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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사랑과 질서로 엮어가는 가정의 행복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26 조회수1,422 추천수5 반대(0) 신고
 

◎ 2004년12월26일(일) -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대축일


[오늘의 복음]  마태 2,13-15.19-23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


  13) 박사들이 물러간 뒤에 주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어서 일어나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알려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하고 일러 주었다. 14) 요셉은 일어나 그 밤으로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서 살았다. 이리하여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내가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9) 헤로데가 죽은 뒤에 주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20)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이미 죽었으니 일어나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라.” 하고 일러 주었다. 21) 요셉은 일어나서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다. 22) 그러나 아르켈라오가 자기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리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다시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래아 지방으로 가서 나자렛이라는 동네에서 살았다. 23) 이리하여 예언자를 시켜 “그를 나자렛 사람이라 부르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복음산책]  사랑과 질서로 엮어가는 가정의 행복


  예수의 탄생은 로마황제의 호구조사령이 내려진 가운데 유다 베들레헴의 어느 마구간에서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마구간과 한낱 포대기에 싸여 말구유에 뉘어진 아기 예수, 그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 이들은 하느님의 기이한 방법으로 이제 한 가족이 되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한 무리의 목동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마리아는 자신의 마음 속 깊이 새겨 간직하고(루가 2,1-20), 요셉은 이 엄청난 일을 앉아서 당하다시피 했으니 그 혼란스러움이 가히 짐작된다. 루가복음은 그저 요셉의 이름만 등장시킬 뿐, 마태오복음이 그나마 이 엄청난 일의 이유를 설명한다. 그것도 모든 것이 잠을 자는 꿈속에서 설명되니 요셉의 상태는 비몽사몽(非夢似夢) 간이었을 것이다. 요셉은 꿈속에서 약혼녀 마리아의 잉태사실을 통보받았고, 그래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마태 1,20.24).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동방에서 온 박사 셋이 다녀가자 또 꿈을 통해 헤로데의 살인극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 갈 것을 지시받고(13절), 헤로데 대왕이 죽은 다음 이스라엘 땅으로 다시 돌아갈 것(20절)과, 후계자 아르켈라오를 두려워하는 요셉을 배려하여 갈릴래아 나자렛으로 갈 것(22절)을 지시받는다.


  오늘 복음에는 헤로데 대왕이 미래 자신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과 그 주변의 아기들을 학살하는 대목(2,16-18)은 의도적으로 생략되어 있지만, 전체적 구상은 구약의 모세가 파라오의 살인극으로부터 구사일생(九死一生)하는 대목과 매우 흡사하다.(출애 2-4장) 구약성서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성조들이 당면한 어려움을 피하기 위한 장소로 자주 이집트를 택했다.(창세 12,10-20; 46.1-7) 뿐만 아니라 마태오복음사가는 이스라엘이 모세의 영도 하에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으로 개선하는 출애굽의 사건을 오늘 복음의 배경에 둠으로써 하느님의 인류구원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에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은 나름대로 자신에게 할당된 몫을 수행하였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의 인류구원역사는 나자렛의 한 가정에서 그 구체적인 시작을 보게 된 것이다.     


  아기 예수가 탄생함으로써 요셉과 마리아가 꾸려나가는 하나의 가정, 나자렛의 이 가정은 겉으로 보기에 다른 여느 가정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안을 들여다보면 이 가정은 성가정(聖家庭)이다. 그렇다고 마리아와 요셉이 스스로 자신의 가정을 성가정으로 선포한 적은 없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가정이 성가정인 이유는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아기의 잉태와 탄생을 놀라움과 기쁨, 순명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이 이루는 가정 안에 스며있는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헤아리며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가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정이 없으면 사회도 국가도 없고 인류도 없으며, 문화도 문명도 종교도 없다. 사람의 모든 것은 가정을 뿌리로 성립된다. 가정은 분명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인간적 제도이지만, 동시에 거룩한 천륜(天倫)을 따라 이루어진 신적(神的) 제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모든 가정은 인간적 사랑과 신적 질서로 표현된다. 질서 없는 사랑은 쾌락이 될 뿐이며, 사랑이 없는 질서는 잔인할 뿐이다. 사랑과 질서는 마치 빨래 줄을 팽팽하게 유지시키는 양쪽 기둥과도 같은 것이다. 모든 가정이 추구하는 행복을 이 빨래 줄에 비긴다면 줄이 팽팽해야 빨래를 걸어 말릴 수 있듯이 행복의 구체적인 요소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다. 가정이 행복해야 사회가 행복해지는 것은 당연한 결론이다. 이 점에 대하여는 오늘 미사의 독서가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집회 3,3-17; 골로 3,12-21)


  그런데 우리 사회는 참으로 암담하다. 그 이유는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분명히 각각의 가정에도 있다. 대한민국 통계청이 2003년에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국민들의 양적인 삶은 개선됐지만 질적 수준은 양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산율이 현저하게 저하되고 수명연장으로 인한 고령화 추세 속에서 2003년 7월 한국의 전체인구는 4792만 5000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65세 이상 노년층은 8.3%로 2002년보다 0.7% 증가했다. 생산가능연령층(15-64세) 대비 노인층 비율은 11.6%로 인구 100명이 노인 11.6명을 부양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출산율은 2002년 1.17명으로 2001년보다 0.13명 줄어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1인당 국민소득은 2002년 기준 1만 13달러(약 1192만원), 소비지출은 753만2000원으로 추산되었는데, 이는 2001년에 비하여 소득은 11.2%, 소비는 9.3% 증가한 것이다. 그런데 소비구조를 보면 60%가 서비스부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서비스 부분의 지출이 총지출의 반을 넘는다는 사실은 사회의 기본이 되는 가정이 개인중심주의로 급격히 바뀌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곧 가정이 그에 속한 구성원 개인의 소비력을 감당하지 못하면 쉽게 파산될 수 있다는 말이다. 2002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는 30만 6000쌍이 결혼하여 그 절반에 이르는 14만 5000쌍이 이혼했다고 한다. 결혼이 있으며 이혼이 있을 수도 있지만 절반이 넘는다면 모든 가정이 위험 수위에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혼사유로 1992년 1,9%에 불과했던 경제문제가 10년 만에 13.7%로 급증했다는 것은 돈 때문에 두 가정 중 한 가정이 이혼으로 무너졌다는 것이다.


  가정의 본질과 의미가 우리나라에서 이토록 심하게 무너지는 책임소지를 따져 누구의 탓으로 돌리거나 변명을 할 필요는 없다. 우리 가정이 먼저 가정의 본질과 의미를 새롭게 해야 하여 이를 구현해야 한다. 가정의 행복을 지켜주는 질서와 사랑을 다시금 점검해보아야 한다. 가정의 행복과 궁극적인 목적이 물질의 풍요에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먼저 가정이 신적(神的) 질서에 의해 거룩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며, 인간적 사랑 때문에 아픔과 갈등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오늘 우리 가정이 비록 물질적으로 빈곤하고 정신적으로 어렵다 할지라도 그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며, 각자가 서로를 위해 오직 존재한다는 사랑으로 살아가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보고 배워야 할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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