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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가정은 빨래줄 안테나 (성가정축일)
작성자이현철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25 조회수1,595 추천수9 반대(0) 신고
 

                            성가정은 빨래줄 안테나 (성가정축일)


  십자가를 안테나로!

  수년 전, 미국 시애틀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바이올린 연주자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어느 자매님댁에 제가 며칠 머무르게 되었는데, 그분이 제게 이런 부탁을 하였습니다.

  “신부님, 미안하지만 제가 바닥에 좀 누울께요. 양해해주세요...”하며 자신의 지병인 허리통증으로 인해 손님인 신부가 왔는데도 응접실바닥에 누워야하는 처지를 하소연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얼마 전에 4째 아이를 가졌답니다. 50살을 바라보는 늦은 나이에, 그리고 치매끼가 있는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처지에, 그리고 수년 간 장염을 앓고 있는 남편 등...모든 상황이 도저히 그 아이를 낳을 수가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기적이 그 집안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아이를 낳자, 그렇게 아프던 허리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고, 또 남편의 병도 나았고, 또 친정어머니도 그 아이를 돌보신다고 정신이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분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바이올린으로 성가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아이라는 복덩어리가 그 집에 굴러들어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늘 복음(마태 2, 13- 15. 19-23)에서 성가정은 자신의 왕좌를 빼앗길까봐 아기를 모조리 살해하라는 명을 내린 헤로데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을 합니다. 그리고 요셉은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이미 죽었으니, 일어나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라’하고 꿈에서 일러준 주의 천사의 말을 듣고 실천을 합니다.

  

   20여년 전, 마리아수녀회에서 제작한 ‘침묵의 절규’등의 비디오자료를 본 기억이 납니다. 임신 수개월이 된 태아가 자신을 제거하려는 흡입기를 피해 도망다니며 절규하는 끔찍한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실제로 어느 미혼모가 산부인과에 낙태하러왔다가 그 비디오를 보고 아기를 낳아 모 입양원에 맡긴 일도 있다는군요. 그리고 한국에서는 산부인과가 정상분만보다 더 수익성(?)이 있는 낙태시술을 많이 한다지만 미국에서는 낙태시술을 하던 어느 산부인과 의사가 생명을 존중하는 어느 단체의 회원에게 사살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무고한 아이들을 대량학살한 헤로데왕은 분명 죽었는데 아직도 많은 아기들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부모(진정 부모자격이 있는지?)들을 피해 도대체 어디로 피신해야한단 말입니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5월, 낙태반대의 상징이 된 ‘잔나 베레타 몰라’에게 성녀칭호를 부여하는 시성식(諡聖式)을 주재하셨습니다. 1962년 자궁암 진단을 받은 베레타 몰라는 계속 임신하면 목숨이 위태롭다는 의사들의 임신중절 권유를 거부하고 자연분만으로 네 번째 아기를 출산한 후 39세의 나이로 숨졌습니다. 이 시성식에서 교황님께서는 그녀의 ‘극진한 희생’과 소박하면서도 심오한 ‘생명존중’의 메시지를 칭송했습니다.


   가정성화를 위해 우리 가족 모두가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  가정이란 옷의 그 첫 단추는 바로 생명존중인데  그 첫 단추가 이미 잘못 끼워진 것은 아닐까요? 오늘 제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사랑과 평화로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완전하게 하라’(골로3, 14-15참조)라고 하셨는데 ‘가정의 행복은 빨래줄’이라고 재미있게 표현하신 박상대신부님의 강론과  카릴 지브란의 시를 참고로 퍼드립니다. 가브리엘통신


                                        <가정의 행복은 빨래줄>


   예수성탄 팔일축제 넷째 날인 12월 28일 오늘, 일요일이 아니라면 교회는 "무죄한 아이들의 순교 축일"을 지낸다. "유다인의 왕"으로 태어난 예수의 존재를 두려워 한 나머지 헤로데 대왕이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2살 이하의 아무 죄가 없는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버렸기 때문이다.(마태 2,2.16-18)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교회는 오늘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을 지낸다. 예수아기가 탄생함으로써 요셉과 마리아가 이루는 하나의 가정! 단지 몇 사람의 눈을 제외하고는 겉으로 보기에 이 가정은 다른 여느 가정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이 가정은 성가정(聖家庭)이다. 그렇다고 마리아와 요셉이 스스로 자신의 가정을 성가정으로 선포한 적은 없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가정이 성가정인 이유는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아기의 잉태와 탄생을 놀라움과 기쁨, 순명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이 이루는 가정 안에 스며있는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헤아리며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가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정이 없으면 사회도 국가도 없고 인류도 없으며, 문화도 문명도 종교도 없다. 사람의 모든 것은 가정을 뿌리로 성립된다. 가정은 분명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인간적 제도이지만, 동시에 거룩한 천륜(天倫)을 따라 이루어진 신적(神的) 제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모든 가정은 인간적 사랑과 신적 질서로 표현된다. 질서 없는 사랑은 쾌락이 될 뿐이며, 사랑이 없는 질서는 잔인할 뿐이다.

  사랑과 질서는 마치 빨래줄을 팽팽하게 유지시키는 양쪽 기둥과도 같은 것이다. 모든 가정이 추구하는 행복을 이 빨래줄에 비긴다면 줄이 팽팽해야 빨래를 걸어 말릴 수 있듯이 행복의 구체적인 요소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다. 가정이 행복해야 사회가 행복해지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다. 이 점에 대하여는 오늘 미사의 독서가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집회 3,3-17; 골로 3,12-21)

  그런데 우리 사회는 참으로 암담하다. 그 이유는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분명히 각각의 가정에도 있다. 대한민국 통계청이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2003년 올해 국민들의 양적인 삶은 개선됐지만 질적 수준은 양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출산율이 현저하게 저하되고 수명연장으로 인한 고령화 추세 속에서 2003년 7월 한국의 전체인구는 4792만 5000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65세 이상 노년층은 8.3%로 2002년보다 0.7% 증가했다. 생산가능연령층(15∼64세) 대비 노인층 비율은 11.6%로 인구 100명이 노인 11.6명을 부양하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출산율은 2002년 1.17명으로 2001년보다 0.13명 줄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1인당 국민소득은 2002년 기준 1만 13달러(약 1192만원), 소비지출은 753만2000원으로 추산되었는데, 이는 2001년에 비하여 소득은 11.2%, 소비는 9.3% 증가한 것이다. 그런데 소비구조를 보면 60%가 서비스부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서비스 부분의 지출이 총지출의 반을 넘는다는 사실은 사회의 기본이 되는 가정이 개인중심주의로 급격히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가정이 그에 속한 구성원 개인의 소비력을 감당하지 못하면 쉽게 파산될 수 있다는 말이다.

  2002년 한해동안 우리나라에는 30만 6000쌍이 결혼하여 그 절반에 이르는 14만 5000쌍이 이혼했다고 한다. 결혼이 있으며 이혼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절반이 넘는다면 모든 가정이 위험 수위에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혼사유로 1992년 1,9%에 불과했던 경제문제가 10년만에 13.7%로 급증했다는 것은 돈 때문에 두 가정 중 한 가정이 이혼으로 무너졌다는 것이다.


   가정의 본질과 의미가 우리나라에서 이토록 심하게 무너지는 책임소지를 따지기보다 우리 가정이 먼저 가정의 본질과 의미를 새롭게 해야 한다. 가정의 행복을 지켜주는 질서와 사랑을 다시금 점검해보아야 한다. 가정의 행복이 물질의 풍요에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먼저 가정이 신적 질서에 의해 거룩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며, 인간적 사랑 때문에 아픔과 갈등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오늘은 우리가 비록 가난하고 구차한 가정이었지만,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며, 각자가 서로를 위해 오직 존재한다는 사랑으로 살아가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보고 배워야 할 것이다. (박상대신부)

 

 

사랑을 지켜가는 아름다운 간격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 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

- 칼릴 지브란-


주: 다이폴 안테나를 일명 ‘빨래줄’이라고도 합니다. 이 빨래줄 안테나는 아주 단순하지만 성능은 만점이지요. ‘십자가도 안테나’이지만 우리가 이루는 ‘성가정도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훌륭한 안테나’입니다. 가족들이 적당한 길이 즉 아름다운 간격을 유지하여 멋진 안테나를 만들어봅시다.^^* 가브리엘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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