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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32) 소싸움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5-01-03 조회수1,023 추천수6 반대(0) 신고

2005년1월3일 주의 공현 후 월요일 예수 성명 기념일. 성 제노베파 기념일 ㅡ요한1서3,22-4,6;마태오4,12-17.23-25ㅡ 

 

              소싸움

                       이순의

 

 

양력이라도 정초라고 또 시작이다.

둘이 만나기만 하면 수컷들의 콧김으로 온 집안이 후텁지근하게 끈적거린다.

테레비젼에서 동물들이 사냥을 배우느라고 씩씩거리는 것은 보았지만 지금 세상이 사냥하는 세상도 아닌데 뭐하려고 난장을 만드는지 모르겠다.

 

목을 비틀고, 올라타고, 깔아 뭉개고, 엎어치기로 눕히고......

누가 옆에서 원 투 쓰리 포도 해 주지 않는데 승부가 끝이 없다.

지난 해 까지는 아비소가 이겼다.

그런데 올해는 막상막하라서 접전에 접전으로 끝이 없다.

 

곧 아비소를 이길 것 같은 아들소의 발악은 험상궂어서 무섭기까지하다.

내년에는 아마도 정글의 주도권이 바뀔 심산이다.

결국 마지막에 숨소리조차 조용하여 걱정으로 들여다 보았다.

누구하나는 꼬꾸라져 자빠져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만하라고 그만하라고

다친다고 다친다고

미쳤냐고 돌았냐고

경고를 주고 또 주었지만 끝이 보이지 않더니 결국 누가 뒤졌는가보다.

 

그런데 이마를 마주대하고 밀어 붙이기를 하고 있다.

영화촬영을 해야 하는데....

숫소 두 마리가 마지막 결전을 하느라고 머리에 뿔을 세우고 이마를 마주하고 있다.

어린 숫놈은 온 상판이 붉어있고, 아비 숫놈의 상판은 희놀놀 해져있다.

 

목덜미에서 땀이 송글송글하다.

얼마나 화가 나든지

"여물 쒀서 퍼 먹여 놓으니까 기운 쓸데가 이런 것 뿐이냐?"고 머리통 위에 올라타서 갈라 놓았다.

두 놈의 숫소가 입에 침이 질질 난다.

 

그렇게 양력 정월의 소싸움이 끝났다.

무승부다.

아니다. 아직은 어린소가 졌다.

왜냐하면 가죽이 보드란 탓에 이마가 까져버렸다.

 

아비소는 벌겋다가 이내 아물더니

아들소는 살점이 벗어져 딱지가 입었다.

그래서 정월의 패배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다닌다.

내년에는 승자가 바뀔 것 같다.

 

이제 바뀔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아비소가 알고있다.

어린송아지는 아비소를 이기지 못 하고 억울할 때면

"씨발!"이라고 욕을 하고 원통해서 울었다.

아비소도 다 자란 아들소가 이기면 그런 욕을 하고 분해서 울까?

 

열아홉 아들과 쉰하나 짝궁이 정초에 벌인 소싸움이다.

올해는 아들이 욕을 하지 않았다.

딱지 하나를 이마에 달았을 뿐이다.

어쩌면 소싸움이 올해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다 자란 아들을 쉽게 항복시킬 수 없어서 어느 해 보다 길었던 소싸움이다.

짝궁은 원통했던 아들을 달랠일도 없어졌다.

짝궁은 접전을 치른 마지막 후유증을 그냥 지처서 침묵하고 있다.

아들은 이마의 딱지가 자랑스러운지 그저 재미가 넘쳐난다.

 

아내되고 어미되어서

부상으로 이어질까 노심초사했던 걱정도,

물을 뿌려서 뜯어말릴 일도, 올라타서 갈라놓을 일도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다.

 

세월이 가고있다.

세월이 오고있다.

 

ㅡ영성체송;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도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으로, 그분께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셨도다. 요한1,1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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