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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역전과 개벽은 선택하는 자의 몫이다.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16 조회수1,108 추천수7 반대(0) 신고
 

◎ 2004년12월16일(목) - 대림 제3주간 목요일


[오늘의 복음]  루가 7,24-30

<요한은 주님의 길을 닦는 선구자로다.>


  24) 예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이 떠나 간 뒤에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었느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25)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었느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스럽게 사는 사람들은 왕궁에 있다. 26) 그렇다면 너희는 무엇을 보러 나갔었느냐? 예언자냐? 그렇다. 그러나 사실은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보았다. 27) 성서에, ‘너를 보내기에 앞서 내 일꾼을 먼저 보낸다. 그가 네 갈 길을 미리 닦아 놓으리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이 사람을 가리킨 것이다. 28) 사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그 사람보다 크다.” 29) 모든 백성들은 물론 세리들까지도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세례를 받으며 하느님의 뜻을 받아 들였으나 30)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지 않고 자기들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복음산책]  역전과 개벽은 선택하는 자의 몫이다.


  “오시기로 되어 있는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하겠습니까?”(7,20) 이 의심스런 질문은 감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이 자기 제자들을 시켜 예수께 묻게 한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비단 요한 만의 질문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을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질문이라고 했다. 사실 이 질문은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다. 예수는 분명히 세례자 요한의 시대에 그와 함께 예언자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예수가 단지 일개 예언자에 지나지 않는다면 세례자 요한의 사역(使役)은 모두 허사로 돌아갈 것이며, 따라서 이스라엘은 또 다른 특사(말라 3,1)를 기다려야 하며, 특사가 예고하는 메시아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질문은 ‘예수가 바로 메시아인가’ 하는 질문이며, 동시에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았다.”(루가 3,5.9)는 자신의 설교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질문이다.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께로부터 “너희가 듣고 본 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려라.”(7,22) 그리고,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다.”(7,23)는 대답만 받아서 돌아갔다. 사실 이 대답은 대답이라고 보기 어려운 대답이다. 이제 오늘 복음이 그 진정한 대답을 들려주고 있다. 이 대답은, 어제 복음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메시아 예수의 방식대로 이루어진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었느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24절) 그랬을 것이다. 이스라엘에 등장한 예언자가 어디 한 둘이었던가. 바람에 흔들리는 요르단 강변의 갈대만큼 흔했던 것이 예언자들이다. 사람들은 마치 갈대를 구경하듯 세례자 요한을 보러갔던 것이다.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었느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스럽게 사는 사람들은 왕궁에 있다.”(25절) 사람들의 생각에 요한이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의 길을 닦는 특사요 엘리야(말라 3,1.23)라면 그는 적어도 화려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불수레’를 타고 와야 한다. 그러나 요한은 낙타털옷에 가죽띠를 두르고 있었고, 먹는 음식이란 들꿀과 메뚜기가 전부였다. “그렇다면 너희는 무엇을 보러 나갔었느냐? 예언자냐? 그렇다. 그러나 사실은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보았다.”(26절) 이제 세례자 요한의 정체가 밝혀진다. 예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어느 예언자보다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으로 인정하시면서, 구약에 예언된 심부름꾼이요 선구자임을 확증하신다.(출애 23,20; 말라 3,1 참조) 바로 이 사람을 광야에서, 요르단강에서 사람들이 본 것이다. “사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28절)는 말씀으로 요한에 대한 확증과 칭찬은 극에 달한다.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베푼 극찬과 그의 정체성을 밝히는 일은 곧 요한이 길을 닦고 준비한 주인인 당신의 몫으로 돌아온다. 일종의 이중효과를 노리신 것이다. 이로써 구약의 시대는 끝나고 신약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요한보다 크다.”는 말씀은 구약의 그 어떤 것도 신약의 출중함을 따르지 못한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한 가지 같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언자의 운명이다. 세례자 요한의 운명이 그렇듯이 메시아의 운명도 같은 길을 갈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요한도 메시아도 구원의 길을 걷는 발에 등불이 되겠지만, 거역하는 자에게는 걸려 넘어지는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제 우리는 세례자 요한이 가졌던 의문과 갈등이 우리 모두의 것임을 알게 되었다. 세례자 요한의 사역으로 이 땅위에 계시된 메시아의 시대는 이스라엘이 생각했듯이 모두에게 균등하게 주어지는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역전(逆轉)과 개벽(開闢)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직 하느님의 뜻을 선택하는 자에게만 인생의 역전과 개벽이 있을 뿐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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