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 처음의 사랑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31 조회수975 추천수5 반대(0) 신고
성탄 팔일축제 내 제7일 금요일(12/31)






    성탄 팔일 축제 내 제7일 말씀 (요한 1,1-18) 독서: 요한 1서 2,18-21 복음: 요한 1,1-18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찬미가이다. 요한복음사가는 왜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하였을까? 사람들은 왜 말을 할까? 자신을 전달하고 싶고 상대의 마음을 알아듣고 싶어서다 전달하는 수단은 몸짓, 표정, 여러 신호들(동물의 울음소리 처럼)도 있는데 왜 인간은 어쩌다가 이렇게 복잡한 언어(말)를 사용하게 되었을까? (그렇지 않았다면 외국어를 배우려 고생하지않아도 되었을텐데...^^) 말을 배우려 고생스럽긴 하지만 언어야말로 인간의 위대성을 증명하는 도구이다. 언어가 있음으로 문명이 있고, 심오한 사상이 있고, 다양한 예술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언어는 다른 모든 표현 수단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보다 확실하게 정립하는 매개체다. 자신을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열어보이는 매개체로써의 말. 그렇다면 사람은 누구에게, 보다 구체적으로 자신을 열어보이고 싶어할까? 아무에게나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사랑 받고 싶은 사람에게 자신을 개방하고 싶어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고 싶은 사람에게 자신을 열고 말을 건네는 이유는 서로 친교를 나누고 서로 일치하고 싶어서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이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하느님도 인간에게 당신을 열어보이고 싶어하며,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어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나를 완벽하게 전달해 줄 수는 없다. 내가 나를 전달해야 가장 근접하게 전달할 수 있듯이... 하느님도 자신을 전달하시기 위해서 다른 무엇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 전달(말씀)해야 한다. 복음사가는 예수 그분이 하느님이기에, 하느님의 자기 표현인 ’말씀’이기에, 하느님의 완벽한 자기 전달(계시)이 가능할 수 있다고 증언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말씀으로 이 세상에 와서 자신을 열어 보이려 그토록 애쓰시는 이유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즉 자신을 열어보이고자 하는 대상인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에게서 사랑 받고 싶어서이다. 사람과 일치하고 그들과 친밀한 친교를 나누고 싶어하시기 때문이다 그런 하느님의 심정을 모르는 상태를 어둠이라고 한다면 그런 하느님의 심정을 알아드리고 그분을 맞이하는 상태가 빛이다. "한 처음"은 그렇게 하느님을 모르는 어둠에 쌓여 있는 것에서 하느님의 자기 전달을 깨닫게 되는 그 깨달음의 순간(빛이 열리는)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 쪽에서 느끼는 "한 처음"이다. 하느님 쪽에서의 "한 처음"은 인간에 대한 그분의 사랑이 흘러넘쳐
    드디어 당신의 사랑을 쏟으시는 것으로써 시작된다. (1-5절) (요한복음의 그 때는 언제부터인지 시작을 모르는 시간이므로 정관사가 붙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 처음'이 아니라 '처음'이라해야 실은 더 맞을 것이다) 참 사랑은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줄 수 있는 것이므로 그분은 창조주의 생명을 내려놓고 피조물인 사람의 생명으로 오셨다.(14절) 아! 그러나 미련한 사람들은 낮은 곳에 오신 그분과 그 사랑을 알아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위만 볼 줄 알지, 자신의 옆에 소중한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살아간다.(10-11절) 그럼에도 하느님의 그 사랑을 깨닫는 소수의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그렇게 하늘의 자녀가 되어 별처럼 빛나는 불멸의 사람이 된다.(12절) 하늘의 별처럼 되는 것은 하늘로 기어올라가려는 시도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그런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소박한 사람들에게 느닷없이 주어지는 선물이다. (13절) 사랑할 줄 알므로써, 아무 의심 없이 사랑이신 하느님을 받아들인 사람들에게는 끊임없는 사랑이 흘러 넘친다. 한없이 흘러 넘치는 사랑의 샘이 늘 함께 하기 때문이다. (16절) 모든 사람들을 사랑에 사랑을(은총에 은총을)받고 사는 사람들로 만들기 위해, (모세의 율법만이 하느님의 '말씀'인 줄로만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하느님의 참 사랑의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려주었다.(17절) "일찌기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 주셨다."(18절) 하느님이 말씀이 된 이유는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에게 사랑자체이신 당신을 알려주시고 싶어서이고, 그래서 그 사람들을 사랑의 사람들로 만들고 싶어서이다. ......................................................................................... 한 해가 오늘과 함께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몇 시간 후면 다시 새해가 열리고 하느님 사랑의 표현인 ’오늘의 말씀’이 우리를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다시 한 처음의 사랑이 찾아오는 것이지요.
    그렇게 우리는 그분이 사랑이시며 나와함께 사랑을 나누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닫는
    매 순간마다 새로운 창조의 시간을 맞는 것입니다.
    새해엔 여러분의 가정에 '말씀'을 받아들여 어둠이 가시고...
    밝고 희망찬 일들만 펼쳐지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 사랑을 받고 또 받으며 살아가는 동안, 빛나는 별처럼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