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팡파레~~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23 조회수1,295 추천수1 반대(0) 신고
독서: 말라 3,1-4 23-24
복음: 루가 1, 57-66


세례자 요한은 이웃과 친척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떠들썩한 축하를 받으며 태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늙은 부부 즈가리야와 엘리사벳에게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의 결과를, 
즉 하느님의 업적을 눈앞에 보러, 온 산골 마을의 이목이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주께서 엘리사벳에게 놀라운 자비를 베푸셨다는 소식을 듣고 
온 마을이 기뻐하는 기쁨의 축제 안에서 온전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한 명이 있었으니 바로 아버지 즈가리야였다. 

기다리던 아기가 태어나고 사람들은 주님께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차 있어도, 
정작 기쁨의 환호를 가장 먼저 올려야 할 즈가리야는 단 한마디도 못하는 
그야말로 '벙어리 냉가슴 앓는' 고통을 치르고 있었다. 

여드레가 되던 날, 아기의 할례식에 사람들은 다시 모였고, 
아기의 이름은 관례대로 아버지의 이름을 딴 '즈가리야'로 명명하려했다. 

그러나 이 아기에게는 이미 주님이 지어주신 이름이 있었다. 
즈가리야가 서판에 '요한'이라고 이름을 써서 사람들에게 보이는 순간, 
드디어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게 되었다 한다. 

즈가리야의 입에서 최초로 터져 나온 말이 무엇이었을까? 
'하느님 찬미'였다고 복음서는 기록하고 있다. 

가브리엘 천사가 아기의 잉태소식을 예고해준 그 순간에 터져나와야 했던 '찬미'가 
무려 열달 하고도 여드레가 지나서야 간신히 나온 것이다. 

그동안 엘리사벳의 몸의 변화를(요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보여졌을 징표다!) 바라보면서 
즈가리야는 무슨 생각이 떠올랐을까? 

사제라는 신분이면서도 천사의 말 속에 들어있던 '기쁜 소식'을 몰랐던 즈가리야는
요한이 태내에 있었던 그 열달하고도 여드레 동안 침묵 속에서
깊은 회한과 사색을 통해 주님의 뜻을 깨달아 갔다.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마을 사람들은 "이 아기가 장차 어떤 사람이 될까?"하고 궁금해했지만 
이 늙은 아버지는 그제야 주님의 업적과 그분이 주신 아기의 참된 정체를 
'즈가리야의 찬미가' 안에 듬뿍 담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즈가리야의 찬미가는 오늘 복음 다음 대목이다.) 

성무일도 중 아침기도로 바치는 '즈가리야의 노래'의 전반부는(68-75절) 
먼저 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셨던 일, 
즉 당신이 친히 백성을 돌보시고 찾아오시겠다는 약속의 실현으로써 
구세주를 보내주신 업적을 찬양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후반부(76-79절)는 바로 가브리엘 천사가 요한에 관해 들려주었던 이야기 
즉, 요한이 장차 주님의 선구자로 주의 길을 닦고 
주님의 구원을 백성들에게 알리는 사람이 될 것임을 노래하고 있다. 

바로 오늘 독서인 말라기 예언자가 예언한 대목이다.
일찌기 말라기 예언자는 
'어른들의 마음을 자식들에게, 자식들의 마음을 어른들에게 돌려 화목하게 해줄'
엘리야의 정신과 모습의 특사가 주님이 오실 행찻길을 닦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즈가리야에게 전한 가브리엘 천사의 전언이 바로 그말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즈가리야의 노래' 중에서 즈가리야의 고통과 침묵의 세월을 
가장 애절하게 함축하고 있는 부분은 늙은 아버지가 갓난 아들을 보고 부르는 
"아가야!" 그 한마디가 아니었을까? 

얼마나 그 말을 하고 싶었을까? 
일평생에 걸친 염원이다. 
아내의 불룩해지는 배를 쳐다보며 마음 속으로 애타게 부르고 싶고, 
태어나자마자 부르고 싶었던 첫마디였을 것이다. 

게다가 이 아기는 그저 즈가리야 개인의 소원을 충족시켜줄 그런 아기도 아니다. 
자신의 소원만이 아니라 민족의 염원한 그런 아기였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무지를 한탄하며, 자신의 불신앙을 회개하며, 주님께 죄송함을 느끼며, 
억장이 무너지는 "아가야" 였을 것이다. 

이런 일을 이루어주시는 하느님은 대체 어떤 분이신가? 
즈가리야는 찬미한다.

'떠오르는 태양이 높은 데서 우리를 찾아오게 하시고, 
어둠과 죽음의 그늘 밑에 앉아있는 이들을 비추시며,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시는'(78-79절) 그런 하느님이시다. 

즈가리야의 어둠과 죽음의 그늘도 이젠 끝이 났듯이, 
온 민족에게도, 온 세상 사람에게도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의 빛이 찾아오는, 
평화의 날들이 시작된 것이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의 의미는 그 역사적인 날을 알리는 팡파르이다. 
본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광야에서 표효하는 사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성탄이 목전에 다가왔다. 
주님의 특사 세례자 요한이 울리는 팡파르도 이미 울려퍼진다.
이제 평화의 날들이 시작되었다. 
기쁨의 때를 맞이하자! 
주님께 찬미 드리자!
 
♬ 안티폰, Laus Deo Patri(성부께 찬양을), Laudate Pueri(종들아 찬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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