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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2월 27일 『야곱의 우물』- 빈 무덤 ♣
작성자조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27 조회수1,204 추천수6 반대(0) 신고
     
    ♣빈 무덤♣
    
    [요한 20,2-8]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달음질을 
    하여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에게 가서 
    "누군가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갔습니다.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알려주었다. 
    
    이 말을 듣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곧 떠나 무덤으로 향하였다. 두 사람이 같이 달음질쳐 갔지만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 먼저 무덤에 다다랐다.그는 몸을 굽혀 수의가 흩어 져 있는 것을 보았으나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곧 뒤따라온 시몬 베드로가 무덤 안에 들어가 그도 역시 수의가 흩어져 있지 않고 따로 한 곳에 잘 개켜져 있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 솔직히 고백해야겠다. 이 본문이 날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보고 또 보고,읽고 또 읽어도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없는 답답함에 몇 번이나 열었다 덮었다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사도 요한의 축일이라는 것이 낯설고 생소한 개신교 신자인 , 예수 탄생 본문 이후에 부활 본문이라니 투덜대며 말씀 을 달가워하지 않은 나를 보며 이른바 열려 있다고 하면서 닫혀 있는 부끄러운 나를 보고서야 말씀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기다렸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 요한이 보이기 시작했다. 요한의 몸짓을 통해 나는 서서히 요한이 되어갔다. 그리고 만났다. 새로운 나의 탄생을.
    "나는 빈 무덤 안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서 주님을 꺼내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리 놀라지 않았습니다.
    나는 주님이 다시 살아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당신 어머니에게 나를 아들로, 내게 주님의 어머니를 내 어머니로 삼으셨을 때 나는 새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나는 요한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로 살아 가도록 이미 부름을 받아 내 안으로 주님이 들어오셨기 때문 입니다. 흩어진 수의를 보았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은 모두 달려와 빈 무덤에 들어 갔습니다만 나는 빈 무덤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내 안에 살아 계셨고, 나는 무덤 밖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신 줄 모르고 나는 아직도 빈 무덤을 찾곤 하는 내 모습을 요한을 만나면서 발견했다. 주님, 제가 당신 으로 태어나게 하소서. 당신을 낳게 하소서. 아멘. 『야곱의 우물』 《매일성서묵상》에 나오는 12월 27일자 《새터 교회》 박 후임 목사님의 글입니다. *^^*
    【 묵 상 나 누 기 】
    
    † 잡힌 바 된 앗!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로 살아가도록 이미 부름을 받아 
    내 안으로 주님이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묵상 글을 따라서 앗! 나도 솔직히 고백을 해야겠습니다.*^^*
    21일 부터 시작된 목사님의 말씀이 어찌나 깊으시던지/오히려
    흠집이 생길 것 같아 조심스럽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할 말
    이 너무 많아서 써내려갈 수가 없었습니다.말을 잃은게지요..
    
    오늘도 수 없이 읽었습니다. 성서말씀보다 묵상 글귀를 붙잡고 늘어졌습니다.목사님처럼 사도 요한을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만 내가 어디에 서 있으며, 내가 달려가야 할 목표는 보았습니다.
    목표라고 하면 보통 앞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골인점 을 향하여 운동 경기자가 달리듯이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앗!나의 목표는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 있습니다. [필립비 3, 12-14] 나는 이 희망을 이미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달음질칠 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붙드신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그것을 이미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면서 목표를 향하여 달려 갈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를 부르셔서 높은 곳에 살게 하십니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며 내가 바라는 상입니다. 신교에서 사용하는 성경말씀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빌립보서 3: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賞)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앗! 나와 앗! 너가 처음 주님 앞에 부름을 받았을 그 때. 주님께 잡힌 바 된 그 사건 때문에 나의 목표는 달라졌습니다. 하느님을 만난 후에,나의 달려가던 길에서 궤도수정을 해야만 했던 바로 십자가 사건 때문에 앗!나는 지금도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표가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 있는 것입니다.^^ 이미 부름 받은,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부름의 상급을 위하여 달음질 치는 것입니다.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렵니다.
    우리의 삶에서 선택을 해야 되는 경우가 있다면 갈등을 버리고 주님을 위하여 나아가겠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해봅니다. 무엇 을 위하여 살아왔던 365일이었는지...옷깃을 여며봅니다. 부끄 럽고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지만 다행이 새앙쥐가 안보이네요^^
    새해에는 빈 무덤에서 덜 서성거리도록 하겠습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 앞에서 '나날이 하느님을 호흡하며...' 살아가도록 애써보고자 오늘도 다짐을 해봅니다.
    ♬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 라는 곡을 따라 불러보십시다. 가야 할 신앙의 여정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가파른 고개를 힘겹게 넘어왔는데 또 복병이 숨어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주님과 함께 순간순간 그분께 의지하면서 나아갈 수 있으니 힘들지 않습니다. 1.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내앞에 어려운일 보네 주님앞에 이몸을 맡길때 슬픔없네 두려움 없네 주님의 그 자비로운 손길 항상 좋은 것 주시도다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수고와 평화와 안식을
    2.날마다 주님 내곁에 계셔 자비로 날 감싸주시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힘주시네 위로하시네 어린 나를 품에 안으시어 항상 평화를 주시도다 내가 살아 숨을 쉬는 동안 살피신다 약속하셨네
    3.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주의 약속 생각해보네 내맘 속에 믿음 잃지않고 말씀 속에 위로를 얻네 주님의 도우심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 이기도록 흘러가는 순간순간 마다 주님 약속 새겨 봅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안나가요*^^* 《 소스입니다. 필요한 부분들만 양념하셔서 나눠가지셔요. 》 <ul><img src=http://www.cdmb.co.kr/pds/004/10/j160.JPG>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2pt"> <IMG src="http://multiel.com/hkr610/xmas/anim4/angel_right_md_clr.gif"><b>♣빈 무덤♣</b><IMG src="http://multiel.com/hkr610/xmas/anim3/angel_left_md_clr.gif"> <FONT color=green style="FONT-SIZE: 11pt"> <b>[요한 20,2-8]</b><FONT color=red style="FONT-SIZE: 10pt">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는 달음질을 하여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에게 가서 "누군가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갔습니다.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알려주었다. <br> 이 말을 듣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곧 떠나 무덤으로 향하였다. 두 사람이 같이 달음질쳐 갔지만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 먼저 무덤에 다다랐다.그는 몸을 굽혀 수의가 흩어 져 있는 것을 보았으나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br> 곧 뒤따라온 시몬 베드로가 무덤 안에 들어가 그도 역시 수의가 흩어져 있지 않고 따로 한 곳에 잘 개켜져 있었다. <u>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u>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솔직히 고백해야겠다. 이 본문이 날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보고 또 보고,읽고 또 읽어도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없는 답답함에 몇 번이나 열었다 덮었다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br> 사도 요한의 축일이라는 것이 낯설고 생소한 개신교 신자인 <b>나</b>, 예수 탄생 본문 이후에 부활 본문이라니 투덜대며 말씀 을 달가워하지 않은 나를 보며 이른바 열려 있다고 하면서 닫혀 있는 부끄러운 나를 보고서야 말씀에 들어설 수 있었다. <br> 그리고 기다렸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 요한이 보이기 시작했다. 요한의 몸짓을 통해 나는 서서히 요한이 되어갔다. 그리고 만났다. 새로운 나의 탄생을. <br> "나는 빈 무덤 안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서 주님을 꺼내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리 놀라지 않았습니다. <br> 나는 주님이 다시 살아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당신 어머니에게 나를 아들로, 내게 주님의 어머니를 내 어머니로 삼으셨을 때 나는 새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br> 나는 요한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로 살아 가도록 이미 부름을 받아 내 안으로 주님이 들어오셨기 때문 입니다. 흩어진 수의를 보았습니다. <br>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은 모두 달려와 빈 무덤에 들어 갔습니다만 나는 빈 무덤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내 안에 살아 계셨고, 나는 무덤 밖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br> 주님이 내 안에 계신 줄 모르고 나는 아직도 빈 무덤을 찾곤 하는 내 모습을 요한을 만나면서 발견했다. 주님, 제가 당신 으로 태어나게 하소서. 당신을 낳게 하소서. 아멘.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야곱의 우물』 《매일성서묵상》에 나오는 12월 27일자 《새터 교회》 박 후임 목사님의 글입니다. *^^* </b> <br> <EMBED src=http://myhome.naver.com/pinokeeo1004/1/angel71.swf width=150 height=10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b>【 묵 상 나 누 기 】</b> <pre><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 잡힌 바 된 앗! <b>나</b>와 <b>너</b> † <FONT color=brown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로 살아가도록 이미 부름을 받아 내 안으로 주님이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b>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묵상 글을 따라서 앗! 나도 솔직히 고백을 해야겠습니다.*^^* 21일 부터 시작된 목사님의 말씀이 어찌나 깊으시던지/오히려 흠집이 생길 것 같아 조심스럽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할 말 이 너무 많아서 써내려갈 수가 없었습니다.말을 잃은게지요.. <br> 오늘도 수 없이 읽었습니다. 성서말씀보다 묵상 글귀를 붙잡고 늘어졌습니다.목사님처럼 사도 요한을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만 내가 어디에 서 있으며, 내가 달려가야 할 목표는 보았습니다. <br> 목표라고 하면 보통 앞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골인점 을 향하여 운동 경기자가 달리듯이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앗!나의 목표는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 있습니다. <FONT color=red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필립비 3, 12-14]</b> 나는 이 희망을 이미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달음질칠 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붙드신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br> 형제 여러분, 나는 그것을 이미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면서 목표를 향하여 달려 갈 뿐입니다. <br>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를 부르셔서 높은 곳에 살게 하십니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며 내가 바라는 상입니다.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신교에서 사용하는 성경말씀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FONT color=blue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빌립보서 3:12-14]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b>잡힌 바 된 그것을</b>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br>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br>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賞)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1pt"> 앗! 나와 앗! 너가 처음 주님 앞에 부름을 받았을 그 때. 주님께 잡힌 바 된 그 사건 때문에 나의 목표는 달라졌습니다. 하느님을 만난 후에,나의 달려가던 길에서 궤도수정을 해야만 했던 바로 십자가 사건 때문에 앗!나는 지금도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br> 그래서 목표가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뒤에 있는 것입니다.^^ 이미 부름 받은,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부름의 상급을 위하여 달음질 치는 것입니다.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렵니다. <br> 우리의 삶에서 선택을 해야 되는 경우가 있다면 갈등을 버리고 주님을 위하여 나아가겠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해봅니다. 무엇 을 위하여 살아왔던 365일이었는지...옷깃을 여며봅니다. 부끄 럽고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지만 다행이 새앙쥐가 안보이네요^^ <br> 새해에는 빈 무덤에서 덜 서성거리도록 하겠습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 앞에서 '나날이 하느님을 호흡하며...' 살아가도록 애써보고자 오늘도 다짐을 해봅니다. <br> ♬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 라는 곡을 따라 불러보십시다. 가야 할 신앙의 여정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가파른 고개를 힘겹게 넘어왔는데 또 복병이 숨어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주님과 함께 순간순간 그분께 의지하면서 나아갈 수 있으니 힘들지 않습니다. <FONT color=000086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1.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내앞에 어려운일 보네 주님앞에 이몸을 맡길때 슬픔없네 두려움 없네 주님의 그 자비로운 손길 항상 좋은 것 주시도다 사랑스레 아픔과 기쁨을 수고와 평화와 안식을 <br> 2.날마다 주님 내곁에 계셔 자비로 날 감싸주시네 주님 앞에 이 몸을 맡길 때 힘주시네 위로하시네 어린 나를 품에 안으시어 항상 평화를 주시도다 내가 살아 숨을 쉬는 동안 살피신다 약속하셨네 <br> 3.인생의 어려운 순간마다 주의 약속 생각해보네 내맘 속에 믿음 잃지않고 말씀 속에 위로를 얻네 주님의 도우심 바라보며 모든 어려움 이기도록 흘러가는 순간순간 마다 주님 약속 새겨 봅니다 <FONT color=#005e77 face=돋음체 style="FONT-SIZE: 10pt"> <b>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 <IMG src="http://iconnara.pe.kr/iconpage/graphic/xmas/icon_xmas_ring09.gif"> 안나가요*^^*</b> <embed src="http://www.najumary.or.kr/maria/song3/03%20날마다%20숨쉬는%20순간마다.wma" autostart="true" hidden="true" loo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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