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224) 요셉 같은 사람의 죄?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19 조회수1,003 추천수9 반대(0) 신고

2004년12월19일 대림 제4주일 ㅡ이사야7,10-14;로마서1,1-7;마태오1,18-24ㅡ

 

               요셉 같은 사람의 죄?

                                              이순의

 

 

충성으로 주님을 믿는 짝궁이 아들의 생일도 지낼겸 판공성사를 보러 왔었다. 아무리 보아도 신기한 사람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는 짝궁에게 물어보았다. 고백소에 들어 가서 뭐라고 하고 시작하느냐고! 나는 짝궁이 고백소에 들어가면 뭐라고 시작을 하는지 그게 너무 궁금하다. 그런데도 꼬박꼬박 판공성사에 참례한다는 사실도 신기하고 재미나다.

 

대답은 신혼시절이나 지금이나 똑 같다. 사실에 대한 기억은 잘 하는데, 보아서 암기하는 것은 죽어도 못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것 만큼은 암기를 한 것처럼 일관적인 대답을 한다. 하느님이 머리 위에서 다 듣는디,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든 거꾸로 하든 바르게 하든 상관없이 다 알아 들으신다는 것이다. 그 말도 맞다. 고백소 안에서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면 성사를 보러 들어 가고 싶겠는가?! 

 

어쨌든지 짝궁은 성사를 마쳤다. 그런데 또 문제가 있다. 보속이 뭐냐고 물어 보았다. 빤한 질문이지만 그래도 언제나 물어본다. 역시 항상 같은 대답을 한다. 보속을 했다는 것이다. 외울 줄 아는게 한 가지도 없으므로 혼자서 보속을 했을리가 없다. 그래서 같이 해 줄려고 물어본다. 그런데 이미 보속을 마쳤다는 것이다. 또 빤하다. 그러지 말고 신부님께서 주신 보속을 같이 하자고 하면 완강히 거절을 해서 이날 이때까지 한 번도 함께 보속을 해 본 적이 없다.

 

짝궁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보속보다 더 큰 보속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 짝궁의 주장이다. 그래서 짝궁은 이미 고백소에서 죄를 고백할 때 주님께서 보속을 다 해 주셔서 자기는 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아마 짝궁이 개신교회를 다녔으면 천국은 직행일 것이다. 그래도 다그치는 쪽도 나고 패배하는 쪽도 나다. 결론은 성사는 보지만 보속은 하지 않는 짝궁이다. 쉽게 말하자면 보속을 할 줄을 모른다.

 

그래서 어느 때는 잘 구슬러서 보속을 알아낸 뒤에 짝궁도 없이 나 혼자서 <이 보속은 마르셀리노 것입니다.>라고 주님께 고하고 내가 혼자서 보속을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올 해도 고해성사는 하고 왔다. 역시 보속은 예수님께서 해 주시고(?) 짝궁은 또 먼 길을 떠났다. 성탄 미사는 가족과 함께 지내러 오겠다 하고 갔다. 나는 간혹 이런 사실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한다.

 

정작 죄를 사면 받은 본인은 룰루랄라인데 옆에서 보는 내가 고민에 사로잡혀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어느 해 부터는 보속 밀린 죄로 인한 꾸지람이 내 몫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본인이 편한데 내가 왜 괴로운 것에 집약 되어질 이유가 있는가? 그리고 본인의 믿음 대로 주님의 십자가 형벌의 보속으로 사함 받았다는 확신은 보속 때문에 다툴 이유가 아니였다. 그래서 고해를 해도 보속 때문에 맘 상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결국 내가 짝궁의 신심을 인정하는 것이 짝궁에게 보속을 권하는 것 보다 평화로운 선택이었다. 신부님께서 들으시면, 또 교회법에 따르면, 교권에 어긋나는 이기적 발상이지만 짝궁의 개념은 자칭 무지이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짝궁처럼 무지한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요구를 하신다는 변론이다. 그게 하느님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못 하겠는데 하라고 강요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지은 죄는 반성하라고 했으니 통회하고, 고백하라고 했으니 고백도 하는데, 보속은 못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교리에 세뇌 된 나는 개념적으로 짝궁보다 자유롭게 주님을 믿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리고 나 라면 멀리 지방에서 고백성사를 하려고 본당까지 올라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짝궁은 고백성사는 꼭 본당에서 해야 한다는 고집이 있다. 그래서 다른 본당에 가서는 절대로 고해성사를 보지 않는다.

 

어찌 생각하면 답답하고 미련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살아오면서 짝궁이 성요셉을 너무도 많이 닮았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누구를 해꼬지 할 마음도 없는 사람이고, 그렇다고 주저리 주저리 아는 척 할 것도 없는 사람이며, 그냥 들은바 대로 고지식하게 사는 사람이다. 그것이 고난일지라도 삶에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도 않고, 짝궁이 할 수 있는 만큼에 충실하고 만족하며 사는 요셉 같은 사람이다.

 

올 해도 잘 구슬려서 보속은 받아 놓았다. 묵주기도 다섯 단 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인지는 잘 모른다. 짝궁이 확실하게 묵주기도 다섯 단 이라고 말 한 것이 아니라 주의기도가 어떻구 묵주기도가 어떻구 횡설수설 하였기 때문에 보속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아마도 고백소에서 보속이 많다고 줄여 주시라고 했는지? 아니면 못 한다고 했는지? 보속이 늘었다 줄었다 하는 과정에서 뭘 하라고 했는지를 나는 알 길이 없다. 아무튼 신기한 사람이다.

 

그래서 무조건 묵주기도 다섯단 이라고 마음을 정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대리운전이 아니라 대리보속도 하지 않았다. 짝궁이 요셉처럼 사는 사람이라면 그대로 주님의 사랑을 받을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고운 꽃으로 대리 보속을 해 준다고 한들 고해성사도 보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이 투박한 짝궁의 마음만큼 이쁘실리가 없지를 않는가?! 그래서 내 죄도 고해하지 못 하는 사람의 불결함으로 짝궁의 깨끗한 그릇을 채우고 싶지 않아서 대리 보속을 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요셉 같은 사람의 죄를 바리사이 같은 사람의 선행으로 보속을 대신 할 수는 없었다. 아기께서 작은 고을 예루살렘에서도 방 한 칸 없는 동물의 구유에 누우신 이유를 새겨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올 해의 대림시기는 짝궁의 요셉 같은 믿음을 한 없이 부러워하며 부끄러운 번민의 성사(?)를 아직도 고해하지 못 하고 있다. 짝궁은 좋겠다. 예수님 친히 보속해 준 은덕으로다가 고해의 때를 훌훌 벗었으니 정말정말 좋겠다. 오늘 짝궁과 아들의 성사표를 적어 내면서 너무너무 부러운 마음이었다.

 

주님은 찬미를 받으소서.

 

ㅡ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마태오1,21ㅡ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