시면 일어날 일들) "주님의 날"이 오면 심판이 있을 것이란 메시지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구원에 대한 메시지도 성서엔 많이 있었다. 그렇다면 세례자 요한은 왜 그것들을 몰랐을까? 몰랐다기 보다 그에게는 구원에 관한 메시지보다도 심판에 대한 메시지가 더 자신의 마음에 쏙 들었다는 이야긴 아닐까? 우리도 자기가 좋아하는 면만 성서에서 찾아본다면 자기가 믿고 싶은 하느님만 믿고 있다면 바로 이렇게 그리스도를 눈 앞에 두고도 의심을 품을 수가 있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들 중 가장 크다고 칭찬을 받은 대 예언자도 그런 愚를 범했다. 이제 다시 독서의 구절로 돌아간다. 고대 동방에는 이 세상의 선과 악, 행복과 불행이 혼재하는 것에 대해 선한 신과 악한 신이 따로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이사야 예언자는 반론을 피는 것이다. 선과 악, 행복과 불행, 어둠과 빛... 그 모든 것들이 다 한 분이신 하느님 안에 달려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다. 선도 지나치면 악이 된다. 어둠은 빛을 등지는 곳에 있다. 나의 행복이 이웃의 불행일 때도 있다. 불행인듯 여겨지던 것도 후에 보면 행운인 것도 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이 따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내 마음의 작용이다. 또한 내가 파악 못하는 어떤 것들이 내 하느님 안에는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떨 때는 그것이 내 마음 안에 흡족하지 않고, 내 이성 안에 납득되지 않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파악되지 않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섭리를 믿을 때, 선과 악, 행과 불행, 어둠과 빛은 모두 하느님 안에서 용해되고 제련되어 후일 나에게 모두 가치있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아직도 너무 싱거운가? 뭔가 통쾌한 것이 없다는 말인가? 예수님이 오시기전, 이스라엘 백성도 인자(사람의 아들)가 악마와의 세력투쟁에서 멋지게 승리를 거두고 최후의 심판을 하러 오시리라 여겼다. 그러나 그분은 심판 보다는 구원을...투쟁보다는 화해를... 승리의 월계관이 아니라 고통의 가시관을... 영광이 아닌 십자가를.... 그들만이 아닌 온 세상 모두에게 복음을 전하러 오셨다는 사실을 너무 싱거워서, 통쾌한 것이 없어서, 너무 억울해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세례자 요한은 오늘 감옥에 있다. 그는 제자들의 말을 듣고 자신이 미처 생각지못했던 바를 깨달았을 것이다. 그는 마침내 의심을 털고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구원의지에 승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린 어떤 감옥에 있는가? 징벌을 내릴 사람들에게 왜 구원을 베푸시는지... 용서받지 못할 사람들이 왜 아직도 잘 나가고 있는지... 왜 그들이 아니고 내가 또다시 회개해야 하는지... 억울하고 분해서 아직도 심판의 하느님, 징벌의 하느님에만 매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를 가두어놓은 그 미움의 감옥에서 나오라고 복음은 말씀하신다. 심판을 해도 내가 할 것이니 펄펄 끓는 그 불가마에서 너부터 해방되라고 오늘 복음은 외치고 있다. 만인에게 베푸는 나의 구원의지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 때가 되면 내릴 심판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하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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