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모든 허약함을 바치오니..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03 조회수936 추천수5 반대(0) 신고
주님 공현 후 월요일 예수 성명 기념(1/3)






    독서 : 요한 1서 3,22-4,6 복음 : 마태 4,12-17.23-25 세례자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는 갈릴래아로 가셨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다. 요한은 남부 유다 요르단 강가에서 활동하였지만 예수께서는 북부 갈릴래아 지방을 최초 활동의 근거지를 삼으셨다. 흔히 요한만이 예수님 뒤로 물러나는 겸손한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예수님이야말로 요한이 활동을 못하게 된 뒤부터, 그의 주 무대가 아니었던 곳에서 활동하시는 참으로 겸손하신 분이시다. 더구나 요한의 능력과 당신의 능력의 현격한 차이에도 말이다. 우리는 어떤가?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의 영역을 인정해주고 때를 기다릴 줄 알고 있는가? 물론 예수께서 갈릴래아로 가신 것이 그런 인간적 이유만은 아니었다. 이사야의 예언서에 언급된 대로 "이방인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있는 백성, 죽음의 그늘진 땅에 앉아 있는 사람들"부터 빛을 비추어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니까 하느님 뜻 안에서(성서 안에서) 주 활동무대를 신중하게 고려하신 결정이다. 요한이 백성을 준비시키는 동안, 예수께서는 공적 활동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치셨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고,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에 승리하셨으며, 활동 장소도 신중하게 검토하시고 때를 기다리셨던 것이다. 하느님 일을 한다는 우리도, 이처럼 철저히 준비하고 있을까? "여러분은 회개하시오. 하늘나라가 다가왔습니다". 마침내 그분의 공생활을 한마디로 축약하는 말씀을 분명하게 선포하신다. '하늘나라가 다가왔다'는 것이 무슨 이야긴가? 이제 그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신다. 예수께서는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고, 백성 가운데 모든 질병과 모든 허약함을 고쳐주셨다. 여기서 순서는 아주 중요하다. 즉 먼저 하늘나라에 관한 가르침이 복음 선포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가르침이 어떤 구원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말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표징으로 치유활동을 하시는 것이다. 그러니 치유는 목적이 아닌 수단일 뿐,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마술적인 행위요 일시적인 신기한 현상에 불과할 뿐이다. 요즘도 정신적, 육체적 치유를 목적으로 예수께 오는 사람은 많다. 어느 기도 모임에서는 치유받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다시 재발하거나 다른 곳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문제는 치유받기 위해서 복음을 사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살아야 지속적인 기쁨 속에서 치유도 부수적으로 얻는다는 이야기다. 아무튼 병자를 말끔히 고쳐주셨다는 소문을 듣고, 온 나라와 이웃 나라에서까지 난치병 병자들이 모두 예수께 몰려온다. 그분은 그들을 모두 고쳐주셨다. 며칠 전, 병원에서 송년미사를 드렸다. 병원 로비에 장사진을 이룬 환자들, 병실의 환자들이 생각난다. 그렇게 전국에서 몰려온 수많은 환자들에게 만일 예수님이 나타난다면? 그리고 여러가지 검사나 수술없이 한번에 고쳐주신다면? 게다가 비용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복음이 아닐 수 없다. 하늘나라(천국)가 바로 이땅에 실현되는 것 같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육체적 건강만이 행복의 다가 아닌가보다. 마태오복음에는 예수님의 활동 집약문과 열두 제자에게 권능을 주시는 대목에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독특한 표현이 하나 있다. 즉 예수께서는 "모든 질병과 모든 허약함을 고쳐"주셨고 제자들에게도 그런 권능을 나누어주셨다(4,23;9,35; 10,1) 여기서 모든 허약함에 주목한다. 사실 질병에 걸린 사람이 많다지만 그보다는 건강한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러나 '허약함'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어떤 부분에서든 인간은 모두 나약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그분의 구원이 필요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셈이다. 마태오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손길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육체적 치유든, 정신적, 영적 나약성의 보강이든 어디까지나 하늘나라가 예수를 통하여 다가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며 그렇게 모인 사람들을 상대로 이제부터 중요한 가르침을 선포하시기 위한 준비 단계였음을 잊어선 안 된다. 다음 대목에서 곧 ’산상 설교’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하게 되어라" 인간의 완성된 모습을 가르쳐주는 산상설교. 모든 이가 참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천국의 길을 가르쳐주는 산상설교. 그 완성의 길로 가기위해, 참 기쁨과 진정한 평화를 누리는 천국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그분의 치유의 손길에 끊임없이 우리의 '병고와 허약함'을 내놓아야한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그분의 가르침을 듣고, 그 가르침대로 살아야 한다. 가르침대로 살다가 또 다른 '허약함'이 드러나면, 다시 그분께 와서 그 약함을 채워야한다.
    또 다른 허약함을 발견할 때마다, 그리고 그것을 그분께 가져갈 때마다,
    그렇게 나의 생은 차츰 차츰 점진적으로 완성되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완전성에 다가가는 것이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