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고해CONFESSION" †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20 조회수818 추천수3 반대(0) 신고

고해성사.. 참 힘겨운 과제죠.. 누구에게나 그럴 것입니다.

 

사람의 속을 꿰뚫어보시는 예수님이 가끔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너는 진정으로 그것을 바라는가?"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죽어가는 야이로의 딸을 살리려 급한 발걸음을 걸어야하는 순간에

하혈병 여자가 옷자락을 만져 치유된 일이 있습니다.

 

만일 그분이 사람들의 육신을 치유시키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그 다급한 순간에 걸음을 멈춰, 이미 치유가 끝난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실제로 시간을 끄는 바람에 야이로의 딸은 죽었습니다-마르꼬복음)

아니 그많은 사람들 모두 그분의 옷자락이라도 만져 병을 고칠 수 있도록 내버려두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끄러워 숨기고 싶은 병에 걸린 여자의 심정은 아랑곳없이 묻고 계십니다.

여자와 인격적으로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자의 주술적인 믿음을 바로 잡아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병을 낫게 된 것은 옷자락을 만졌기 때문이 아니라 간절한 믿음 때문이며

그 믿음을 이미 그분이 알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와의 대화는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군중들에게 교육이 되기도 합니다.

 

이미 알고 있었던 그여자의 상황.

그러나 그것을 입밖으로 내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베짜다 못가에서 만난 중풍병자와도 비슷한 대화를 청하시는 예수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다 아시면서도 왜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처지를, 원하는 바를 입밖에 소리내시길 원하실까요?

 

저는 이런 것들이 고해성사와 연관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과 의사, 심리 치료사는 환자의,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돈을 내고 그들을 만났으면 속시원한 소리를 해줄 줄 알지만,

예상외로 그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들어주는 것이 주된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슨 말입니까?

내담자들은 자기의 머리 속에 머무는 생각으로가 아니라, 그 생각들, 기억들이 입밖으로 표현되어 나오는 과정에서 이미 치유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의 주님도 그러하십니다.

그분이 이미 다 알고 있는 우리의 실수. 잘못.

우리가 이미 인식하고 있는 우리의 죄. 잘못.

 

그러나 그것을 입밖으로 내는 과정에서 이미 그분 안에서 치유를 받고 있는 것이며

고해하고 있는 과정에서 뜻밖의 미처 인식하지 못하던 죄와 잘못까지 딸려올라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것이 나와 비슷한 이웃집 아낙이나 친구들이 아니라

정신과 의사, 심리 치료사라는 전문가 앞이라면 보다 신뢰할만한 효과를 얻을 수 있겠지요.

 

인간적인 전문가앞에서도 그러할진대, 

전능하신 하느님 앞이라는 그 믿음 아래서 행해지는 고해라면

정신과 육신의 치유 뿐만이 아닌, 보다 근원적인 영혼의 씻김과 평안을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만 정신적, 심리적 효과일 뿐이라고 믿지 않는 믿음이 전제한다면 말이죠.

 

저는 옛날 개신교에서... 통회(그것이 상등통회인지는 모르나...)와 혼자하는 여러가지 보속(?)도 거쳐봤습니다. 가톨릭처럼 절차에 따라 어떤 사람(?) 앞에서 자신의 쑥스러운 죄를 알려야하는 번거로움과 민망함이 없어 편리한 잇점은 분명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성전으로 주님께 홀로 찾아가 혼자 통회하고 혼자 자선이나 선행을 하리라고 결심하고 혼자 죄를 사함 받았다고 믿고 나오는 것은 과연 주님과 더욱 빨리 가깝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여러번 그러다 보니, 한편 마음 안에 의심이 쌓여갑니다. 아무리 잘하려해도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없듯이 그러한 무수한 죄 속에서 매번 염치없이 찾아가 혼자 울고 혼자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오면 될 것인가? 어떻든 그런 방식에도 분명 석연치않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물론 너무 어려운 절차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때문에 기쁨이 없는 신앙생활, 결국엔 떨어져나가는 신앙생활이 되어가는 것도 문제가 되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려운 발걸음을 떼어 고해실로 찾아가는 그 행위에서 벌써 치유와 용서는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부끄러워하는 여자의 입을 굳이 열어 사람들에게 드러내놓으시는 그분의 마음이 바로 그런 것일 것입니다.

 

이제 그 여자는 더이상 부끄러운 사람이 아닙니다. 정결법에서 말하는 부정한 여인에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여자는 치유 능력을 훔쳤다는 또 다른 죄의식에서도 해방될 것입니다. 당당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그것이 여인에게 주고 싶었던 주님의 선물이 아니었을까요?

 

우리가 입밖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낼 때, 뜻밖의 소득이 있는 것을 경험합니다.

자신만의 옹졸함과 편견에 사로잡혀있을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기특하고 대견스러운 말에 자신도 놀랍니다. 난마같이 얽혀있는 복잡한 생각들이 입밖으로 빠져나오면서 차분하게 정리되고 뜻밖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던 경험도 많습니다.

 

바로 그래서 입밖으로 나의 생각, 실수, 결심들을 내놓는 것은 그 자체로써 화해와 용서와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잡다하게 얽혀있는 난장판에서 속속 나 자신을 해방시키는 과정인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적, 심리적, 영혼의 이득 외에도

예수께서 여인과 행하는 대화를 주위 사람에게 하나의 교육의 소재로 삼았듯이 

고해성사가 우리에게 가르치려는 것은 또한 신앙인의  기본 자세입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잘못들을 누군가에게 고백한다는 것은 겸손인 것입니다.

나만 잘못한 게 아니라고 분노하지 않고,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변명하지 않고, 내가 어떻게든 해결하겠다고 자만하지않는 낮아짐, 순종, 비움.

 

그렇습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그러한 신앙인의 기본 자세를 갖추고 텅 비워진 이들에게

주님은 해방, 자유, 평화, 기쁨을 가득 담아주시려는 것이 아닐까요?

 

이제 각 성당에서 판공성사는 거의 끝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탄이 끝나도 고해 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남아 있습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