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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제 구유 곁을 떠나 다시 일상(日常)으로
작성자양승국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01 조회수1,324 추천수11 반대(0) 신고
 

1월 2일 주님 공현 대축일-마태오 2장 1-12절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이제 구유 곁을 떠나 다시 일상(日常)으로>


성탄 시기 때 마다 서고에서 꺼내와 읽고 묵상하는‘넷째왕의 전설’(에자르트 샤퍼, 분도출판사)을 또 다시 읽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별이 동방박사들에게만이 아니라 러시아의 한 임금(넷째왕)에게도 나타났는데, 신심 깊고, 다정다감하고, 인정 많은 넷째왕도 별의 인도를 받아 여행을 떠납니다. 아기 예수님께 드릴 꽤 값진 예물들을 애마 와니카의 등에 싣고 넷째왕은 멀고도 고달픈 여행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여행 도중에 만났던 불행한 사람들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넷째왕은 본의 아니게 예물들을 하나하나 소모하고 맙니다. 부드럽고 고운 아마포는 막 출산한 거지 산모에게 건넵니다. 피골이 상접한 비참한 노예들의 삶을 목격한 넷째왕은 그나마 남아있던 모든 돈을 다 지불하면서 그들에게 자유를 되찾아줍니다. 유일하게 남아있던 꿀단지마저 벌꿀들에게 죄다 빼앗겼는가 하면, 애마 와니카 마저 먼저 세상을 뜹니다.


알거지가 되어 홀로 별을 쫓던 넷째왕이 어느 항구에 도착했을 때, 차마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광경이 전개되고 있었는데, 한 소년이 노예선에 승선하기 직전이었습니다. 속수무책인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만 철철 흘리고 있었습니다. ‘바보 아냐?’ 하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데 천재였던 넷째왕은 어김없이 소년을 대신해서 노예선을 탔고, 30년이란 세월 동안 꼼짝없이 사슬에 묶인 채로 노를 젓게 됩니다.


30년간의 노예생활로 만신창이가 되어 더 이상 효용 가치가 없게 된 넷째왕은 그 옛날 처음 노예선을 탔던 그 항구에 버려지게 됩니다. 겨우겨우 기력을 회복한 넷째왕은 희미한 기억을 되살려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금 별을 쫓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넷째왕이 인도된 마지막 종착지는 아기 예수님이 탄생한 베들레헴이 아니라, 하늘 높이 매달린 메시아가 십자가 위에서 단말마의 고통을 겪고 있던 골고타 언덕이었습니다. 전후사정을 헤아려보던 넷째왕은 서서이 십자가에 달리신 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바로 그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처구니가 없어 기가 막히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어쨌든 구세주 하느님을 드디어 뵙게 된 넷째 왕은 십자가 앞에 조용히 쓰러집니다. 불현듯 고국 러시아를 떠나올 때 그분께 드리기 위해서 지니고 왔던 예물들이 생각났습니다. 몹시도 부끄럽고 송구스러웠습니다. 그분 앞에 빈손으로 왔다는 자책감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나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넷째왕은 이렇게 주님께 아룁니다.


“죄송합니다. 주님, 보시다시피 저는 아무것도 지닌 것이 없습니다. 주님께 드리려 했던 것들을 죄다 없앴습니다. 황금, 보석, 아마포, 그리고 어머니가 단지에 가득 채워주셨던 꿀까지도. 모두 쓸데없이 낭비했습니다. 주님, 용서하소서.”


“그러나  주님, 저의 마음을, 그리고 제게 작은 도움을 받고 한평생 하루도 빠짐없이 제게 마음과 정성을 보내온 저 여인의 마음을, 우리의 마음을 받아주시겠습니까?”


‘넷째 왕의 전설’을 읽을 때 마다 묵상하는 바가 ‘아기 예수님의 구유 바로 그 옆에 십자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탄은 빛의 축제입니다. 당연히 기쁨과 환희의 축제입니다. 그러나 그 빛, 기쁨, 환희는 영혼을 위한 것이지 단지 우리의 육체적인 기분을 흥겹게 하기 위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이제 성탄의 기쁨을 우리 마음 깊이 간직하고, 또 다시 골고타 언덕을 향해, 예수님께서 지셨던 십자가를 향해 먼 길을 떠날 순간입니다.


일년에 단 한번 휘황찬란하게 잘 꾸며진 구유 앞에 무릎 꿇는 것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성탄절이 주는 매력에 휩싸이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일년 열두 달, 우리 매일의 삶 전체 안에서 끊임없이 육화하신 하느님과 교류하고, 동방박사가 오직 별만 보며 열심히 따라갔듯이 몸과 마음을 바쳐 그분 말씀과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한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준비해온 예물을 다 바쳤고, 또 그토록 뵙고 싶어 했던 아기 예수님을 드디어 발견하고 경배했습니다. 기뻤습니다. 구세주 하느님을 자신들의 눈앞에서 뵙는 기쁨에 황홀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이룬 듯 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한없이 구유 앞에서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이제 구세주를 뵌 기쁨을 가슴에 담고 또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야 합니다. 즉 ‘주님 공현’은 우리에게 또 다른 떠남을 요구합니다.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께서는 앙증맞은 작은 두 손을 벌리고 우리의 선물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구세주 하느님께 드릴 선물 중에 가장 좋은 선물은 이런 것입니다. 세속적인 모든 재물에서 벗어난 깨끗한 마음의 순수한 황금, 예수님의 삶과 고난에 참여하기 위한 대가로 지불하게 될 이 세상의 모든 행복에 대한 포기의 몰약, 그리고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내맡기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는 위로 향해 곧게 솟아오르는 의지의 유황. 이런 선물을 받기 위해 아기 예수님은 자신을 송두리째 우리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바치는 사랑의 헌신보다 그분 마음에 드는 유황은 없습니다. 순결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우리 가운데 오신 하느님을 뵐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손에 맡기고 시작하는 새해, 비록 연말까지 우리가 살아 있을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매일 구세주의 샘에서 물을 마신다면 날마다 영원한 생명으로 점점 깊이 잠겨들고, 어느 날 주님께서 부르시는 소리를 듣게 될 때, 이 속세의 무거운 짐을 가볍게 빨리 벗어버릴 수 있는 준비가 갖춰질 것입니다. 천상배필과의 약속을 새롭게 하도록 아기 예수님은 우리에게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어서 달려가서 그 손을 잡읍시다(성탄의 신비. 에디트 슈타인, 성바오로 출판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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